Trust is all that matter.
아이들의 방학기간,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이 시기마다 하는 고민이 있다. (사실 모든 엄마들의 고민) '방학동안 어떻게 내 일을 방해받지 않으면서 아이들이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일주일은 이모집에 아이들이 놀러갔는데 그 동안 게임과 티비에 빠져있지 않도록 책을 주문해 보내두었다.
아이들 책은 장난감처럼 유행을 타기 때문에 나는 중고책들을 애용하고 있는데, 위 중고전집은 다른 책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저렴한데다 10권의 책을 서비스로 준다고 해서 바로 주문을 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책 배송이 생각보다 늦어졌다. (이상하게 부분적으로 시간차를 두고 배송되었다) 그런데 책이 모두 오지 않았는데 판매자가 구매확정을 끈질기게 부탁->요구했기 때문이다.
사정이 딱한 것 같아서 나도 빨리 구매확정을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나의 문자 내용한 답변은 없고 구매요청을 하는 문자만 반복 발송된다는 것이다. 전화를 하면 오늘 갈 꺼라는 답변만... 나중에는 이렇게 협박 문자도 왔다. "반복적으로 부탁을 들어 주지 않는 고객님께서는 차후 주문이 들어와도 판매하지 않고 품절처리할 예정입니다." 크... (저기 아저씨 저도 주문 다시 안 할 거거든요.) 혹시 배송과정에서 분실되었는지 택배담당자 전화를 찾아서 전화도 해봤다. 결국 8권은 받지 못했고, 더이상 씨름하고 싶지 않아서 나도 포기했다. 며칠 간 판매자와의 씨름 덕분에 내가 얻은 교훈은 다시는 이곳 중고서점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평판은 신뢰의 가장 가까운 형제로,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한 전반적인 의견을 말한다. 나의 평판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며칠 혹은 몇 달 혹은 몇 년에 걸쳐 형성된 나에 대한 의견이다. 따라서 평판은 좋든 나쁘든 신뢰성의 척도가 된다. -<신뢰이동>, p.231
요즘은 어디서든 점수를 매긴다. 카카오 택시를 이용하고 나서, 배달의 민족에서 음식을 배달시켜 먹은 후에 네이버 페이로 상품을 주문하면 별점을 매겨달라는 알림이 뜬다. 후기까지 작성을 하면 포인트를 준다. 하지만 이렇게 거래자 사이에 평판으로 신뢰를 쌓아가는 것은 기술 발전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형태가 달라졌을 뿐, 신뢰 시스템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다. 약 105년 전에 이집트의 고대 유대교 회당 보관실에서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전된 1,000통 이상의 개인적인 편지들이 그 증거다. 편지들에서는 당시 상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는데, 그 시기가 1005년이었고 문제가 발생해도 바다 건너 소식이 전달되려면 몇 달이 걸릴 수 있었기 때문에 엄청난 신뢰가 필요했다. 신뢰가 형성되어 거래가 가능했던 것은 '평판'이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에는 그 지역의 다른 상인들에게도 소문이 나서 신용을 잃었던 것이다. '내 평판이 무너졌다'고 개탄하는 한 편지를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평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평판이 곧 신뢰는 아니다. 평판도 신뢰성을 가늠하는 척도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신뢰는 좀 더 넓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신뢰를 <신뢰이동>의 레이첼 보츠먼은 이렇게 정의한다.
신뢰란 '누군가 무언가를 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누군가 무언가를 할 것이라고 믿음으로써 앞으로 전진하게 하는 것! (Trust is Confident Confident relationship to the unknown to moving foward.) 돈을 빌린 사람이 갚을 것이라고 믿는 것, 업무를 맡기면 마감시간 전에 완성을 하는 것, 물건을 주문을 하면 적당한 시간에 하자가 없는 완전한 상태로 받아보는 것이다. 상호간에 신뢰가 쌓이면 일은 훨씬 빠르게 진행된다. 검증 절차나 감시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신뢰는 하루아침에 쌓이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마음 먹은대로 쉽게 쌓이는 것도 아니다.
