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이벤트

by 조아서

엄마들에게 '이벤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뜻과 사뭇 다르다.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의미했다. 나에게도 잊지 못할 이벤트가 있었다.


임신 12주차, 정밀 초음파를 받으러 간 날이었다. 자궁 속 아기가 머리와 몸통으로 동그란 형체에서 벗어나 눈, 코, 입, 손, 발, 다리가 제법 '사람'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할 때였다. 이 날은 기형아 검사 중 하나인 목투명대 검사도 함께 받는 날이었다. 태아 목덜미 부위에 투명하게 보이는 피하 두께를 측정하는데, 이 두께가 증가되어 있으면 염색체 이상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여느 때처럼 진료가 금방 끝날 거라 생각하고 원장님을 마주 앉았다. 그런데 검사지를 살피던 원장님께서 흠칫 놀라시며 "어, 뭐야"라고 하시는 거다. 그때부터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왜 그러세요? 안 좋은가요?"라고 묻자, 원장님은 침묵으로 대신 대답했다. 1~2분의 침묵이 마치 한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마침내 결심한 듯 원장님께서 입을 떼셨다.


원장님은 메모지에 기형아 검사의 종류를 담담하게 설명해주시며, 내게 기형아 선별 검사보다 확진 검사를 바로 받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목투명대 수치가 정상 범위를 훨씬 넘어섰던 것이다. 기형아 확진 검사로는 융모막 검사와 양수 검사가 있는데, 나의 현재 주수로는 융모막 검사만이 가능하니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추가 검사를 받으라고 권유하셨다. 융모막 검사가 가능한 병원 이름과 전화번호를 함께 건네주시면서.


무슨 말인지 소화되지 않은 채, 애써 침착하게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하지만 두 다리가 후들거려 의자에 털썩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확진'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박혀 최악의 경우를 상상했다. 하필 일정이 안 되어 남편 없이 혼자 왔던 날, 이런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남편에게 상황을 전했고, 남편은 더욱 미안해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바로 원장님께서 소개해 준 산부인과에 전화했고, 다행히 당일 예약이 가능했다.


예약 시간까지 약 3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이럴수록 더 잘 먹고 씩씩하게 진료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분명 입덧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병원을 나와 눈앞에 보이던 설렁탕 가게에 들어가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지하철을 타고 압구정으로 향했다. 병원에 가기 전, 카페에 들러 따뜻한 레몬티를 마시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병원 안은 차분하고 고요했다. 인적 사항과 검사 동의서를 작성하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나이가 지긋하신 원장님께서는 융모막 검사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 해주셨다. 태반을 형성하는 조직인 융모막의 융모를 채취하여 염색체를 분석하는 방법이었다. 불안하고 초조한 산모들의 마음을 잘 아시는지, 원장님께서는 정말 꼼꼼하게 정밀 초음파를 봐주셨다.

손가락 5개와 발가락 5개가 모두 잘 보인다는 이야기에 어찌나 감사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초음파 검사에서는 목투명대 외에는 다행히 좋아 보인다고 하셨다. 검사 준비를 마치고 족히 30cm가 넘는 길고 커다란 바늘을 찔러 태반을 채취했다. 검사는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순식간에 끝났다.


정확한 검사 결과는 2~3주가 걸린다고 했다. 하지만 이상이 없으면 다음날 원장님께서 전화로 결과를 알려주신다고 했다. 오전부터 모든 진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오후 5시, 고단하고 긴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날, 전화가 올 거라는 희망을 붙잡고 일어났다. 일부러 평소와 똑같이 시간을 보냈다. 집안일을 하고, 낮잠을 청해도 전화가 오지 않던 차에, 저녁 6시가 조금 안 된 시간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들었다. "이상 없어요.",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었다. 안도의 눈물이었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마음 속에 '감사, 감사, 감사' 세 번을 외쳤다.

어떤 성별은 바란다거나, 어떤 부분을 닮았으면 한다거나 하는 얕은 기대들이 사라졌다.


임신 기간,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이벤트가 찾아온다.

각자 사연 없는 임신과 출산은 없으며, 임신과 출산을 겪은 엄마들은 모두 공감한다.

그냥 부디 내 뱃속에서 아기가 건강하기만 바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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