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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유인간 Apr 06. 2020

돈이 별로 안 드는 시골 삶

백수가 된 지 8개월째의 일기

퇴사를 준비하면서 퇴사 선배들에게 꼭 물어본 질문 하나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였다. 나는 이런저런 소일거리, 재테크 성공 등의 비밀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의외의 공통된 해답은 돈이 별로 안 든다는 것이었다. 내가 은퇴를 해보니 과연 그러하다. 돈을 안 쓰면 굉장히 궁핍한 생활이 되는 게 아닌가 걱정했으나 딱히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원래도 자식이 없으므로 나 자신(과 남편)만 케어하면 되기도 하지만, 회사를 다닐 때 지출했던 옷, 가방, 화장품, 외식비와 같은 것들이 불필요해지니 그야말로 돈 쓸 일이 줄었다. 




옷은 운동복 정도만 새로 구입하고 있다. 

회사 다닐 때에 비해 운동을 자주 하다 보니 좀 더 사게 된 것인데, 일주일에 많아야 4~5일 정도이니 세일 때 몇 벌 사면 끝이다. 

쇼핑을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매일 회사에 나가야 할 때는 옷장에 참 입을 옷이 없어서 계절 별로 한 번씩 SPA 매장에 방문하곤 했는데, 이제는 입는 옷이 없어서 퇴사 후 몇 차례나 옷장에서 옷을 꺼내 버리고 있다. (그렇게 버려도 지금도 여전히 버리려고 노려보고 있는 옷들이 남아 있다.)


가방은 워낙에도 안 들고 다니기도 했지만 이제 정말 들 일이 없다. 

가끔 하나로마트 갈 때마다 꺼내 드는 에코백 정도…  일주일에 한 번 문화센터에 갈 때 이것저것 소지품을 넣은 가방을 들고 다니기도 했으나 이제 코로나19로 인해 안 간지 두 달 째다. 


화장품도 마찬가지이다. 

해외로 휴가를 갈 때마다 면세점에서 화장품을 몇십 만원 어치씩 쟁이곤 했고, 다음번 휴가까지 간당간당하게 사용하곤 했는데, 작년 여름에 구입한 아이라이너가 여전히 새 박스 상태로 남아있다. 

색조화장품은 물론이고 기초화장품도 잘 줄지 않는데, 집에만 있다 보니 물 세안으로 대체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외식비야말로 획기적으로 줄었다. 

(다만, 장 봐서 먹는 식비가 획기적으로 늘었다…) 

원체 외식보다는 집밥을 선호하는 편이었지만, 아무래도 사회생활할 때는 집밥을 준비하기엔 너무 지쳐서, 그리고 자의와 타의에 의한 모임 때문에 외식이 잦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퇴사 후 지방으로 이사를 왔으므로 모임을 가질 친구가 없고(!) 시간과 에너지는 많으므로 삼시세끼 집밥이다. 심지어 대부분 집에서 밥을 먹으니 나 한 사람의 외식비만이 아니라 남편의 외식비까지도 줄어들었다.


이 외에 운동 비용과 문화센터 비용이 들긴 하는데,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는다. 

운동 비용은 바쁜 시간에 맞추지 않아도 되어 오히려 저렴해졌고, 문화센터도 한 달에 25만 원 정도이니 뭐, 학비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낼 만 하다.


무엇보다도, 사고 싶은 게 예전만큼 많지 않다. 

매일 누군가를 만나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사고 싶은 게 생기기 마련이다.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 심리도 있을 것이고, 꼭 필요하지 않아도 나도 저것 써보고 싶다거나 갖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물건을 구매한 것이 꽤 많았다. 내 옆자리 사람이 쓰는 핸드크림이나 볼펜이라도 눈여겨보게 되는 것이다. 이제 내 시선 자체가 차단됐으니 신기하게도 사고 싶은 게 별로 없다.




그리하여 과연, 돈이 그리 많이 들지 않는다. 

물론 기본적인 생활비라는 것이 있지만, 회사 다닐 때에 비해서는 현저히 적게 드는 것이다. (그래서 연말정산에 직장인 기본공제가 있나 보다.) 

게다가 서울을 떠나 대전으로 오니 전반적인 물가가 저렴해서 체감이 더 크다. 


다만 휴가 비용 만은 여전히 많이 들고 있어서 고민이다. 

이건 여행 메이트인 남편의 영향인데, 학교로 이직했더니 일반 회사 다닐 때보다 휴가 자유도가 낮아져서 성수기인 방학에만 휴가를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차차 해결해보기로 하자. 


그러므로 나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에게 말하고 싶다. 

은퇴하면 두려워말고 우리 동네로 오세요. 같이 싸게 놀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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