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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 Nov 30. 2019

금수저와 흙수저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

누구나 금수저가 될 수 있다

집에서 일하고 있는데, 멀리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내 아들이며 평소와 다른 범상치 않은 울음소리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고, 그와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나가 보니 초등학교 3학년이던 아들은 울면서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고 있었고, 네 명의 다른 아이들이 자전거를 끌고 아들이 가는 길을 막으며 방해하고 있었다. 순간 머리가 홱 돌았다.


너네 뭐 하는 거야!!!!!!!

(다 일루 와...)


평소 조용하던 내 성격과 다르게 이럴 때는 180도 다른 내가 튀어나온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길을 멈추고 우리 무리를 쳐다봤지만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들어보니 아이들끼리 딱지를 하는데, 내 아들은 딱지를 땄다고 주장하고 상대편 아이는 진판이 아니었으니 (*진판: 진짜 판이라는 뜻으로 딱지를 걸고 하는 판) 딱지를 내놓으라고 싸움이 붙은 것이다. 그래서 아들은 딱지를 정리하고 그냥 집으로 오는데 그 아이가 주위의 다른 아이들을 선동해서 '도둑 잡으라고' 집 앞까지 쫒아 온 것이다... 어찌 되었건 이렇게 괴롭히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고 아들에게는 집에 가서 딱지를 가져와 하나씩 나눠주라고 했다. 아이들 앞에서 큰 소리로 일장연설을 한 뒤에 결국 화해를 시켰다. 나의 카리스마에 아이들은 꼼짝 못 했고, 큰 아들은 집에 와서 '엄마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그 날 하루는 말을 참 잘 들었다)


위의 일은 하루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경험해 보지 못했을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최근 종영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고두심이 맡은 용식이 엄마, 곽덕순의 대사도 나의 열렬한 동감을 받았다.


      너 오늘 내 아들 알타리 뽑게 했니?
너 오늘 화상 입은 내 새끼 땡볕에서 뺑이 돌렸어~
용식이 군대 선임한테 귀퉁배기 맞았을 때 나 군대로 닭 300마리 튀겨 간 여자여~용식이 뒤에 덕순이 있어~ 곽덕순이!
니가 용식이 건들믄 나는 멧돼지가 되는 거여~
출처: <동백꽃 필 무렵> 13화 中


아들을 위해 멧돼지가 되겠다는 이 엄마는 평소에는 인자하다가도 아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이 강해진다. 이런 대사들은 아무리 드라마라 과장되고 미화되었다고 해도 모성애의 그 본질- 자식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쳐 거대한 빽이 되어주겠다는 엄마의 사랑-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건 보통의 엄마라면 느껴봤을 것 같다. 


엄마의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엄마의 사랑이 곧 '안정적 애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애착 이론'에 따르면 아이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주 양육자의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반응으로 애착 스타일이 형성되고 그것이 그 아이의 평생을 좌우한다고 한다.


이렇게 안정형 애착이 일단 형성이 된 사람들은 필요할 때면 언제든 자신을 도와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그래서 필요할 때는 도움을 청하고 필요한 도움을 받는다. 안정적 애착 스타일을 갖고 있을 경우, 로맨틱한 사랑을 할 때에도 관계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친밀감과 헌신을 편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이렇게 변하고 싶지 않겠는가?  사랑에 관해 사실에 기반해서 설명하고 있는 책, <러브 팩츄얼리>의 저자 로라 무차도 애착 이론과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많은 증거들을 '굳게' 믿는다. 


