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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 Nov 19. 2019

그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지혜

거절할 수 있는 힘

오늘 회의가 평소보다 40분 정도 늦게 끝났다. 한 가지 사안에 대해서 논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논쟁이라고 해서 누군가를 비방하거나 싸운 것은 당연히 아니다. 어떤 건의안을 두고 '그렇게 해보자 vs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두 가지 의견으로 나뉜 것이다. 한쪽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지만, 오늘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의사 결정을 잘못 내릴 뻔했는지 잘못을 직시할 수 있었다. 안건은 이거였다.


'특정 콘텐츠를 모은 새로운 채널을 만들 것인가?'


집에 돌아와 관련된 내용을 <콘텐츠의 미래>에서 찾아보았다. 오늘 우리가 나누었던 모든 내용, 우리가 내렸던 결론, 내가 찾고 있었던 모든 대답이 여기에 있었다. 


'적어질수록 많아지고 버릴수록 채워지는 성공의 역설' (출처: <콘텐츠의 미래>, p.448-449)


좋아 보이는 아이디어는 너무 많다. 문제는 모두가 그럴듯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잠깐 방향성을 상실하면 회사가 가진 장점을 잃어버리게 된다.  


최근 빡독 행사에 서 받은 개선사항 중에 한 가지 집중되는 의견이 있었는데, 그 예를 들어보자. 

2019. 11. 2 빡독x신박사tv


짧게라도 조를 편성해 주셔서 대화 나누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스피치를 그룹으로 만들어서 그룹 별로 그날의 느낌이나 생각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현재 무엇을 실천하는지 장기자랑 같은 퍼레이드로 공개하여 더욱더 실천하도록 돕는 계기를 만들어 주세요.

책을 읽고 난 후의 감상문 발표도 좋을 듯합니다.

소그룹으로 나눠 토론하는 시간이 추가되면 좋겠습니다.


언뜻 보면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들이 원하니 받아들여서 개선을 해야 할까? 아니다. '빡독'의 핵심은 토론이 아니라 읽는 것이기 때문이다. 빡독은 하루 종일 빡세게 독서하는 행사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읽는 환경설정을 통해서 책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자신의 임계점을 알고 (하루에 얼마나 읽을 수 있는지) 메타인지를 높이기 (언제 얼마나 집중이 잘 되는지) 위한 행사이기 때문이다.


위 의견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뿐만 아니라 빡독할 시간이 부족하니 시간을 더 달라는 의견과도 상충된다. 진행과정에 있어서도 많은 사람들을 그룹으로 나누고 장소를 배정하는 데 에너지가 너무 많이 쓰인다. 스태프가 핵심에서 벗어나 이벤트를 신경 쓰다 보면 본 행사는 산으로 가게 된다.


<콘텐츠의 미래>의 저자, 바라트 아난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주위에서 주문처럼 들려오는 사용자 중심이라는 말에 취하고 만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용자 중심이라는 말은 끝없는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당신이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이렇게나 많은 상태에서는, 특히 가능성이 점점 무궁무진해지는 디지털 세상에서는 하나의 선택을 할 때마다 다른 선택을 포기해야 한다. 콘텐츠 비즈니스가 마주한 가장 중요한 도전은 무엇을 제공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제공하지 않느냐다.
(참고: <콘텐츠의 미래>, p.459)


'아니'라고 말할 줄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독자(고객)이 원하는 것을 모두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선택과 집중에 주목하게 된다. 무엇을 버릴 것인가? 무엇을 아니라고 말해야 할까? 다시 말하지만 문제는, 모두가 그럴싸하다는 것이다. 기업들의 예를 찾아보자. 


월마트는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제공하는 상점이다. 그래서 그들은 인테리어를 포기한다. 대신 꼭 필요한 요소만 있는 소박한 상점 배치와 개성 없는 분위기, 실용적인 디자인에 집중한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을 승객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정확한 출도착 시간이다. 그래서 사우스웨스트 항공사는 음식의 품질을 포기한다. 음식을 제공하는 데 시간을 들이면 비행 소요 시간이 늘어나고 항공사가 자랑하는 정시 출도착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애플은 다른 제품과의 호환성과 가격 경쟁력을 포기한다. 애플은 다른 제품에 비해 폐쇄적이고 비싸지만 대신 연구개발비에 투자하고 사용자 친화적인 플러그 앤드 플레이 제품을 전달하는데 집중한다.


