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는 너의 편이 되어

by 조아서


출산을 앞두고 '엄마'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맞벌이셨던 바쁜 부모님 밑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속 깊은 K장녀가 되었다. 부모님의 희생, 특히 엄마의 희생을 옆에서 지켜보며 짐이 되고 싶지 않았던 어린 마음이었기에, 엄마의 칭찬은 더욱 간절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초등학교 몇 학년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시험을 앞두고 엄마에게 탕수육(정확히 어떤 메뉴였는지는 잊었다.)을 사달라고 했던 날이 생생하다. 아주 좋은 성적을 받고 엄마에게 자랑스럽게 시험지를 보여줬다. "엄마, 나 잘했지? 맛있는 거 사줘."라고 말했지만, 돌아온 것은 "잘했네"라는 간결한 대답뿐이었다. 감정의 폭이 크지 않은 엄마란 걸 잘 알았지만, 그날만큼은 다정한 칭찬을 기대했던 어린 나에게 무뚝뚝한 엄마의 반응은 작은 상처로 남았다. 그 이후로 나는 시험 점수를 굳이 내세우지 않았다. 그저 성실하고 묵묵히 어쩌면 당연하게 학생의 본분을 다했다.


또 어떤 날의 기억이다.


"엄마, 나 반장 됐어."

하교하자마자 반장이 된 사실을 엄마에게 말했다. 칭찬해줄 알았던 엄마에게 낯선 대답이 돌아왔다. "반장이 되면 학교에 찾아가서 선생님과 학생들을 봐야 하는데, 엄마는 그런 거 불편해. 다음 번에는 반장 선거를 나가지마"라고 했다. 나는 학교 안 와도 괜찮다고 성냈지만 작은 생채기가 났다. 불편하고 바쁜 엄마는 정말 학교를 찾아온 적이 없었지만, 나는 굽히지 않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내내 학급 임원을 했다.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어도, 하고 싶은 게 많았고 칭찬받고 싶은 학생이자 딸이었다.



돌이켜보면 서운했던 기억도 있지만, 부모님의 묵묵한 헌신 속에서 나는 평범하고 무탈하게 자랐다.

겉으로 보이는 표현은 적었지만, 그 헌신을 통해 부모님의 사랑과 묵묵한 응원을 충분히 느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또렷하게 기억하는 어린 시절은 생채기가 난 조각들이었다.


우리 아이도 부모가 모르는 사이에 상처를 입을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편과 응원을 건네는 사람들이 곁에 항상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그 역할이 부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 역시 부모님의 무한한 신뢰와 묵묵한 응원이 있었기에 생채기에 새살이 돋았다.

덕분에 내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태도를 갖게 됐다.

누군가에게 인정 받으려는 마음보다 내 마음에 귀기울이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마음을 키워왔다.


대신 그때 좀 더 다정했더라면, 그때 나의 대화에 더 경정해줬더라면 하는

서운한 마음들이 불쑥 불쑥 올라온다.


그래서 바라고 다짐한다.


아물지 않는 생채기는 없기를 바라며,

숱한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려도 튼튼한 뿌리를 가진 나무로 자랐으면 좋겠다.

내 아이를 향한 바람이다.


매일을 따뜻하고 다정한 엄마로 살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다정한 관찰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를 향한 다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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