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사 Sep 04. 2019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강력한
두가지 무기

가끔 아이들이 재밌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할 때가 있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려고 하면, 기억력의 한계를 느낀다. 기억하는 이야기들의 장면이 토막토막 잘려 있어서 전달하기가 어려운 데다, 내가 아는 옛날이야기는 이미 아이들도 아는 것이다. 아이들이 좋아할 이야기들이 업데이트가 안되다 보니 할 이야기가 없고, 아이들의 집중력은 항상 자신들을 재미있게 해 줄 게임이나 티비로 향한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좋아할 이야기는 내 수준에 맞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 책을 읽었다. 



<초콜릿 하트 드래곤>. 처음에는 제목이 생뚱맞은 단어들의 조합으로 보였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보니 이렇게 완벽한 제목이 없다. 스포가 될 수 있으니 간략하게 배경만 설명을 하면, "의도치 않게 인간으로 변한 드래곤이 초콜릿을 맛본 이후 초콜릿 만드는 일에서 사명감을 찾는 이야기!"이다. 


지난주 남편이 없는 휴일. 오랜만에 독박 육아를 하기 위해 세 아이들을 데리고 키즈카페에 갔다. 아이들이 정신없이 노는 동안 나도 구석에 자리를 잡고 정신없이 이 책을 읽었다. 키즈카페 시간을 연장하고도 다 읽지 못해서 마지막 장면은 놀이터 벤치에서 읽었는데 눈물이 찔끔 나는 바람에 몰래 닦았다. 이런 소설을 얼마 만에 읽었던가. 파이 이야기? 연금술사? 해리포터? 이 책들보다 재밌었다고 이야기하면 너무 과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말이다. 아이들에게 테스트해보면 안다. 택시를 타고 돌아가는 15분 동안 아이들에게 <초콜릿 하트 드래곤>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얼마나 몰입을 하던지.. (엄마 최고! 엄마 감사합니다 이런 말을 이야기를 해주고 들어 본 적은 처음) 하지만 이 책이 정말 좋았던 이유는 단순히 재미있어서가 아니었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었던 '살아가가는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두 가지 능력'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1. "나는 드래곤이다" (정체성)


이 책의 주인공인 여자아이 어벤추린은 "나는 드래곤이다" 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 말을 할 때는 항상 어려운 순간에서다.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을 때, 힘든 상황에서 좌절할 때마다 나약해진 자신의 마음을 부여잡기 위한 혼잣말이다. 그리고 이 말은 매번 효과가 있었다. 없던 힘이 다시 솟아나게 하는 마법의 주문처럼.


책, <초콜릿 하트 드래곤> 중에서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는 행동 변화는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 단계의 핵심에는 정체성이 있다.  정체성은 우리의 믿음을 변화시킨다. 우리가 믿고 있는 것, 근본적인 믿음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행동을 바꿔보려고 애를 써도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독서가가 되는 것, 마라톤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되는 것, 악기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음악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일단 정체성을 정립하면 그 뒤는 오히려 쉬워진다.

반대로, 나의 정체성을 모르면 일은 더 꼬이고 복잡해진다.


출처:  <소스코드>


최근에 본 옛날 영화 <소스코드>가 좋은 예시다. 이 영화에서는 기억을 잃고 방황하는 주인공에게 임무를 던져준다. 주인공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아무리 물어도 답은 무조건 미션을 수행하라는 대답뿐이었다. 나중에야 자신의 뇌의 일부분만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정체성), 아버지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은 사람들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애국심이 많은 남자라는 것을 (사명감) 알게 되고 나서야 죽은 사람들의 기억의 잔해로 만들어진 '소스코드' 속에서 범인을 찾아내는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한다. 


2. "그게 제 사명이에요." (사명감)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모든 단추를 다시 풀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정체성 확립이 모든 일의 시작, 첫 단추를 제대로 채우는 일이라면, 사명감을 찾는 일은 단추를 쉽게 채울 수 있게 만드는 힘이다. 어린 소녀가 된 드래곤이 아무것도 의지할 것 없는 상황에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었던 힘은 '최고의 초콜릿'을 만들겠다는 사명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명이 있다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않게 된다. 사명이 없다면 시장의 아들처럼 일을 대충 하다가 쉽게 그만둘지 모른다. 



사명감의 범위가 너무 넓으니 조지 베일런트의 사람이 성숙해가는 과정을 통해 단계를 나누어 보자. 이 책에서 에반추린이 말하는 '최고의 초콜릿'을 만들겠다는 사명은 이 일이 '나에게' 가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아래 3번. "직업적 안정"에 속할 것이다. 


1. 정체성 : 부모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설 수 있다.
2. 친밀감 : 자기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상호관계를 통해 동료들과 어울릴 수 있다.
3. 직업적 안정 : 성인은 사회는 물론 자신에게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
4. 생산성 : 더 넓은 사회 영역을 통해 다음 세대를 배려한다.
5. 의미의 수호자 : 다음 세대에게 과거의 전통을 물려주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 준다.
6. 통합 : 개인의 삶은 물론 온 세상의 평온함과 조화로움을 추구한다.

                                                                          출처: <행복의 조건>, 조지 베일런트


사명감은 각 단계별로 그 깊이가 다르다. 물론 위의 각 단계를 반드시 통과해야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베토벤이 음악가로서 훌륭하게 소명을 다했지만 그 누구와도 친밀감을 누려보지 못했다는 것을 봐도 그렇다. 하지만, 의미의 수호자가 되려면 반드시 생산성의 과업을 먼저 성취해야 한다는 데 예외가 없다는 점, 그리고 이 책이 성장소설인만큼 정체성, 친밀감, 직업적 안정에 집중한 점은 너무나 적합하고 조화롭게 느껴진다. (에반추린이 훌륭한 성인이 되어서 드래곤 세계와 인간 세계의 통합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면 성장 과업까지 도달했다고 할 수 있겠다)


사명감이라는 말은 너무 어려워 보인다. 책의 첫 부분에서 어벤추린의 엄마가 딸에게 했던 '너는 아직도 네 사명을 찾지 못했니?'라는 말은 이 단어가 뭔지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할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엄마가 하고 싶었던 말은 '너는 아직도 네가 하고 싶어 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했니?' 였을 것이다. 표현은 조금 어려웠을 수 있지만 사실 이 엄마가 아이에게 원하는 것은 모든 엄마들과도 같다. 아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주는 것이 모든 엄마들의 바람이기 때문이다. 


책에서 어벤추린이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감을 스스로 찾아내어야 한다. 이것은 엄마의 일이 아니다. 내가 아이들에게 정체성이 뭐고 사명감이 뭔지 장황하게 떠들어봐야 아무 설명이 없다. (심지어 양치하라는 말도 안 듣는데 사명감이라니) 대신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이렇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게임보다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통해 메세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해주는 것이다.


엄마인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의 것이 아닌 "나의" 온전한 정체성과 사명을 찾는 일이다. 나는 세 남자아이들의 엄마이다. 그러니 강해야 하고 또 사랑이 많아야 한다. 지금 내게 필요한 능력이 어떤 것인지 알고 어떻게 키워나가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 책은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좋지만 어른들에게도 좋다. 어린 드래곤이 해냈던 것처럼 내가 이 일을 해내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면 세상은 덜 힘들 것이고 좌절하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두가지는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아이에게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도.


sponsored by Rokmedia


#초콜릿하트드래곤 #성장소설 #판타지소설

이 책을 읽으면 당신도 이야기꾼 엄마가 될 수  책을 읽으면 당신도 이야기꾼 엄마가 될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결국 신뢰가 전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