다시 오늘 회의에서 나누었던 안건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새로운 콘텐츠로 새로운 채널을 열었어야 했을까? 결론은 '아니'다. 중구난방인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채널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올릴 수 있는 것은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다. 하지만 이 장점 속에서도 구독자가 원하는 것은 더 많고 다양한 콘텐츠가 아니라 포기였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새 콘텐츠, 새로운 채널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채널에 집중하여 더 퀄리티가 높고 깊이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이런 실수를 할 뻔했을까?


<콘텐츠의 미래>에서는 '다나허'라는 회사가 나오는데 이 회사의 경영 방식에서 답을 찾았다. 이 기업은 포춘 500대 기업에 선정되었으면서도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1985년에 설립된 이후 2015년까지 다나허의 주가는 연평균 23퍼센트 성장률을 기록했다. 일명 다나허 비즈니스 시스템(DBS)은 30년에 걸쳐 다듬어지고 확장되며 인수하는 모든 비즈니스에 적용됐다. 


DBS의 핵심은 이것이다. 

1) 올바른 질문을 하고 있는가?
*올바른 질문이란 "누구를 대상 고객으로 하고, 어떻게 이길 것인가"

2) 과하다 싶을 정도의 도전적인 목표를 세운다.
모든 직원들은 획기적인 성과를 얻는 스트레치 타깃을 설정했다. 그리고 목표 달성 여부에 따라 빨간색이나 녹색으로 결과를 표시했다. 3개월 약진 계획은 1년 단위로 세부 과제를 나눈 다음, 모든 과제에 대한 측정 기준을 세운다. 

3) 성과를 측정한다.
성과 측정은 냉철하게 전반적으로 이루어졌다. "모든 것은 측정 가능하다"라는 신념이 회사 전반에 걸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탓하지 않는 문화'가 함께 존재했다.


첫 번째로 방향성을 확실히 공유했고, 둘째 도전적인 개별 목표를 세웠으며, 세 번째는 날카롭게 업무를 평가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무서워 보이는 이 시스템의 핵심은 이것이다. 평가 시에 적용되는 숫자들이 평가나 해고가 아니라, 학습과 개선을 목적으로 철저하게 검토되었다는 것이다! 


다나허의 전략과정은 "폭포처럼 흘러내려간다"고 표현한다. 측정 기준이 고위층에서 시작되어 조직 내의 모든 팀원, 작업장의 청소 인부에 이르기까지 목표 정렬이 이루어지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이 '폭포처럼'의 의미는 모든 계획, 모든 결정, 모든 측정 기준이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결국 내가 잘못된 의사 결정을 내릴 뻔했다는 것은 우리가 폭포처럼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에게 질문해본다. 우리의 대상 고객은 누구인가, 그리고 어떻게 시장에서 이길 것인가. 어떻게 하면 개별적인 결정들을 함께 연결시키고 맥락에 맞게 묶어줄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떤 도전적인 목표를 세우고, 각 팀원들의 성과는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탓하지 않는 문화를 만들 수 있을까?


새로운 직원들은 자기가 이걸 하겠다 또는 저걸 하겠다고 쉽게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언뜻 보기에는 그런 모습이 좋은 직원의 모습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작정 시도하기 전에 먼저 가르쳐야 합니다.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한다는 것을 가르치면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시기와 장소, 맥락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겁니다. 맥락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상당히 중요한 일이죠. 
- 래리 컬프 Larry Culp ('다나허'에서 가장 오랜 기간 CEO 역임)


래리 컬프가 한 말은 나에게 필요한 말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이 아니라 아니라고 말할 수 있도록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맥락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 보자. 먼저 행동에 나서기 전에 먼저 곰곰이 생각하고 분석하는 데 시간을 투자해 보자. 오늘의 뼈 있는 교훈을 잘 적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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