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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푸기 Dec 23. 2022

결혼하면 임신되는 거 아녔어?… 세상엔 당연한 게 없다

임신 전에는 꿈에도 몰랐던 일… 겪어봐야 안다

임신부가 되어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약간 달라졌다.

그동안 관심도 없었고, 내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보이지 않았던 세상을 알게 됐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느즈막히 올린 결혼에 두 번의 유산, 자연임신 시도 끝에 결정한 시험관 시술, 40대 임신부가 되어보니 그전에는 전혀 몰랐던 세계가 펼쳐졌다.

이번 브런치에서는 ‘임신 전에는 꿈에도 몰랐던 일’에 대해 나누려고 한다.


내 나이 38, 남편 나이 39. 마흔 전에 막차를 탄 기분으로 결혼에 골인했다. 불같은(?) 짧은 연애 후 결혼식까지 9개월이 걸렸으니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결정을 번갯불이 콩 구워 먹듯이 해치운 느낌이었다. 내 선택에 후회는 없어야 했기에 남편과 친구처럼 잘 지내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여보, 난 그래도 신혼을 좀 즐기다가 임신을 계획했으면 좋겠어. 조금 놀다가 가져도 괜찮겠지?
그러다가 금방 생기는 거 아냐?”


지금 생각하면 큰 착각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결혼만 하면, 임신 시도를 시작하면, 곧바로 아기가 생길 것만 같았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신혼생활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채 아기가 덜컥 생기면 억울한 마음이 들 것 같았다. 평생 짝꿍이 생긴 만큼 평상시엔 열심히 일하다가 휴가 땐 해외여행도 좀 가고, 금요일 퇴근 후 훌쩍 동해바다로 떠나거나 주말 브런치 맛집에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면서 그야말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남편과 당분간 신혼을 즐기기로 합의했다. 구체적으로 기간을 정하진 않았지만 신혼생활을 즐기다 보면 1년 안에 아기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이렇게 건강한데, 서로가 즐겁게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기가 우리를 찾아오겠지 싶은 막연한 바람.


어느 날부터 인터넷 검색창에 ‘임신 노력’, ‘임신하는 법’ 등을 검색하는 나를 발견했다. 임신을 위한 노력을 시작한 건 결혼 6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동시에 동네 보건소에서 ‘산전검사’를 받았고, 별 문제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내가 찾아보니까 배란테스트기를 많이 하더라고. 인터넷에서 주문했으니, 우리 이달부터 시도해 볼까?”


3개월이 지나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떴다. 시기는 꽃이 막 피어나는 봄이었는데, 그 무렵 회사일도 무척 바빠 매일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 살던 때였다. 급작스런 임신 소식에 남편과 함께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난다. 유난히도 졸려했던 내 모습을 본 남편은 속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단다.

퇴근 후 소파에서 티브이를 보다가 잠들어버린 날이 많았기 때문.


“거봐, 우리 엄청 건강하다니까. 지난 두 달 동안 소식이 없어서 반신반의했는데, 와 정말 아기가 생겼나 봐. 지금부터는 무조건 조심해.”


30대 후반에 결혼해 마흔 전에 엄마가 되리라는 잠재적 계획(?)에 성공했다는 기쁨이 밀려왔다. 결혼 이후 인생의 큰 숙제의 물꼬는 튼 느낌이랄까. 친한 친구가 출산을 앞둔 시점이었고, 무사히 출산하면 동갑내기 친구가 생겨서 서로 엄청 신기해했다. 병원을 찾기 전 세상에서 가장 긴 2주를 보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임신 극초기에 병원을 찾아도 피검사로만 알 수 있다고 해서 아기집이 보일 때까지 시간을 더 기다렸다.


“축하합니다. 임신 맞습니다. 아기집이 잘 자리 잡았네요.”


얼마 후 산부인과에서 아기집을 확인했고, 병원에서 난생처음 ‘임신확인서’라는 것을 받았다. 기쁜 마음에 양가 부모님에게도 임신 소식을 서둘러(?) 알렸다.

남편의 경우 조카 2명이 있어서 첫 손주는 아니었고, 우리 집은 내가 장녀라서 엄마에게는 첫 손주, 동생에게는 첫 조카였다.

일주일 뒤 방문한 병원에서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기집 안에 난황 하나가 더 발견된 것. 나의 첫 임신은 ‘쌍둥이’ 임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심장소리를 확인하러 병원에 들른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태아 중 한 명의 심장소리만 확인된 것. 나머지 태아의 경우 심장이 뛰는 것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다.

“쿵쾅쿵쾅… 태아 둘이 아기집을 공유하고 있어서 한 명이 도태될 경우 다른 한 명도 같이 도태될 가능성이 있어요. 좀 더 지켜봐야겠네요.”


