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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다 2

유럽 렌터카 여행 32 - 12일 차 11월 9일 ②

by 에리카

https://maps.app.goo.gl/VBddMHbUbSMYVyho8



<Deutsches Museum 독일 박물관>은 독일에 대한 박물관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 이름이지만 사실은 세계 최대의 과학과 기술 분야 박물관으로, 과학과 기술에 관련된 50개 전시실에서 28,000개의 전시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과천에 <국립과천과학관>, 대전에 <국립중앙과학관>이 있다.) 또한 <Kid's Kingdom>이라고 3세에서 8세 사이의 아이들을 위한 공간도 있으니 아이와 함께 방문하시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내가 방문했던 11월 초에는 미리 예약을 해야 했는데 지금은 현재 입장한 인원을 파악하여 순차적으로 입장이 가능한 방식으로 바뀌었다.

예약에서 당일 입장으로 정책이 변경되었다.


독일박물관에는 항공기 분야부터 시작해서 교량 및 유압공학, 로봇공학, 에너지 - 모터, 악기, 화학, 우주항공학, 건강, 농업 및 식품, 카메라, 인쇄술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양의 전시물이 4층에 걸쳐 나누어 전시되어 있다. 워낙 양이 많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을 해서 관심이 있는 분야부터 먼저 보는 방법을 추천한다. 또 아이들과 함께 가는 경우 전시관을 한두 개 정도 본 후에 잠시 Kids' Kingdom에 가서 신나게 놀고 다시 전시관을 이어서 보는 것도 방법이다. Kid's Kingdom에는 투명피아노가 전시되어 있고 누구든 신나게 피아노를 연주해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는데 딸의 성화에 피아노를 연주했다가 졸지에 버스킹 콘서트를 열게 되었다. 어느새 뒤에 모여든 학부모와 아이들이 내 연주에 크게 박수를 쳐줘서 쑥스러웠다. '우리 엄마 피아니스트야.'라는 표정으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주변에 모여든 아이들을 쳐다보는 딸이 귀엽기도 하였다. ㅎㅎ 한 아이의 아빠는 내가 선생님이라고 바로 짐작하였는지 혹시 뮌헨에서 피아노 레슨을 하냐며 바로 섭외에 나서기도 하였다. 아쉽지만 나는 한국에서 살고 있다고 대답하니 내 아들이 일주일에 한 번 레슨을 받고 있는데 이걸로 충분하냐, 아이가 피아노를 즐기며 배우길 원하는데 쉽지 않다며 갑자기 피아노 수업 상담 세션이 열리기도 하였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의 모습은 한국이나 독일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


실제 비행기가 전시되어있다. 규모가 상상이상.
내가 제일 좋았었던 악기 전시관, 특히 피아노♡


인쇄술 전시관에서는 뜻밖의 전시물을 보게 되었는데, 바로 '직지'였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직지'는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독일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선다. '직지'가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앞서 제작되었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미국과 유럽의 기록보존학 분야 등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학자들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현존하는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 알리기에 나서기도 하였다. 이들은 직지가 마땅히 누려야 할 세계적인 대우를 받아야 하고 한국의 업적이 인류의 가장 위대한 성취 중 하나라는 것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여기 독일박물관에 있는 전시는 청주에 있는 고인쇄박물관과 연계하여 열린 전시로 한국어 브로슈어와 입간판도 같이 전시되어 있었다. 다시 한번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차오르는 순간이었다.


여기서도 안 좋은 경험을 하나 하였는데 아마추어 라디오 전시관에 라디오 주파수의 높낮이를 조절하여 소리를 만드는 상호작용 전시물이 있었다. 보통의 상호작용 전시물들은 관람객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뒤에 서있게 되고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뒷사람에게 차례를 넘기는 게 예의다. 거의 박물관 마감시간이 다 된 시간이어서 줄은 없었고 나와 딸이 첫 번째 순서로 기다리고 한 아빠와 아이가 그 전시물을 체험하고 있었다. 나는 적당히 시간이 지나면 차례를 넘기겠지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거의 10분이 다 되어가도록 차례를 넘기질 않는 것이다. 나는 지쳐서 딸에게 그냥 가자고 말했지만 딸은 그게 그렇게 꼭 하고 싶었는지 계속 기다리겠다고 했고 나는 무언의 눈총을 아이 아버지에게 보냈지만 그는 우리가 아예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무시하였다. 참고 기다리다가 정말 너무하다 싶어서 독일어로 말을 걸었다. "저기, 우리 아이가 이걸 꼭 해보고 싶다는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요?" 그 순간, 그 아버지의 표정이란.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지더니 아주 머쓱해하며 "우리 다했어요, 하세요."라고 하며 아이를 데리고 도망치듯 거기를 벗어났다. 그 사람은 내가 독일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을 거고 자신이 그 상황에서 우리를 무시하고 기다리게 만들었던 자신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곧 박물관 마감시간이 되었고 나가면서 다시 한번 그 부자를 마주쳤는데 역시나 눈을 피하여 도망가더라.



유럽을 여행하며 인종차별을 한 번도 겪지 않는다면 그건 아주 행운일 것이다. 나와 같은 이런 사소한 일부터 금전적으로 또는 신체적으로 피해를 입는 심각한 인종차별도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인종의 구분이 생겨난 것부터가 유럽의 식민주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15세기 이후 유럽 국가들은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로 확장하며 그 지역의 원주민과 흑인 노예를 착취했고 이 과정에서 '백인 우월주의'와 같은 인종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지고 강화되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백인의 경제적 이익을 정당화하고, 지배적인 위치를 유지하는 데 사용되었고 미국의 노예제도와 독일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같은 일까지 벌어지는 것이다. 뿌리 깊은 차별과 편견과 증오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긴 힘들겠지만 그저 각자가 개인 대 개인으로,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를 존중할 수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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