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름이 발음하기 쉬운 경우도 있지만, 어려운 경우에는 스페인어 닉네임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서로 부르기 편할 것 같았다. 영어 닉네임이자 필명인 '페티'를 쓰고 싶었지만, 여행하며 만난 친구들이 하나같이 '그건 이름으로서 조금 어색하고, 부적합하다'는 평이 많았다.
여행 초기에 특별한 스페인어 이름 없이 지내고 있었는데, 멕시코에서 만난 친구들이 내게 스페인어 이름이 따로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래서 아직 없다고 대답하니, 그럼 바로 지어주겠다며 현지인 친구 3명이서 속닥속닥 회의를 시작했다.
그렇게 나온 닉네임이 'Diego'였다. 처음에는 크게 마음에 들지도 않고, 와닿지 않아서 그저 고맙다고 하고 넘겼다. 근데 그 친구들은 나를 볼 때마다 항상 '디에고'라고 불렀다. 그래서 조금 친해진 뒤에 조심스럽게 얘길 꺼냈다. 개인적으로 '디에고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고.
그랬더니 그 친구가 대답했다. "너의 이미지나 얼굴을 보면, 디에고가 떠오른다"며, 보통 디에고의 이미지는 남자이지만 여자처럼 예쁘장하게(?) 생긴 그런 외모가 어울린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 이름이 나와 잘 맞는다고 했다.
이후 과테말라를 여행하던 중 한 친구를 만났는데 이름이 Diego였다. 디에고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를 처음 만났는데, 하필 동성애자였다. 그래서 디에고 하면 그런 이미지가 떠오르다 보니 더 이상 이름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결국 스페인어 이름 찾기는 1년간 여행하면서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이전에 여행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가 이름이 아닌, 성으로 불러 달라던 친구가 생각이 났다. 그 친구를 따라 '앞으로 누군가 이름을 물어보면, 내 성을 알려줘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곤 콜롬비아에 도착해서 이름을 물어볼 때마다, "Me llamo JI." ("내 이름은 지야.")라고 했다. 하지만 스페인어의 J는 '호따'라는 발음이라 Ji는 "히"라고 발음된다. 그래서보통 "지"라고 말을 하면 'CHI' 또는 'SHI'라고 불리기 일쑤였으나, '디에고'보다는 '지'라고 불리는 게 마음이 훨씬 편했다.
특히 운동하며 마우스 피스를 착용하고 있을 때는 '지' 발음하기가 어렵다보니 서로 이런 대화가 오고 간다.
- 친구 : Como te llamas? (이름이 뭐야?)
나 : "내 이름은 지야."
- 친구 : "CHI?"
나 : "지, 제이 아이!"
- 친구 : "Oh JI!"
콜롬비아에서는 늘 '지'로 불렸다. 한 글자여서 친구들이 헷갈리지 않고, 부르기도 편했다. 나중에 한 미국인 친구가 설명을 해주어서 알게 되었는데, 미국에서 "G"는 굉장히 멋지고, 쿨하다는 의미로 사용한다고 했다. "You're the G!"라고 하면 "너 참 멋지다!" 정도로 해석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 친구는 오히려 내 이름(성)이 마음에 든다며 좋아했다.
별생각 없이 지었던 나의 이름(성)이 좋은 의미인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리고 언젠간 마음에 쏙 드는 스페인어 이름도 꼭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