지난 5백 년간 진보라는 아이디어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를 점점 더 신뢰하게 만들었다. 신뢰는 신용을 창조했고, 신용은 현실 경제를 성장시켰으며, 성장은 미래에 대한 신뢰를 강화하고 더 많은 신용을 향한 길을 열었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중략) 오늘날의 세상에는 신용이 넘쳐난다. -<사피엔스> p.439
그렇다면 신뢰는 어떻게 형성되는 걸까? <신뢰 이동>에서 레이첼 보츠먼은 신뢰를 형성할 때 수반되는 공통된 행동 양식이 있다고 한다. 작가의 말대로 신뢰를 '누군가 알려진 것에서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 사이의 틈을 매워야 하는데, 그것이 신뢰를 형성하는 방법이고 그것을 이렇게 정의한 것이다. 바로 "신뢰 더미 오르기"다. 그리고 신뢰 더미를 오르는 데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신뢰 더미에는 세가지 행동양식이 있다.
1. 개념 : 새로운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고, 그 기술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새로운 발명품을 만족할 만큼 이해하기 전까지는 사용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2. 플랫폼 : 고객이 공동체를 이루고, 이런 공동체가 그 자체로 브랜드의 성공과 실패에 영향을 미치는 플랫폼이 된다.
3. 개인 : 신뢰가 공동체 사람들 사이에도 있어야 한다.
많은 기업들이 이 신뢰 더미를 쌓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리고 그 어려움 속에서 결국 신뢰를 형성하게 된 기업들만 남게 된다.
1. 에어비앤비Airbnb는 사람들이 낯선 사람은 위험하다는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나쁜 일이 일어날 위험을 줄여주고 문제가 생기면 나서서 해결해주는 역할을 했다. 재산 피해에 대해 예약 1건당 최대 100만 달러를 보상해주는 '호스트 보장'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개인의 온라인 ID가 운전면허나 여권같은 개인정보와 일치하는지 확인했다.
2.인터넷으로 가정과 베이비시터를 연결해주는 업체 어번시터UrbanSitter에서 베이비시터는 페이스북이나 링크드인을 통해야 가입할 수 있다. (한 집단과 상황에서 쌓인 신뢰는 다른 사람에게 이동하고 확산될 수 있다)
3. 블라블라카BlaBlaBla는 장거리 여행 공유 차량 플랫폼이다. 차 주인은 목적지를 정하고 운전해서 갈 때 차의 남은 빈 좌석을 공유한다. 이 회사는 이용자들이 예약을 취소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것을 인지하고 온라인 선불 결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취소율은 35%에서 3% 미만으로 뚝 떨어졌다)
온라인으로 신뢰도를 증명하는 것이 수월해진 시대가 되었다. 물론 이러한 평판제도에도 문제가 있다. 온라인 아이디 뒤에 숨어서 경쟁자의 평판을 깍아내리는 수법이다. 판매자들이 구매자인 척하면서 다른 판매자에게 악평을 남기는 의도적인 흠집내기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허위 평가를 발견해서 삭제하는 기계 학습 시스템도 개발되었다고 한다. 평가 필터 장치가 점점 정교해지고 널리 확산되고 있으니 우리가 보는 것이 합당한 평가일 거라는 믿음이 더 크다. 어쨌든 기술 발전으로 고객은 믿을 만한 판매자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레이첼 보츠만은 앞으로 온라인 신뢰 과정은 계속 빨라지고 더욱 똑똑해지고 더 넓게 확산될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에는 생존의 문제다. 결국 신뢰성이 높은 판매자만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신뢰 변화가 일단 일어나기 시작하면 흐름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걸 이해한다면 위의 중고마켓도 저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텐데 아쉽다. 결국 평판이 전부다.
"부동산 중개업자를 구하든, 변호사를 구하든, 베이비시터를 구하든
신뢰성의 세 가지 특징은 동일하다.
능력 있는 사람인가? 믿을 만한 사람인가? 정직한 사람인가?"
- 신뢰 이동, p197.
덧. 최근 본 영화 <몰리스 게임>에서 주인공이 그토록 자신의 이름을 지키려고 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녀에게 이름은 곧 그녀의 신용, 모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