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차 아침이 밝았다. 하루하루를 알차게 채워나가다 보니 이것저것 많이 한 것 같아서 '아직 4일 차네'와 동시에 줄어드는 남은 여행기간이 아쉬워 '벌써 4일 차네' 두 가지 생각이 공존하는 아침이었다. 오늘은 뮐루즈의 기차박물관에 갔다가 스위스로 넘어가 바젤에서 열리는 가을 축제에 갈 계획이다.
뮐루즈 기차 박물관(Cité du Train)은 프랑스 동부 알자스의 뮐루즈(Mulhouse)에 있는 철도 전문 박물관으로 ‘프랑스 철도 박물관(Musée français du chemin de fer)’으로 불리기도 하며, 유럽에서 가장 큰 철도 박물관이다. 사실 나는 음악, 영화, 글, 미술과 같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취향이 한쪽으로 매우 치우쳐져 있는데 공돌이인 남편과 아이들이 재밌어할 것 같아 이번 여행의 첫 번째 박물관으로 철도박물관을 선정했다. 최근 개축된 이 박물관은 기관차와 화차로부터 시작하여 철도 역사를 주제별로 보여주며 증기, 디젤, 전기 기관차의 작동원리와 발달과정을 알려주고 있다. 아주 오래된 기차부터 세계 대전에 사용되었던 기차들, 가장 최근의 TGV까지 실물기차가 엄청난 규모의 박물관 안에 전시되어 있었고 증기기관차 경우 실제로 증기를 뿜으며 바퀴가 움직이는 모습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그리고 귀여운 꼬마기차를 타고 박물관을 한 바퀴 돌아보는 체험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아쉬운 점은 오로지 프랑스어로만 설명이 쓰여있다는 점이었다. 영어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어서 박물관이라 하면 전시물에 대해 이해하고 배우는 과정이 필수인데 언어의 장벽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영어로 설명이 있으면 매번 핸드폰을 꺼내서 번역을 하지 않고도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 설명을 해줄 수 있는데 전시품의 상세설명이 아닌 이름조차도 모두 프랑스어로 쓰여있어서 처음에는 열심히 구글렌즈를 비춰 번역해서 보다가 나중에는 지쳐서 그냥 돌아보게 되었다. ^^;;
아침을 바게트 샌드위치와 계란, 사과로 든든히 먹고 나왔음에도 박물관을 돌다 보니 금세 배가 고파졌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고금의 명언을 떠올리며 얼른 박물관에서 나와 구글맵에서 찾은 대형 마트로 출발했다. E.Leclerc(르끌레흐)는 프랑스의 대형마트 체인인데 내가 간 Saint Louis 지점은 복합쇼핑몰로 우리나라로 치자면 스타필드와 비슷한 곳이었다. 스타필드처럼 트레이더스 같은 마트도 있고 카페, 레스토랑, 옷가게, 안경가게 등 온갖 샵들이 모여있고 유럽에서 가본 쇼핑몰 중 가장 컸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먹을 거에 가장 진심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의 치즈와 고기 진열대를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다른 음식들도 어찌나 종류가 다양하던지! 아마도 독일과 프랑스, 스위스 세 나라의 국경을 접하고 있는 곳이라 더 풍성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11월 1일은 만성절(가톨릭의 모든 성인 축일)로 프랑스 노동법에 명시된 11개의 공휴일 중 하나로 휴일이라 그런지 르끌레흐에는 사람이 엄청 많았고 배고픈 우리는 마트에서 파는 조리된 고기요리와 음료를 사서 차 트렁크에 대충 음식을 차려놓고 서서 먹었다. 날씨도 맑고 우리 말고도 차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많아서 피크닉 하는 기분으로 웃으며 즐겁게 먹어서 기억에 남는 식사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