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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푸기 Dec 10. 2022

임신 중기 훨훨 날다… 편안한 임신부의 태교일기

뱃속에서 폭풍 대화 시작… 신비로움과 불편함의 중간

임신 중 태교 이야기는 여러 갈래로 나뉜다.

인터넷 블로그나 맘 카페에서 ‘태교’ 단어를 검색하면, 각자 다양한 방법으로 태교에 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기 두뇌발달을 위해 수학 문제집을 푼다거나, 영어 공부를 하고, 클래식 음악 등을 듣는 것이 대표적이다. 임신 초기 입덧으로 고생하던 시기를 지나니, 문득 ‘태교’란 단어가 머리에 꽂혔다.

실제로 임신 중기에 접어들면서 몸이 가볍다. 배가 제법 나오기 시작하지만 입덧도 완화되고, 잃었던 입맛도 되찾아 일상생활도 예전처럼 가능해졌다.

임신 초기 조심하느라 멀리했던 친구들도 만나고, 남편과 외식도 잦아졌다. 주말엔 드라이브 겸 외곽에 있는 카페를 찾아 데이트도 즐겼다.


“초복이 엄마는 태교로 뭘 하나요?”


어느 날 아동보건지소에서 연락이 왔다. 임신부 대상으로 태교 인형 만들기 수업이 있는데 참여하겠냐고 물어서 바로 하겠다고 답을 했다. 집에서 따분할 때도 있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아기를 위해 애착 인형을 만드는데 무료인 데다 다른 임신부와 소통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됐다. 아마 보건소에서 임신부 등록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처가 남겨진 모양이다.

총수강생은 6명이다. 나와 비슷한 중기 주수인 임신부도 있었고, 30주를 넘긴 후기 임신부도 여럿 참여했다.


수업 첫날,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아기를 위해 어떤 태교를 하는지 말이다. 내 대답은 이랬다.


“아, 저는 별다른 태교를 하지 않는데요.”


사실 그랬다. 임신 후 아기를 위해 특별하게 무언가를 하진 않았다. 두뇌 발달을 위한 문제를 풀거나, 음악을 더 챙겨 듣거나하는 일도 없었다.

그냥 되도록 기존 일상을 유지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식사를 잘 챙겨 먹는 게 전부였다. 다만, 마음의 안정을 위한 노력은 지속해왔다. 스트레스를 덜 받고, 운동으로 기분전환도 하고

맛있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으며 아기를 생각했다. 임신부에 필요한 영양제도 빠짐없이 챙겼고, 일을 쉬면서 그 전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다.


짧지만 남편과 함께 태교 여행도 다녀왔다. 올봄 문득 설악산에 가고 싶어서 때마침 눈여겨봐 둔 호텔도 있었다.

설악산 아래에 있는 낡은 호텔을 예약했다. 사실 이 호텔은 오래됐지만, 클래식한 분위기가 가득한 영국을 모티브로 꾸며진 곳이다.

영국에서 유학한 나로서는 구미가 당기는 장소였다. 실제로 영국의 더블데커(2층 버스)가 호텔 앞에 전시돼 있고, 호텔 전체가 영국 콘셉트로 운영됐다.

다음날 조식을 먹기 위해 내려간 레스토랑은 조명이며, 음식 종류, 테이블과 의자 등이 영국 호텔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이국적이었다.

설악산을 배경으로 먹은 조식은 정말 꿀맛이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설악산에 왔으니 20년 만에 온 셈이다.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산책 삼아 설악산국립공원에 들어갔다.

원래는 케이블카를 탈 계획이었지만 하필 우리가 방문한 날짜에 시설 정비를 하고 있어서 올라가진 못 했다. 대신 설악산 공원 내를 산책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속초의 영랑호는 그야말로 진풍경이었다.

호수를 끼고 산책로가 형성되어 있는데, 동네 주민들의 운동 코스로도 유명해 보였다. 비교적 온화한 날씨였지만, 겨울 점퍼를 여미고 호숫가를 걷기 시작했다.

물이 반짝반짝 빛나는 윤슬도 너무 아름다웠다. 감자옹심이로 따끈하게 속을 달랬고, 싱싱한 회 한 접시를 포장해 호텔에서 느긋한 저녁시간을 보냈다.

남편과 나, 아기 모두 건강하게 이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마음에 감사함이 밀려왔다.


