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리엄스, 『스토너』
아직도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역주행 소설, 『스토너』 드디어 읽어보았다.
─ 존 윌리엄스, 알에이치코리아(RHK)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p. 388)
"(…) 젠장, 빌, 인생이 너무 짧아. 자네도 그만두지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게. 한가한 시간이……."
"시간이 생겨도 난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를 걸세." 스토너가 말했다. "그런 걸 배운 적이 없으니까."(p. 355)
이 책은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의 출생부터 사망까지를 다룬 소설이다. 1891년생인 그는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영문과 교수이자 학자의 자리를 지켰다.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크고 작은 개인사를 겪는 그의 감정은 크게 요동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평범"하고 잔잔한 삶을 다루었다는 평이 주를 이루기도 한다. 그러나 가족과 유대관계를 형성하지 못했고, 직장에서는 미움을 당했으며, 사랑도 포기하고, 오로지 교육자로서 어떤 것을 지키고자 하는 스토너의 삶은 더없이 고되고 지난하게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다 보면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가득해지곤 했다.
"저는 아픈 게 아니에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차분하고 신중하다 못해 거의 무덤덤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저는 절망스러울 만큼, 절망스러울 만큼 불행해요." (p. 270)
자신의 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과연 그랬던 적이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곤 했다. 모든 사람이 어느 시기에 직면하게 되는 의문인 것 같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의문이 이토록 비정하게 다가오는지 궁금했다. 이 의문은 슬픔도 함께 가져왔다. (p. 252)
불행은 대물림된다. 스토너와 이디스의 불행이 어린 그레이스를 불행으로 몰아넣었던 것처럼, 그레이스가 그 불행에서 벗어나고자 선택했던 아이도 결국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스토너도 참된 학자이자 교육자라고 말할 수 있을지 언정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다. 이디스가 억압받던 집에서 도피 수단으로 '결혼'을 택한 것처럼, 그레이스는 '임신'을 택했다. 어린아이에게 부모와 집은 하나의 세상이다. 온 세상이 자신을 외면할 때, 아이는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디스의 보이지 않는 폭력에 무기력하게 대응할 것이 아니라, 방임으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응했어야 했다. 그레이스를 위해서.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는 비범하고 특별하다. 그는 무엇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런 일들"(244면)은 아주 중요하다. 그는 물론 좋은 아버지는 되지 못했지만, 좋아하는 일을 찾았고, 평생 그 일을 수행했다. 사랑하는 일을 평생토록 하며 살아있다고 느끼는 것. 이건 누구나 평범하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이디스처럼 "달라져봤자 얼마나 달라지겠"(224면)냐며 비웃겠지만, 어떤 사람은 기꺼이 그렇게 한다. "뭔가"(46면)가 있다고 생각하고 계속 나아가는 것. 그 끝에 마주한 것이 결국 "무지"(338면)일지라도. 그리고 "편안하고 깊으며, 남들은 끼어들 수 없을 만큼 친밀"(210면)한 핀치가 그의 곁에 있었지 않았나?
자네는 여기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지. 여기서 뭔가를 찾아낼 수 있다고. 하지만 세상에 나가면 곧 알 수 있을 걸세. 자네 역시 처음부터 실패자로 만들어졌다는걸. 자네가 세상과 싸울 거라는 얘기가 아냐. 세상이 자네를 잘근잘근 씹어서 뱉어내도 저네는 아무것도 못할 걸세. 그냥 멍하니 누워 무엇이 잘못된 건지 생각하겠지. 자네는 항상 세상에 있지 않은 것, 세상에서 원한 적 없는 것을 기대하니까. (p. 46)
모든 게 그냥 이런 식으로 계속 돌고 도는 것만 같아. 도대체 이것이 다 뭔가 하는 생각이 드네. (p.128)
대학이 소외된 자, 불구가 된 자들이 세상에서 도망칠 수 있는 피난처라는 얘기를 했어. 하지만 그건 워커 같은 친구들의 이야기가 아니었지. 데이브라면 워커를…… 세상으로 보았을 걸세. 그러니까 그 친구를 허락할 수가 없어. 만약 우리가 허락한다면, 우리도 세상과 똑같이 비현실적이고 그리고……. 우리에게 희망은 그 친구를 허락하지 않는 것뿐일세. (p. 235)
스토너가 워커에게 질문을 쏟아내는 장면이 좋다. 편법으로 들어갔음에도 과제를 완수하지 않고, 미루면서 계속 변명거리를 찾으려고 했던 워커. 그가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이 —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던 열등감이나 피해의식은 불가피했으리라 — 그의 불성실함을 감싸주지는 못한다. 그는 차별을 당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자격이 없었던 것뿐이다. 나는 성실과 책임을 (그렇게 당했음에도 아직도) 최고의 가치라고 믿기에. 그는 자신의 본문을 다하지 않았고, 나는 스토너가 그가 교육자가 되는 것이 "재앙"(229면)이라고 말한 것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이죠. 세월이 흐르면 다 잘 풀릴 겁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이 말을 하고 나자 갑자기 그것이 정말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순간적으로 자기 말에 담긴 진실을 느낀 그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던 절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절망이 그토록 무거웠다는 것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이 들뜨다 못해 현기증이 날 것만 같고,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질 것 같은 기분으로 그는 다시 말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p. 264)
이 문장을 오래도록 쓰다듬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거다. 그건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 다 해결될 거니까. 이 말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밤이면 조용히, 혼자 되뇌곤 한다. 이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럴 수 있다. 정말이지 그렇다면, 이토록 크게 느껴지는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대체 나는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걸까?
2021년, 누군가 알라딘에 남겨놓은 댓글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