안정형 애착 스타일의 사람들은 도움을 요청하면 그걸 받게 된다는 걸 배우게 되며, 자신이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또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이런저런 일들을 성취할 수 있다는 걸 믿게 된다. 이들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할 수 있다는 것도 배운다. 그리고 필요하면 언제든 의지할 수 있는 안전한 피난처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고 독립적으로 세상을 탐험하는 경우가 많다. - <러브 팩추얼리>, p. 75-76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의 운명을 가르는 것이 금수저, 흙수저의 차이(부모의 경제적 능력)가 아니라 '안정적 애착'의 형성 유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금수저를 타고났어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고, 흙수저로 태어났어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재능을 타고 났는지의 여부도 아니다. <아웃라이어에 소개되었던 두 사람의 이야기는 어렸을 때의 가정 환경이 사람들의 인생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크리스 랭건 (좌)/ 로버트 오펜하이머 (우)


크리스 랭건의 IQ는 195-210으로 측정되는데, 이 점수는 현재 살아있는 사람 중에서 IQ로는 가장 높다고 추정된다. 백만 명 중에 하나 태어날까 말까 한 두뇌의 소유자인 크리스는 삶 대부분을 술집 입구를 지키는 가드로 살았다. 그가 잠재력을 펼치지 못한 이유는 비참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입고 먹지도 못할 정도로 가난했고, 어머니는 네 번 결혼했는데 세 명의 남편은 자살하거나 살해당했다. 어머니의 네 번째 남편이 자신을 학대하자 크리스는 집을 나왔고 학업을 이어나가려고 했지만, 결국 중퇴했다. 중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장학금 서류를 기간 안에 제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대수학에 능하다는 사실을 전달하지 못했다. 그는 협상하는 방법을 몰랐다.


반면 원자폭탄을 제조한 물리학자 오펜하이머는 대학교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교수를 독살하기 위해 화학약품을 제조했다. 대학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그는 협상 끝에 당연해 보였던 퇴학이 아닌 정학 처분을 받았다. 20년 뒤에는 실제로 자격이 불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맨해튼 프로젝트의 열쇠를 쥐고 있는 담당자를 찾아가 자신이 적임자라고 설득해낸 일도 있었다. (이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그는 원자폭탄을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


크리스는 흙수저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법, 질문하고 협상하는 법 대신 불신하는 법, 거리를 두는 법, 의심하는 법 등을 배웠다. <러브 팩추얼리>에서 설명하는 애착 유형에 따르면 크리스는 '회피형' 애착 스타일로 보인다.


아이들이 사랑이나 위안 또는 보호 대신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아무도 자신을 원치 않는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
그들의 뇌가 다른 사람들과의 협조나 세상에 대한 탐구보다는
두려움과 방치라는 감정에 특화되는 것이다.

-<러브 팩추얼리>, p.101


다행스러운 것은 안정형 애착 스타일을 형성하지 못한 성인이라도 누구나 노력하면 안정형 애착 스타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엄마를 만났는지에 따라 내 운명이 결정되지 않아도 된다) 로라 무차는 애착 스타일을 바꿀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안정형 애착 스타일로 변하는 것'이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든 일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할 수 있는 일이다.

- 로라 무차
그러나 변화의 여지는 있다. (출처: <러브 팩추얼리>, p.110)


<러브 팩추얼리>에서는 '불안정한 사람들이 안정된 사람으로 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을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1. 안정형 애착 스타일의 사람을 찾아내 같이 지내는 것.
2. 치료 전문가를 찾는 것.
3. 사색


하지만 무작정 방법을 실행하기 전에 먼저 해야할 것은 나의 애착 스타일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다. 내가 불안정한 애착 스타일인지, 회피형인지 혹은 복합형인지 알면 그에 따른 대처 방법이 달라진다. 



이 글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은 두가지다. 

1) 아이의 양육자가 안정적 애착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떻게 형성되는 지 알게 되면 더 주의를 기울일 것이고,

 2) 안정적 애착이 형성되지 않고 이미 자란 성인이라도 스스로 획득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고 노력한다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알고 제대로 된 방법을 통해 노력한다면 주체가 내가 되든 상대방이 되든 분명히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안정적 애착 스타일로 변하는 것은 시도해 볼 값어치가 있다. 얻을 것은 너무나 많다. 또 책을 읽다 보면 주위 사람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왜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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