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 『말뚝들』 | 박대겸, 『외계인이 인류를 멸망시킨대』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아무래도 뭐든 가능하다는 점 아닐까? 가끔은 어이없을 정도로 터무니없는 상상이 글 속에서는 누군가의 전부가, 세계가 된다는 것. 그게 참 좋다. 오늘 소개할 두 작품도 다소 능청스럽고 어처구니없는 설정으로 더 없는 웃음과 눈물을 유발한다.
─ 김홍, 한겨레출판
큰 빚이 큰 부자를 만드는 진리는 언제나 통한다. 하지만 우리의 빚은 저들과 다르다.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가난하다. 서로에게 내어준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노트에 눌러쓰고, 그 빚을 기억하며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으로 언젠가 세상을 설득할 것이다. (p. 280)
근래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좋았던 작품. 요즘에 책을 읽고 '참 좋다'는 느낌을 크게 받은 적이 없었는데 이 작품은 좋았다.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작가님의 『엉엉』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분명 만족할 것이다. 읽다 보면 '갑자기?' 내지는 '이게 뭐야'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이 작가님의 작품은 그게 매력이고, 유머 코드만 맞는다면 하염없이 실소를 터뜨리게 된다. 나아가 '장'의 냉소적인 태도 속에서 느껴지는 인간적인 면모나 유머스러운 문체 속에 숨어 있는 사회적 슬픔을 읽어낸다면 아마 오래도록 이 작품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아, BGM은 DAY6의 HAPPY다.)
어쩌면 세계가 불행해진 건 아닐까?
장은 자신의 불행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을 생각했다. 전례 없는 존재들이 출현하는 상황이 더 큰 불행의 전조처럼 느껴졌다. 불행을 과신할 것도 과시할 것도 없이 공평하게 불안해지는 상황이 위태롭기만 했다.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의 이유를 묻는 것이 사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기억을 되살리려고 애썼다. 타인의 불행을 달래기 위해 은행 창구로 왔던 그 사람의 얼굴이 먼지가 잔뜩 낀 유리창처럼 희미하게 번져있었다. (p. 143)
주인공인 '장'은 은행의 대출심사역을 담당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런데 어느 날 '트렁크에 넣어 두었습니다'는 의문의 쪽지를 받고, 차의 트렁크를 확인하던 중 갑자기 트렁크에 갇힌 채 납치된다. 기적적으로 아무런 상처 없이 풀려났지만, 그는 이 사건 전후로 불행의 쓰나미에 휩쓸리게 된다. 엘리베이터 고장 같은 사소한 불행뿐 아니라, 파혼이나 직장 생활에서의 압박, 옛 친구의 부고, 갑자기 집 안에 등장한 '말뚝'까지. 그는 이 악재 속에서 하염없이 울게 된다. '장'의 세계에 들이닥친 불행은 고요히 읊조린다. "정말 그런가? 장은 정말 아무것도 몰랐을까?"(28면) 정말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을까?
이 불행의 핵심에는 '말뚝'이 있다. 도심 곳곳에서 출몰한 '시랍화된 시체'인 말뚝들. 더 이상한 점은 이 말뚝을 본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것. 왜 우는지 설명할 수 없지만, 이 말뚝을 본 순간 그냥 울게 되었다. 자신은 이 사태와 전혀 연관 없다고 생각했던 '장'은 돌연히 집안에 출몰한 말뚝으로 인해 사건에 연루되고, 여러 정황들을 추적하면서 1호 말뚝(테믈렌)이 자신과 연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테믈렌'은 '장'이 첫 근무지에서 만난 제련소 노동자로, '나'는 그에게 동료의 산재 사망과 관련하여 50만 원을 빌려준 기억이 있다. 테믈렌이 결국 카드뮴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장'은 그를 애도하며 온전히 보내주기에 이른다. 그러니까 말뚝들은 소리도,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었던 사람들이 떠밀려 온 것이었다. 나는 '장'의 인간적인 면모가 좋았다. 대민 그룹 차남이 아니라 '테믈렌'을 쫓아가는 사람이라서, 오랜 친구였던 '태이'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는 사람이라서.
하나같이 등을 돌린 채였다. 볼 수 있는 건 말뚝들의 뒷모습뿐이었다. 그런데도 눈물이 났다. 장은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이 강처럼 흘러 한자리에 모여든 이유는 울기 위해서였다. 우는 사람은 답답하지 않았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p. 203)
마음은 편안했다. 울고 있기 때문이었다. 장은 이제까지 삶에 대해 너무 큰 거짓말을 해왔다는 걸 이쯤에서 인정하고 싶었다. 희망 같은 건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지금은 기적을 믿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누군가의 보호 아래 있다는 명백한 느낌을 믿었다. 그들은 말뚝을 지킬 것이고, 말뚝을 지키려는 장을 지킬 것이었다. (p. 265)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었다. 그냥 사는 것도, 회사도, 나라 꼴도 완전히 개박살이 나버렸다. 그런데 뭐 나만 그렇게 사는 건 또 아니니까. 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나만 망했냐? 너도 망하고 쟤도 망하고 다 망했지. 그럼 공평하게 다시 시작해도 되지 않아요? 말뚝이 그렇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p. 274)
불행은 너무나 흔하고 개인적인 일이라 '장'이 느꼈던 것처럼 "이게 전부 내 것이라고? 이렇게나 크고 많은 것이?"(11면)라 생각될 때가 있다. 그러나 나만 불행한가? 나의 불행이 가장 크고 괴로운가? 절대 그렇지 않다. 개인의 불행은 세상의 불행과 느슨하거나 견고히 (어떻게든) 연관되어 있고, 타인의 불행을 "함부로 평가하고 비난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183면)다. 그러니 세상이 점점 더 불행해지는 것 같다고. 지난 6월 태안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망했고, 10월 양평군에서 공무원이 사망했으며, 어젯밤에는 식당에서 불이 나 일가족이 모두 숨졌다.
