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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렌터카 여행 30 - 악몽의 밤

11일 차 11월 8일 ④

by 에리카

11월 8일이다. 이제 해가 떨어지는 시간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수도원을 나와 오후 5시를 조금 넘으니 밤이 코 앞에 다가와있었다. 이제 뮌헨에 가자. 그동안 내가 묶었던 숙소의 링크를 다 올렸는데 이곳만큼은 올릴 수가 없겠다. 완전 악몽의 밤이었고 현재 에어비앤비에 올라와 있지만 예약가능한 날짜가 없는 걸로 봐서는 운영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나 때문에 운영이 중지가 되었을지도.


처음 예약을 진행하는 과정은 아주 순조로웠다. 뮌헨은 독일에서 물가가 가장 높은 도시라서 숙박비용도 높았다. 적당한 비용에 좋은 숙소를 찾기는 어려웠으므로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지만 유럽의 대도시도 경험시켜주고 싶은 마음에 뮌헨에서 3박을 머무르기로 결정하였다. 뮌헨은 대도시라서 주택보다 우리나라의 아파트와 같은 숙소들이 많았는데 내가 찾은 곳도 고층 아파트가 모여있는 단지에 지하에 전용주차공간이 있고 마리엔 광장이 있는 도심까지 전철로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좋은 위치였다. 한국에서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이왕이면 주택에 머무르고 싶었지만 뮌헨은 선택지가 없었다.


체크인까지는 비대면으로 나름 원활하게 진행이 되었으나 문제는 숙소 내부 상태였다. 침실에 있는 침대는 침구가 갖춰져 있었으나 거실에 있는 소파베드의 침구가 없었다. 발코니에 빨아서 널어놓은 건지 그냥 널어놓은 건지 침구가 널려있고 이불은 아예 없었다. 집안 구석구석에 쓰레기가 있고 냉장고에도 음식이 차 있었다. 후기의 개수는 적었지만 그래도 4.5점에 가까운 평점을 받은 숙소였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바로 호스트에게 연락을 했다. 내가 기본침구도 준비되어 있지 않고 청소상태가 너무 더러워 묶을 수 없으니 취소해 달라고 하자 온갖 핑계를 대며 거절하기 시작했다. 청소는 그렇다 해도 이불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니 사람을 시켜 이불을 보내주겠다, 취소하지 말아 달라 사정을 하기에 일단 사람을 기다려보기로 하고 아이들 먼저 씻고 잘 준비를 시작했다. 거의 1시간에 걸려 도착한 사람은 이불이 아닌 홑껍데기만 들고 나타났다. 아, 여기서 나는 깨달았다. 이 호스트는 말이 통하지 않는구나. 에어비앤비에 정식으로 항의하겠다고 하며 또 1시간이 넘게 독일어로 호스트와 옥신각신 싸움을 하고 있는데 아뿔싸, 이불 심부름을 한 사람이 복도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전화를 하느라 그분이 벌써 간 줄 알았던 것이다. 너무도 죄송한 마음에 약과와 둥굴레차를 선물로 드리며 기다리고 있는 줄 전혀 몰랐다, 정말 미안하다 인사를 전했더니 본인도 호스트가 이해되지 않는다며 미안한 표정을 짓고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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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호스트는 끝까지 이불을 새로 사다 주겠다며 "너는 계약을 취소할 어떤 이유도 없어! 이불이 문제면 내가 이불을 사다 주면 될 거 아냐!"를 시전 했고 나는 호스트에게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몇 시간에 걸친 싸움에 나는 완전 진이 다 빠졌고 "알았다. 취소하지 않겠다." 거짓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나마 침실에는 제대로 된 침구가 있었기에 침실에 있는 이불을 아이들에게 주고 남편과 나는 홑이불로 잠을 청했다. 그동안 묶었던 삐걱대는 나무계단이 있던 백 년은 된 듯한 건물들도 라디에이터에서 난방이 빵빵하게 나왔는데 이 집은 보일러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서 냉골이었다. 그나마 따뜻한 물은 잘 나와서 샤워를 따끈하게 하고 보온워터팩과 함께 아이들을 재우고 나는 에어비앤비 고객센터에 엄청난 양의 사진과 차분하지만 아주 조곤조곤하게 내가 지금 묶고 있는 숙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이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했는지를 상세히 올렸고 답을 기다리며 힘들게 잠을 청했다.


결과적으로 다음날 아침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3박 중 남은 2박에 대해서 환불을 받고 숙소에서 나왔으며 새로운 숙소를 당일에 찾아서 뮌헨에서 남은 2박을 묶게 되었다. 애초에 이런 숙소를 검증도 없이 제공한 에어비앤비의 퀄리티 컨트롤 능력에 화가 너무 났지만 어쩌겠는가. 아무 문제 없이 순탄한 여행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 생각해 보면 2주에 달하는 시간 동안 가족모두 아프지 않고 사고도 없이 잘 다녀온 것만으로도 감사한 여행이었다. 에어비앤비는 환불이 어렵고 피해보상도 없기로 유명(?)한데 내가 워낙 조목조목 따졌는지 ㅎㅎ 피해를 보상해 주는 의미로 쿠폰도 받아서 새로 예약하는 숙소를 결제할 때 사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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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을 가면 이런 문제가 해결되겠지만 전에 언급했듯이 (https://brunch.co.kr/@pfminji/13) 인원이 2명 이상이 되면 숙소를 찾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성인 4명이라면 그냥 호텔방 2개를 쓰면 되겠지만 아이 둘을 동반한 여행에서 가족이 함께 지내기 위해서는 에어비앤비가 더 합리적이다. 다행히 새로 찾은 숙소는 정말 깨끗하고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총 7개의 숙소 중에서 하나만 문제가 생겼으니 타율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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