“엄마가 편안한 게 가장 좋은 태교이다.”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국내 쌍둥이 출산으로 유명한 서울대병원 전종관 교수가 ‘유퀴즈’에 출연했을 때 “엄마의 태교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뱃속에 아기가 있을 때 엄마가 노력하는 태교가 실제로 아기에게 영향을 미칠지 여부에 대한 연구 결과를 뒷받침할만한 근거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별다른 태교를 하지 않은

나로서는 전종관 교수의 이 말이 위로가 된다. 국내 제일의 의과대학 산부인과의 저명한 교수가 한 말이니 믿고 따라도 되지 않을까.



태교를 처음으로 느낀 날이 기억난다. 임신 16주 정기검진을 위해 병원을 찾은 날이다.

교수님의 진료를 보기 위해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는데, 뱃속에서 미끄덩거리는 느낌이 났다. 구체적으로 뱃속에 얇은 실을 잡아당겨 그 실이 미끄러지는 느낌이었다.

누군가는 물고기나 뱀이 스르륵 지나가는 느낌이라고도 하는데, 어쨌든 낯선 경험은 분명했다. 신기해서 그 느낌을 기억하고 싶었는데, 이후로 한참 동안 태동은 느껴지지 않았다.

임신한 지 6개월이 되면서 본격적인 태동이 시작됐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배 안에 무언가 퉁퉁거리는 느낌과 함께 미끄덩한 물체가 지나가는 느낌도 선명했다.


저녁식사 후 소파에 앉아서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배 안이 요란해졌다. 기존 태동과는 다른 느낌이었는데, 마치 속방귀(?)를 뀌는 듯하면서 작은 물방울이 터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 이후 주수가 더해갈수록 아기의 움직임은 선명해졌다. 미끄덩하던 배안의 느낌은 꿀렁한 모습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꾸~~~~ 물렁한 태동도 많이 느낀다.

태동이 활발하면 아기가 건강하다는 뜻이란다. 혹자는 뱃속에서 태동이 요란한 아기는 태어나서도 에너지가 넘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도 한다.


태교 여행을 떠나는 날, 새벽에 일찍 눈이 떠졌다. 남편과 6시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5시도 안 된 시간에 일어나 식탁에서 갓 구운 토스트를 먹던 참이었다.

뱃속의 아가 역시 내가 깨어난 걸 아는지 태동을 시작했다. 고요한 새벽 배 안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는 모습을 느끼고 있자니, 아기가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새벽부터 폭풍 태동을 하는 것을 보니 요 녀석 오늘은 말이 많을 모양이다.


“엄마 잘 잤어요? 난 따뜻한 양수 속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양수 덕분에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어요.”


이후 태동을 통한 아기와의 교감은 계속됐다. 현재 임신 25주 차를 보내고 있는데, 아기의 움직임에서 강해진 힘을 느낄 수 있다.

일단 시도 때도 없이 태동이 느껴지는 것은 물론,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간대의 태동은 옷을 입고 있는데도 배가 들썩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신기하다.

배 안에 아기가 있다는 사실을 매일 실감한다.


“여보, 오늘도 초복이 활발하게 움직였어? 나도 태동 한 번 느껴보고 싶은데, 이 녀석 반응해주려나?” 하루에도 몇 번씩 폭풍 태동에 놀란 반응이 이어지자 남편은 태동이 어떤 느낌인지 무척 궁금해했다.


“여보, 지금이야. 초복이 태동 엄청 활발하게 하고 있어.” “초복아, 아빠야… 지금 뭐해?”


손을 깨끗히 씻고 배에 손을 엊어 아기를 부르면서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3분 여가 지났을까. 배가 꿀렁거렸다. “엇, 지금 뭐가 퉁 쳤는데? 이게 태동이야? 분명 배 안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는데? 맞아?”


남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놀랍고, 신기하고, 기특한 마음이 가득 찬 눈빛이었다. 첫 태동의 감동은 길었고, 이후 매일 저녁 아기 이름을 부르며 배에 손을 얹고 있다.

아기의 작은 움직임에도 우리 부부는 매우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폭풍 태동을 겪고 있다.


“엄마, 하늘만큼 땅만큼 보고 싶어요. 오늘은 제가 꿈에 찾아갈게요. 엄마랑 노는 게 제일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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