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학교에 둘째는 유치원에 보낸 후, 홀로 집 근처 숲길을 걸었다. 그 길을 걷다 보니 문득 아이들이 어렸을 때 생각이 떠올랐다. 당시 아이들은 5살, 3살. 매일 집 앞 놀이터와 산책길을 오가며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 때였다. 매일 오는 같은 길. 하지만 아이들 눈에는 무엇이든 매일 매 순간이 새로운 것 같았다. 아이들은 매 순간을 다시 태어난 것처럼 새롭게 보고 느끼는, 어른들이 갖지 못한 신비로운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두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되었다.
숲 길에 들어서면서부터 보이는 나뭇잎 하나, 꽃 잎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고 보는 아이들이 참 신기했다. 다리도 아플 텐데 몇십 분씩 쪼그리고 앉아 개미를 관찰하기도 하고,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어다 바닥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러다 산책하는 강아지가 지나가면 쪼르르 따라가 "이 강아지 순한 가요? 만져도 되나요?"라며 강아지 주인과 대화를 하기도 하고, 운 좋으면 순한 강아지 한번 만져보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작은 돌, 큰 돌 가져가 쌓아 올리며 자신들의 비밀 기지를 만들기도 하고, 나뭇잎사귀와 꽃 이파리를 가져다 그 안을 예쁘게 꾸미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반나절이 훌쩍 지나갔다. 당시에 두 아이 모두 기관에 다니지 않고 있었기에 아이들에게 늘 충분한 건 시간이었다.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 빨리 집에 들어가 준비해야 되거나 다음 날 등원 시간에 맞추어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무조건 일찍 자야 하는 일상의 계획표에서 다소 벗어난 삶이었다. 그러나 그런 시간들 덕에 아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걸 충분히 즐기고 관찰하고 탐색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 해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우리는 설악산에 있는 콘도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발생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콘도에서 물놀이도 하고 근처 목장에서 양 떼들에게 풀도 주고 만약 아이들 컨디션이 좋으면 설악산 등반도 살짝 시도해보자는 계획을 세웠다. 아이들과 설악산을 오르는 건 무리가 있겠지만 중간까지만 가도 되고, 무엇보다 케이블 카가 있지 않은가. 케이블 카를 타고 올라가면서 보이는 산의 절경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 엄마 아빠가 올랐던 산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기적의 유치원>에 소개된 일본의 어느 유치원에서는 선생님과 아이들과 함께 후지산을 오르며 자연의 좋은 정기를 아이들에게 심어주려 노력한다는데 우리도 해보자는 다소 흥분된 마음으로 설악산에 도착했다.
산에 오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직 감을 못 잡은 아이들은 일단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따라나섰다. 그렇게 시작은 좋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복병을 만났으니 그건 바로 바닥에 떨어져 날개를 파르르 떨고 있는 매미 한 마리였다. 먼저 아들 녀석이 매미를 발견했다. 한창 여름이 시작되면서부터 밖에서 들려오는 매미 소리에 귀 길울이며 매미 책을 보고 놀이터에서 매미를 관찰한 생각이 났는지 "이건 아마 털 매미인 것 같은데요. 날개 모양이 그렇게 생겼어요." "어, 설악산에 사는 매미들은 우리 동네 매미랑 우는 소리가 다른데요? 소요산 매미인가?" "알을 낳고 떨어져 죽기 전인가?" 하며 자신이 아는 지식을 총동원하기 시작했다. 둘째도 신기한 지 바닥에 떨어진 매미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손짓, 눈짓으로 신기함을 표현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아들의 반응에 대답을 해 주던 남편은 슬슬 인내심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좀 가자~"라며 매미 옆에 붙어 있는 나와 아이들에게 불편한 심기를 보였다. 지금 출발해서 가도 아이들 걸음이 느리니 천천히 올라가면 오래 걸릴 텐데 여기에서 이렇게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된다는 거였다. 물론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 그러나 설악산 매미가 동네 매미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하며 진지하게 둘이 관찰하는 모습을 보니 아이들에게 설악산 등반이라는, 부모가 미리 정해놓은 계획에 맞추기 위해 억지로 데리고 가는 게 과연 좋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아이들이 오래 관찰을 해봐야 몇십 분 아니겠는가. 혹 좀 더 걸리면 어떤가. 어쩌면 이 아이들에게는 설악산을 올랐다는 것 보다도 설악산에서 처음 만난 이 매미를 관찰하는 순간이 더 소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야, 우리가 아이들과 설악산 올라가려고 오긴 했지만 계획대로 하기 위해 아이들 혼내고 억지로 데리고 올라가는 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까 싶어. 애들은 지금 저거 보면서 저렇게 즐거워하는데. 차라리 그냥 좀 늦어지고 계획대로 다 못 올라가더라도 그냥 마음 내려놓고 천천히 가자, 응?"
남편은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고맙게도 알겠다며 내 말에 수긍을 해줬다. 그래서 아이들은 설악산에 빨리 올라야 하는 부모의 계획에서 자유로워졌고 마음껏 매미와 시간을 보냈다. 뒤 따라오던 많은 등산객들이 하나, 둘 우리를 앞질러 갔다. 그러다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아이들이 바닥에 떨어진 매미에 얼굴을 들이대고 뭐라 뭐라 쫑알대는 모습을 보시며 웃음을 지으시기도 하고 "뭐가 그렇게 신기해서 쳐다보는가" 라며 말을 건네기도 하셨다. 그렇게 30분 넘게 둘이 쪼그리고 앉아 진지하게 매미 연구를 하던 남매는 이제는 볼 만큼 봐서 미련 없다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리고 그제야 우리 가족은 설악산 등반을 위한 위대한(?) 한 걸음을 뗄 수 있었다.
벌써 몇 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때 설악산에 갔던 추억을 떠올리면 나는 다른 어느 것보다도 그 '매미 사건'이 떠오른다. 어른들에게 등산은 곧 정상을 향해 오르는 것이기에 그 목표 하나만을 생각하며 걷는다. 나 역시 산에 오를 땐 걷는 걸음에 집중하다 보니 자연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놓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아이들에겐 산에 올라야 하는 그 목적보다도 그 순간을 느끼는 것이 더 중요했다. 매미를 관찰한 후 산을 오르면서도 풀벌레 소리, 새소리를 들었다고 이야기하고 자신의 눈높이에 핀 아주 작은 꽃을 꺾어 향기를 맡아보고 싶어 했다. 땅에 떨어진 도토리를 주워 예쁘다고 내 손에 쥐어 주기도 하고, 강아지풀을 꺾어 코를 간질여 보기도 했다. 산에 오르며 정상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산이 우리에게 주는 풍요로움을 온 감각으로 느끼고 즐기고 있었다.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가 이 아이들처럼 인생을 산다면 삶이 얼마나 풍요로울까 생각해봤다. 어쩌면 우리는 이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인생을 즐기지 못하고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한다는 프레임에 갇혀 사는 건 아닌 지 모르겠다. 나 역시 목표 지향적인 삶을 살아왔기에 아이들이 삶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 탐구하고 싶어 하는 모습을 지켜주고 싶다. 매 순간을 경이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매 순간을 새롭게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하고 값진 것이기에. 비록 우리 아이들처럼 땅에 떨어진 매미를 관찰하느라 산에 오르는 중이라는 목적을 잠시 잃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러면 또 어떠한가. 그게 삶이고 인생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