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콘클라베>, <브루탈리스트> 외
<콘클라베>
인간의 손으로 신이 점지한 교황을 선출한다. 콘클라베를 진행하는 토마스 로렌스는 의심 없는 확신을 경계해야 한다고 추기경들에게 말한다. 그는 유력 후보들을 끊임없이 의심한다. 하지만 의심을 그치지 못하는 건 확신을 간절히 바라는 까닭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잣대로 타인을 재단하는 자들에게 신이 묻는다. 신의 피조물에 앞서는 절대적이고 명백한 기준이라는 게 있기는 하는가.
<브루탈리스트>
한때 부다페스트의 유망한 건축가였던 라즐로는 가족의 생사도 알지 못한 채 홀로 미국 땅을 밟는다. 고통으로 산산조각 난 영혼은 스스로를 서슴없이 해하고 쾌락으로 순간순간 연명한다. 한편 미국 자본주의의 최상위 포식자 밴 뷰런 가족이 라즐로의 쓰임을 발견한다. 그들은 건축가 라즐로에게 지역 문화 센터 설계를 맡기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야만적인 본색을 드러낸다. 라즐로는 그가 경험하고 목격한 인간성의 밑바닥을 반영하는 차갑고 깊은 콘크리트 건물에 십자가 모양 빛을 내리꽂는다.
<트윈 픽스>
테레사 뱅크스 살인 사건의 범인을 잡지 못한 채 1년이 흐른다. 고등학생 로라 팔머는 어느 날 찢긴 일기장을 발견한다. 그 일기장에 12살부터 자신을 괴롭히던 환영에 대해 남몰래 기록하고 있었다. 더 큰 위험이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가 엄습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로라가 약물과 성적 쾌락으로 도피하는 내내 영혼을 옥죄는 고통이 흐른다. 맨 정신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은 악몽으로 우회해서라도 모습을 드러낸다. 마침내 로라가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었던 이가 그녀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는다.
<레드벨벳 해피니스 다이어리>
카메라를 보고 예쁜 표정을 짓던 소녀들이 그 너머에 있는 팬들에게 행복을 전하는 아티스트가 되었다. 레드벨벳은 걸그룹 수명은 정해져 있다는 믿음이 팽배하던 시절에 데뷔했다. 그러나 멋진 선배 가수들이 여전히 건재한 모습을 보여 주며 그 믿음을 부쉈고, 그동안 레드벨벳은 현역으로서 10주년을 맞았다. 레드벨벳 활동을 되돌아보며 멤버들은 데뷔곡 '행복'의 가사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며 눈을 반짝인다. 가수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누적된 10년이 빛을 발하는 무대들이었다. 상영 시간 내내 너무 아름답고 너무 행복해서 울었다.
아이린, 슬기, 웬디, 조이, 예리가 원하는 만큼 앞으로 오래오래 무대에 서 주기를. 무대 뒤에서 마음껏 행복을 경험하고, 무대에서 다채로운 행복을 표현하는 아티스트로 성장하기를 응원한다.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내 영혼을 구원하려는 거야?"
남의 영혼을 구원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사실 그 누구도 구원하지 못한다. 구원은 스스로에게 이루어지는 일이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영영 서로에게 구원이 될 수 없다는 건 아니다. 아무런 의도 없이 순수하게 상대를 비추는 거울로 존재할 때, 누군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영혼을 비로소 껴안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알렉산드리아는 구원의 말뜻도 모르지만, 로이의 입에 성체를 넣어준다. 스스로를 파괴하려는 악의에 사로잡힌 로이의 영혼은 알렉산드리아의 순수함에 비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