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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 Nov 26. 2019

신뢰성을 어떻게 판단할까?

누군가가 당신에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물론 좋을 것이다. 그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인정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신뢰를 보여준 그 사람이 직장의 상사이거나 학교의 선생님이라면 그 권위에 힘입어 효과는 배가 될 수도 있다. 여기서 포인트는 누군가 나를 보증해 준다는 사실이 아니라, 나를 보증해주는 그 사람이다. 누가 나를 보증하는지에 따라 힘이 실리고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런데 이 '누구'란 누가 되어야 할까? 


책 <오리지널스>의 한 부분, 세계 최고의 헤지펀드 회사 브리지워터Bridgewater에 대해 <오리지널스>의 저자 애덤 그랜트가 지적한 부분을 살펴보자.


브리지워터에서는 의견 차이가 생기면, 양측에서 강한 의견을 지닌 신뢰도 높은 직원 세 명을 찾아내서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토론을 하게 만든다고 했다. 언뜻 봐서는 아주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 방식을 두고 애덤 그랜트는 자신이 생각하는 엄정함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다고 했다. 애덤 그랜트는 신뢰도 높은 직원 외에 일반 직원들을 무작위로 선발해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고 했다. 신뢰도가 높은 직원들의 의견만 듣게 된다면 주관적인 의견을 바탕으로 결정이 되기 때문에 진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내세우기에 결함이 많다는 것이다. 


불과 한 달 전에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는 그래도 신뢰도 높은 직원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맥락적으로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신뢰도를 가진 사람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신뢰도가 높은 직원들은 테스트 결과, 인사고과, 그 밖의 평가 자료를 바탕으로 결정되지만 그들이 의사 결정을 제대로 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애덤 그랜트는 신뢰도 높은 직원들 세 명의 견해에 전적으로 믿음을 주는 것보다,  신뢰도 높은 직원들 간의 토론에 일부 직원들을 참석시키고 일부는 실험을 하도록 해서 어느 쪽이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지 비교해보겠다고 했다. 신뢰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누군가를 어떤 잣대로 걸러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폭 넓게 얻어내야 진정한 객관성을 갖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가장 질이 떨어지는 증거는 "그 분야의 존경받는 권위자들이나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다.
최고의 증거는 "무작위로 통제된 상황에서 객관적인 결과를 얻는 일련의 실험"이다.

- <오리지널스>, 애덤 그랜트


권위자들(전문가들) vs 일련의 실험,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신뢰 이동>의 저자 레이첼 보츠먼은 신뢰의 개념을 개인적 신뢰일반적 신뢰 두가지로 정리하는데, 객관성을 확보하는 면에서 본다면 애덤그랜트가 원했던 것이 일반적인 신뢰였던 것 같다. 


개인적 신뢰: 구체적인 누군가에게, 주로 가까운 사람에게 속하는 어떤 속성

일반적 신뢰: 어떤 사람인지 어떤 대상인지는 알아도 직접적으로는 알지 못하는 관계인 집단이나 사람을 향하는 신뢰


즉 일반적 신뢰는 개인적 신뢰보다 더 넓은 영역이다. 


지역적 신뢰-> 제도적 신뢰-> 분산적 신뢰 (출처: <신뢰 이동>, p.21)


<신뢰 이동>에서 지금 우리는 분산적 신뢰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한다. '분산적 신뢰'란 개인들 간의 네트워크와 플랫폼을 통해 수평적으로 오가는 신뢰를 말한다. 물론 누군가는 우리 사회를 신뢰 사회라고 부르기에는 부정적으로 판단하겠지만, 과거를 비교한다면 얼마나 달라졌는가! '에어비앤비'를 통해 처음 보는 사람의 집에서 자고, '블라블라카'를 통해 낯선 차에 타는 것이 낯설지 않게 된 것만 봐도 그렇다. 특히 이 과정에서 우리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있었던 신뢰를 확산시켰다. 


이제 신뢰와 영향력은 엘리트 집단과 전문가, 정부 당국보다는
가족과 친구, 동료, 심지어 낯선 사람 같은 '사람들'에게로 향한다.

개인이 기관보다 중요하고,
개별 고객이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브랜드를 정의하는 시대다.

- <신뢰 이동>, 레이첼 보츠만 


그러면 우리는 충분히 객관성을 가진 사회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점에서는 그렇고, 어떤 점에서는 틀리다. 신뢰를 주는 주체가 권위자, 전문가, 정부 당국이 아니라 '넓은 영역의 개인'이 되었다는 점은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누구를 믿을지는 여전히 주관적인 판단에 맏겨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힌트를 얻어갈 수는 있다. 신뢰를 판단할 때 객관화 해보는 과정에서 잠시 멈춰서 차분히 생각해보는 것이다. 브리지워터에서 믿을 수 있는 세 사람의 의견에 집중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봐야할 것인지, 거기에 완벽한 정답은 없다. 하지만 객관화해보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각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신뢰를 얻을 것인가에도 적용해보자. 남들이 한다고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매달리는 스펙에 기댈 것이 아니라 확장된 사회에서 내 능력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이고 어떻게 약속을 지켜낼 것인지에 집중해야 한다. 완벽하게 객관성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새로운 신뢰 사회에서 신뢰를 형성하는 지름길이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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