아무것도 몰랐던 우리 부부는 그저 긍정적인 생각만 하려고 노력했다.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고, 처음으로 온 아가가 이렇게 쉽게 떠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튼튼하라고 지었던 태명을 부르며 하루하루를 버텼는데, 일주일 뒤 아기는 이후 우리 부부 곁을 떠났다. 나의 생애 첫 임신은 유산으로 종결됐다. 이후 남편과 나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몸회복하는데 집중했다. 얼떨결에 찾아온 아기, 뜻밖의 쌍둥이 소식, 그리고 유산…한 달 만에 벌어진 일에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사실 유산을 겪은 무렵 나의 허리디스크가 터졌다. 결혼 전부터 말썽이던 내 허리는 괜찮다가 임신을 알게 된 이후 급격히 안 좋아지면서 소파수술을 한 일주일 뒤 급기야 터져 버렸다. 걸을 수 없었고, 난생처음 겪어본 고통에 119를 불러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아기를 잃은 슬픔을 마주하기도 전에 건강 악화로 다시 병원 신세를 졌고, 3주 사이 두 번의 수술을 받게 됐다.


몸부터 추슬러야 했다. 한 달간 회복기간을 거친 후 빠르게 일상에 복귀했다. 임신이야 생리를 몇 번 거치면 바로 시도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허리 회복이었다. 적어도 6개월이 지난 후에 임신 시도를 하라는 병원의 조언을 받고, 그 해 가을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다. 운이 좋게도 아기는 이듬해 봄에 찾아와 주었다.


“여보 이번엔 아기를 꼭 지키고 싶어. 일을 그만두더라도 건강한 아기를 출산하고 싶은데… 잘되겠지?”


느낌이 좋았다. 적지 않은 나이에 자연임신을 시도한 지 5개월 만에 다시 임테기 두 줄을 확인했고, 병원에서 아기집도 잘 자리 잡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옮긴 산부인과의 원장님도 유난히 따뜻한 분이었다. 그렇게 2021년 봄, 두 번째 아기를 맞았다. 이번엔 아기집 하나가 자리 잡았으니, 쌍둥이에 대한 리스크도 없었다. 앞선 경험의 충격이 컸던 탓일까. 남편과 나의 불안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쯤 되면 태아 심장소리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였다. 두 번째 아기는 우렁찬 심장소리를 들려줬지만, 이후 아기집이 더 커지지 않았다. 아기집의 크기가 머물러 있으면 태아가 잘 자랄 수 없게 된다. 아기집이 작다는 말을 병원에서 들은 후 일주일간 이온음료 등을 마시면서 아기집 크게 만드는 작전에 나섰지만, 끝내 두 번째 아기도 우리 곁을 떠났다.


믿을 수 없었다. 두 번 연속 유산이라니… 결혼 후 1년 동안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쓴 맛을 모조리 맛본 느낌이었다. 몸은 몸대로 상할 것이고, 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떤 위로도 내게 소용이 없었다. 그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계류유산이라는 것은 현대 의학으로는 원인을 알 수 없다. 정자와 난자가 수정할 때 이미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태아로 발전했다고 보는 게 우세했다. 임신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임신을 한 여성이 어떤 노력을 한다고 되돌릴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우리 부부는 ‘습관성 유산’ 검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모두 ‘정상’. 특이사항은 없었다. 결국 이번 아가도 우리와 인연이 닿지 않은 것으로 여기면서 가슴에 묻어야 했다. 소파수술을 하기 위해 누운 침대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손과 발은 이미 바들바들 떨고 있었고, 소리 내어 울지 않으려고 다문 입술도 파르르 떨렸다. 어지러운 상태에서 휠체어를 탔고, 회복실에서 남편과 조우했다.


“여보, 아기 잘 보내고 왔어. 하늘의 별이 될 거야.”


마취가 덜 깬 상태에서 내가 남편에게 한 말이다. 문장으로 쓰려니 조금 오글거리지만, 아기는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이 됐을 거라고 지금도 믿는다. 저 말을 하면서 내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단다. 결혼생활 중 가장 슬픈 장면을 떠올리자면 이때가 아닌가 싶다.


임신… 인생에서 가장 뜻대로 안 되는 일이었다. 노력한다고 임신이 되는 것도 아녔고, 운 좋게 임신이 됐더라도 출산이 당연한 것도 아니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건강한 아기가 태어나는 일은 정말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겪어보기 전에는 꿈에도 몰랐던 일이다. 결혼하면 임신하고, 아기가 잘 태어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분명 이 과정에는 하늘의 뜻이 있었다.


이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지금 품고 있는 세 번째 아기(초복이)가 더없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태동을 활발히 하는 것도 입체초음파를 통해 확인한 얼굴도, 손과 발 모두 정상이라는 것을 확인했을 때 너무 기쁘고 행복했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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