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 걸 좋아한다. 군대에 있을 때도 행군을 제일 좋아했다. 모두가 줄을 맞추어 걸을 때도, 걸으면서 나 혼자만의 사색을 할 수 있었다. 힘은 들었지만 오로지 내 생각에 집중할 수 있었던 유일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마추픽추를 오고 갈 때에도 기차를 이용하지 않고, 봉고차를 타고 이드로 엘렉트리까(Hidro eléctrica)라는 곳까지 가서 그 이후로 편도 약 2~3시간을 걸어 다녔다. 이 방법이 가장 저렴하게 마추픽추를 다녀올 수 있었고, 굳이 기차를 타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그래서 걷는 코스를 추가했다.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고, 빠르게 지나칠 수 있는 이곳의 풍경도 천천히 음미할 수 있으니까.
마추픽추 투어를 하면 보통 10명 내외의 여행객과 가이드 한 명이 한 팀이 되어 움직인다. 같이 여행하던 팀 중에 스페인에서 온 가족이 있었다. 엄마, 아빠 그리고 아이. 몇 살인지는 정확히 가늠이 안 되지만 아마 유치원생정도 되는 것 같았다. 대략 6, 7살쯤?
스페인에서 온 이 가족들은 스페인에서부터 캠핑카를 가져와서 남미 여행을 한다. 아빠는 여행을 하며 온라인으로 필라테스를 가르치는 일을 한다고 했다. 엄마는 가족들의 큰 가방을 짊어지고, 아빠는 힘들어하는 아이를 위해 목마를 태우고 걸었다. 지친 상태에서 이런 돌길을 걷다 보면 종종 발이 삐끗할 때가 있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저 아빠의 발걸음은 혼자 걷는 나보다도 더 빨랐다. 아이는 목마를 탄 상태로 종종 졸기도 했다. 그만큼 아빠의 품이 편안했나 보다.
저 모습을 보면서 문득 어렸을 때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등산을 좋아하시는 부모님을 따라 종종 산을 올랐는데 끝도 없어 보이는 길을 걷고 있노라면, 힘들고 더 이상 가기가 싫었다. 그래서 못 가겠다고 하면 아부지는 등을 내주었다. 그러면 나는 아부지 등에 매달려 편하게 올라갔고, 내려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구불구불하고 경사가 있는 길, 뛰어서 넘어야 하는 길 등등 혼자 걷기도 힘든 길을 아부지는 나를 업고 다녔다.
지금 기억해 보면 아부지가 그렇게 점프하고, 내리막을 혹여나 미끄러질까 살살 내려올 때도 단 한 번도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안 해봤다. 나도 저 아이처럼 아빠를 100% 신뢰하고 있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아부지가 실수로 발을 헛디뎌 넘어진다고 해도 아부지는 나를 보호할 것이라는 믿음을, 어렸지만 가지고 있었다.
같은 상황이라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마치 슈퍼맨이라도 된 듯. 우리 아부지가 그러했듯.
아들에게 안정감과 든든한 믿음을 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고민을 걷고 또 걸으며 생각했지만 잘 모르겠다. 아버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저 무거운 가족들의 모든 짐을 짊어진 어머니와 아들을 목마에 태우고 걷는 아버지를 보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