누군가에게 말뚝은 전복된 선박의 선원이었고 부모였다. 바다에 가라앉은 자식이었고, 길에서 죽은 청년이었으며, 정리해고로 생명줄이 끊긴 노동자였다. 그게 전부 살아남은 사람의 기억으로 쓰여 있었다. 지우는 사람이 기록하는 사람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p. 248)
말뚝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말뚝은 소리 없이 전한다. 정치고, 종교고 뭐고 그런 건 모르겠고 지금도 누군가가 죽고 있다고. 학생, 노동자, 아니 그냥 평범했던 사람들이. 도저히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불행 속에서. 이 책은 말뚝을 눈앞에 내밀며 제안한다. "나중에 같이 한번 울"(188면)자고. 아직 연대의 힘을 믿어보자고.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아직' 죽지 않았다. 그러니까 불행이 넘실거리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함께 울 수 있다. 슬픔이나 눈물은 유별난 일이 아니다. 아직도 "정신과에는 매일같이 대기 줄이 넘쳐"(292면) 나니까. 그래도 살아야 한다. 살아남아서 기억하고 함께 울어야 한다. 책에서 내내 '장'으로 불리던 그는 책의 말미에서 본명이 밝혀진다. 나는 그를 '장'이 아니라, '장석원'으로 기억할 것이다. 테믈렌에게 50만 원을 내어 주었던, 또 그의 아들을 찾아가며 애도하던 사람 '장석원'으로. 그게 살아남은 사람의 책임이자 최선의 연대 방식이므로.
─ 박대겸, 민음사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으니까. 나는 이제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거야. 난 지구가 멸망하기 직전까지, 지구가 멸망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찾아볼 거야.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거야. (p. 115)
이 책은 처음 보는 작가님인데,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라서 한 번 읽어봤다. 시작은 흥미로웠으나 갈수록 엥(?!) 하는 장면이 좀 많았다. 물론 『말뚝들』도 그랬지만, 그건 좀 긍정적인 의아함이었다면 이건 음... (생략). 게다가 많은 부분이 회수되지 않은 채로 끝나는 느낌도 들었다. 누군가는 또 취향에 맞을지도? 그래도 함의된 부분이 나름 좋아서 기록으로 남겨본다.
일주일 뒤에 인류가 멸망한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어느 날 한 외계인(셀타 드리온느)이 유튜브 영상을 통해 인류의 0.001%만 남기고 모두 말살하겠다고 선언한다. (타노스인가) 뭐 거의 죽는다고 해도 무방한 비율. 이 갑작스러운 절멸의 상황에서 나라면, 당신이라면 과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 질문에 주인공 '지민'은 "외계인은 외계인이고, 우리는 얼른 저녁 영업 준비를 해야 하지 않"(25면)냐고 대답하는 사람이었다. 외계인이 지구를 종말시키겠다는데 과연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지민은 여전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탁구 동아리 대회에 참여하고, 오랜 친구들을 만난다. 예고된 시간이 다가와도 지민을 포함한 주변인은 아무런 적극적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이대로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쩌면 내가 알아야 할 답은 주인공 소녀가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맞히는 게 아닐지도 몰라.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주인공 소녀가 자기 스스로 무언가를 행했다는 점 바로 그 자체야. (…)
물론 자신의 선택과 행동으로 인해 본인의 삶은 해피하다고도 새드하다고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긴 하지만. 근데 인생이란 게 그런 나날의 연속 아닌가? 그건 중요하지 않은 문제인 것 같아. (p. 83)
거창하게 인류를 위해서,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겠지만, 어쨌거나 한 명의 인간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디엔가 분명히 존재한다면. (p. 102)
그랬던 지민은 루리코, 아빠의 편지, 갑자기 이 세계를 함께 떠나자고 제안하는 옛 연인 연호수까지. 일련의 만남과 사건을 겪으면서 그녀는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일"(102면)에 관해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의 앞에 나타나 외계인의 계획을 함께 막아보자고 제안하는 '채승아'까지. 지민은 호수처럼 나 혼자 잘 살아보겠다고 이 세계에서 도망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든, 일단 해보자고.
말했다시피 이건 과학적 가설이 아니라 소설적 상상력이야.* 인류가 멸망하기 직전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한 상상력. (p. 177)
아무튼 정말 다행이야.
나는 나의 친구들, 지인들, 가족들이 아무도 응답하지 않아서 진심으로 기뻤다. 비록 나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끝맺었지만, 그들은 아직 인간으로서 살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별다른 일 없이 계속 살아갈 것이다.
그들이 모두 무병장수했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하고 싶은 일들 전부 이룰 수 있으면 좋겠다.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가 가끔씩 나를 떠올려 주면 좋겠다. (p. 218)
(소설적 상상력을 100% 발휘하여) 어쨌든 지민은 지구를 구한다. 과정과 결말이 다소 황당하더라도, 평범한 인물이 평범한 일상을 버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는 설정이 좋았다. 절멸하기 직전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이 멸망하는 세계 속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녕 없는가?
나는 문학이 약자의 편이라고 견고히 믿고 있다. 문학은 (설령 그것을 추구하지 않더라도)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내고, 세상의 가장자리를 기꺼이 묘사하기 때문이다. 또한 소설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잊혀 가는, 이미 잊힌 것들을 다시 눈앞으로 가져온다. 그 과정에서 어떤 강요나 설교가 없더라도 독자들은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여전히 기억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넘치는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