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손 잡고 입학식에 가던 날. 한 겨울이 한참 지났는데도 여전히 차가운 겨울바람에 운동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 어머님들은 뒤로 물러나 주세요. 삐-익 –삑 ”
주임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아이들은 이리저리 움직였다.
“ 앞으로-오 나란히. ”
아이들을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고 두 줄로 세워 각반 담임선생님을 만나러 교실로 향했다.
교실에는 두 명씩 앉을 수 있게 직사각형 나무책상과 걸상이 배치되어 있었다. 책상 밑에는 책과 공책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옆에는 가방과 신발주머니를 거는 못이 박혀 있다.
윤경은 양 갈래로 딴 머리를 작은 손으로 쓱 만져 양어깨에 가지런히 놓고 엄마가 옷핀으로 고정한 하얀 가제 손수건도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했다. 조금 큰 의자를 책상 앞으로 끌어당겨 엉덩이를 의자 뒤에 바짝 붙이고 팔을 허리 뒤로 올려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은 초록 칠판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미지의 선생님을 기다렸다. 옆에 앉은 코 찔찔 남자 친구는의자를 들썩거리며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부산하게 움직였다. 옆 친구가 신경 쓰이는지 윤경은 새초롬해서 미간을 찌푸렸다.
드르륵. ♬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들어오죠. 첫눈에 난~ 알았죠~오오♪
아이보리 투피스 정장을 입은 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윤경은 선생님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강렬한 눈빛 때문일까. 선생님은 자박자박 윤경 옆으로 다가와 허리를 수그리고 이름을 부르셨다.
“ 윤 경. 이름처럼 똘똘하게 생겼네. 오늘부터 일주일간 반장이에요. 알았죠? ”
' 반장?'
윤경은 그게 뭔지는 몰라도 오매불망 기다리던 선생님이 자기 앞에 있는 게 좋아서 입꼬리가 자꾸만 씰룩거렸다.
까마득히 먼 옛날. 콩닥콩닥 첫 설렘.
윤경은 첫 담임선생님의 실루엣과 말투를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김 선생님의 추억
마른 몸매에 하얀 피부. 반 곱슬머리에 날카로운 눈매의 김 선생님은 음악을 담당하셨는데 교내 합창부를 신설하고 활발한 활동을 하셨다. 어린 윤경의 재능을 알아보고 남다른 열정으로 TBC ‘누가 누가 잘하나 ’ 연말 결선까지 진출하게 했다.
선생님이 백지장처럼 하얗고 뼈가 보이는 긴 손가락으로 오르간을 치면 반 아이들 모두 건반 위를 날아다니는 손가락 움직임에 눈이 휘둥그레지곤 했다. 선생님은 말씀하실 때 느릿느릿한데 합창시간에 음정이 틀리면 날카롭게 지적해서 모두를 긴장하게 만드셨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선생님은 윤경을 교무실로 부르셨다.
“ 윤경아, 이 노래 한번 해봐 ‘ 갈매기 ’ ”
“ 여기.... 서요? ”
“ 그럼, 텔레비전에 나가려면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거 많이 해 봐야 해. ”
선생님은 실제 무대에 서는 것처럼 아이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연습을 꾸준히 시켰다. 학년이 바뀌고 열정 가득한 예술가 선생님은 이듬해 다른 곳으로 전근 가셨다. 김 선생님은 어린 시절 음악적 재능을 키우고 예술가의 삶을 동경하게 했다. 선생님이 바라는 대로 진로 선택을 하진 않았어도 윤경에게는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신 키다리 선생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