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특성상 육로로 국경을 넘는다는 건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 꿈꾸고 있지 않을까 한다. 비행기를 타고 해외를 나가는 것도 좋지만 차를 타고 국경을 넘거나, 걸어서 넘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하지만 그 로망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볼리비아 국경 줄
사진에 보이는 국경 사무소 줄을 보고 나의 환상은 처참히 깨졌다. 볼리비아 국경 사무소에서 아침 7시부터 줄 서서 기다리다 보니, 생각해 왔던 그런 신나는 모습이 아니라, 춥고, 피곤하고, 가져온 서류에 문제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리 오래가지 않았던, 걸어서 넘는 국경에 대한 로망
코차밤바에서 비야손까지 약 16시간을 걸려 도착한 국경 마을인데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다들 서둘러서 짐을 챙기고 나가는 걸 보면서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들 줄 서려고 분주하게 출발했구나.'를 한참 뒤에 줄을 서며 느꼈다. 결국 그렇게 2시간 반을 멍 때리며 시간을 보냈다.
저 버스는 어디로 가는걸까?
왼쪽 사진 바로 앞에 있는 이 친구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출신인데 일하러 볼리비아에 온다고 했다. 엄마랑 같이 보따리 장사를 하는 것 같았는데 스페인어가 부족해서 더 깊은 대화는 나누지 못했다. 처음 줄 설 때부터 만난 친구인데 국경을 지나다니는 버스를 보면서 물어봤다. "차라리 지금 버스터미널로 돌아가서 버스 타면 지금 줄 서있는 것보다 빠르지 않을까?" 그 친구의 대답은 절대 아니라고 저 버스는 아르헨티나로 가지 않는다고 했는데, 줄 서있는 약 2시간 반동안 5대는 족히 지나가는 걸 보면서 긴가민가했다.
이미 줄을 서 있던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줄은 갈수록 더 길어지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채로 시간만 흘러서 그냥 계속 줄을 서있었다. 이 친구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과감하게 한 번은 버스 터미널로 돌아가서 해 볼 만한 베팅이었는데 여러모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볼리비아 - 아르헨티나 국경
이번엔 아르헨티나 쪽 국경 사무소인데 직원들이 컨테이너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이것저것 서류를 미리 준비했지만 여권만 확인하고는 입국 심사가 끝났다. 그래서 컨테이너 우측 건물에 가서 짐검사를 받았는데 여기서 작은 문제가 발생했다...
잠시 빼앗긴 내 렌즈
들어가서 가지고 있던 모든 짐을 엑스레이 검사받았는데, 갑자기 캐리어를 열어보라고 했다. 문제 될만한 것은 없기 때문에 당당하게 보여줬는데 예상치도 못한 렌즈를 문제 삼았다. 처음에는 이게 무엇인지 물어보더니 이후에는 자기들끼리만 얘기하고, 새 제품 (약 한 달 반을 쓸 수 있는 박스 한 개)을 가지고 갔다.
지금까지 비행기 수화물로 잘 들고 다녔으니 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말 난감했다. 별거 아닌 물건이면 그냥 버리는 셈 치고 올 텐데, 렌즈는 내게 맞는 도수와 가격 등등 생각하면 뺏길 수가 없어서 거의 울다시피 빌었다.
열려 있는 캐리어 한쪽 구석에 있던 도복을 들어 보이며, 운동할 때 쓰는 렌즈고, 안경을 벗으면 정말 안 보여서 가지고 다닌다고 얘길 했다. 대답도 없고, 관심 없어 보여서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한 30분쯤 지났을까.별거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다행히 돌려받았고, 정말 고생스러운 첫 육로 국경을 넘어본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