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크로스핏 코치가 되다

30대 중반, 크로스핏 막내 코치로 3개월을 보낸 후기

by Seulki Kim

취미의 직업화

취미는 취미로만 남기라는 말이 있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으면 금세 마음이 멀어지게 마련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내가 크로스핏 코치가 되고야 만 것이다.


내 구글 캘린더에는 중요한 기념일이 하나 있다. '크로스핏과 첫 만남 기념일'인데 2021년 8월 3일이다. 집 문을 열고 약간만 빠르게 걸으면 정말 5~6분 내로 갈 수 있는 거리에 크로스핏 박스가 한창 공사 중이었던 풍경을 기억한다. 그냥 집에서 가까우니까 다녀보자는 마음이 이렇게까지 발전할 줄은 나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이야 모든 게 익숙해졌지만, 크로스핏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사실 좀... (많이) 부담스러웠다. 이렇게 크게 틀어도 되나 싶은 음악 소리, 윗옷을 벗어젖히고 운동하는 사람들, 긴장한 나를 상담하러 성큼성큼 다가오시던 코치님의 선명한 복근, 강력해 보이는 사람들, 까무잡잡한 태닝 피부, 모든 것이...


그랬던 내가 크로스핏에 재미를 붙이고, CrossFit Level1 자격증을 따고, 어찌어찌 기회를 얻어 30대 중반에 '막내 코치'가 되고야 말았다. 오늘은 그 여정을 요약 전달할까 한다.


쇠질에 재미 붙인 피아니스트

나는 피아니스트다. 현재 경제활동에 피아노를 사용하지 않을 뿐이지, 음악 전공자로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장래희망에 '피아니스트'를 적어내던 어린 시절을 뒤로하고, 다 커서는 컴퓨터가 좋다며 어찌어찌 IT 업계에 흘러들어와 직장인으로 약 10년을 살았지만, 현재는 큰맘 먹고(?) 프리랜서로 전환한 지 2년 차가 되었다.


크로스핏을 하기 전까지 나는 바벨 한 번 제대로 잡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무언가를 번쩍번쩍 드는 건 내가 할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운동은 도대체 뭘 자꾸 이렇게 다양하게 시켜대는지 온갖 '쇳덩이'를 잡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바벨, 덤벨, 케틀벨, 철봉, 쇳덩이는 아니지만 밧줄까지...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재미있는 것이다.

ChatGPT 가 생성한 '쇠질 하는 피아니스트' 이미지. 대충 보니 행 파워 클린을 하려는 듯 보인다.

특히나 역도는 이전보다 높은 무게를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이 컸고, 스내치나 클린 앤 저크에서 요구하는 피니쉬 자세가 주는 묘한 쾌감이 있었다. 한참 회사 생활이 힘들 때에는 온갖 쇳덩이 친구들을 "오늘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을 뭉쳐서 만든 물체라고 상상하며 다뤘다. 그걸 끝끝내 들어내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스스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다는 일종의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크로스핏을 정말 좋아하게 되었고, 우연한 계기로 규모 있는 크로스핏 국제 대회(Far East Throwdown) 운영진으로 합류하게 되면서 업계에 대한 이해를 넓혀갔다. 그러면서 CrossFit Level 1이라는 코치 활동에 필요한 아주 기본적인 자격증까지 취득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크로스핏 코치 활동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기 검열과 망설임

내가 약 10년 간 경력을 쌓아온 도메인은 SW 개발 교육이다. 분야가 정말 다를지언정 어쨌든 교육 사업에 몸을 담아왔기 때문에 그럴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참여하는 각종 크로스핏 수업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만약 내가 코치가 된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혼자만의 상상도 많이 했다.


그런데 나를 돌아보자. 누가 봐도 멋진 몸을 가진 것도 아니요, 모든 동작이 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운동 수행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어찌 남들 앞에 서서 코치를 할 수 있겠는가? (라는 생각이 매우 강했다)


이런 자기 검열을 하다 보면 역시나 코치가 되는 일은 힘들거라 생각했다. 그냥 내가 크로스핏을 참 좋아하나 보다, 몇 년 뒤에 내가 링 머슬업을 성공하는 그때에 한 번 도전해 볼까? 뭐 이런 수준에서 생각을 멈추곤 했었다.


나를 더욱 가로막았던 것은 나 또한 예체능 전공자라는 사실이었다. 예체능은 보통 악기든 특정 운동이든 그것을 오래 해온 사람이 그대로 교육 시장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컴퓨터에 관심이 없었다면 지금 어디선가 어떤 방식이든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었을 수 있다. 그런 흐름을 잘 아는 입장이다 보니 도전을 계속 망설였다.


하지만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동시에 훌륭한 선생님은 아닐 수 있듯, 크로스핏 코치 역시 운동 능력 외에도 다른 영역이 많으리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또한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운동하는 환경을 이끌어가는 데에는 나의 다채로운 사회경험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자신감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그저 내 생각에 불과했다. 직접 코치가 되어보지 않으면 내가 이 일을 해낼 수 있는지, 무엇보다도 적성에 맞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구인공고도 없는데 겁 없이 지원서를 내다

올해 상반기, 체육관에서 새로운 지점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그렇구나' 하고 있었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오늘 한 번 지원서를 보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당장 코치가 되지 않더라도 이런 마음을 갖고 있다는 걸 한 번 표현하는 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한 번 생각이 불타오르니 걷잡을 수가 없었다. 마침 나를 응원해 주는 주변 코치님들의 이야기에 힘입어, 코치를 구인 중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그냥 냅다 맥북으로 자유 양식의 지원서를 써 내려갔다.

지원서 내용의 일부 발췌

솔직히 지원서를 보내면, "이 사람, 진짜 우리 박스(체육관) 좋아하는구나" 정도로 여겨주실 줄 알았다. 그런데 코치님들께서는 감사하게도 나의 열정을 소중하게 여겨주셨다. 몇 년 간 회원으로서 쌓아온 신뢰도 한몫을 했고 말이다. 게다가 마침 신규 지점의 오전 수업 담당 코치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라 생각보다 빠르게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2월 초에 보낸 지원서로 3월 중순부터 바로 코치가 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뭐 인생이 늘 뜻하는 대로 되던가? 그렇게 2025년 3월 24일부터 나는 크로스핏 파트타임 코치가 되었다. 30대 중반에, 완전히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3개월의 의미

보통의 회사생활에서 입사 후 3개월은 수습 기간으로서, 업무에 적응하고 역량을 보는 중요한 기간에 해당한다. 파트타임 코치에게 '수습기간'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게 지난 3개월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솔직히 정말 힘든 나날이었다. 어려운 순간이 많았음은 물론이요, 파트타임 코치 활동을 포함하면 쓰리잡 상태이기에 내가 괜한 일을 벌인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엄습하곤 했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동작을 수업에서 다뤄야 할 때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참고 자료를 뒤적이며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다.

힘들 때마다 기억했던 크로스핏 지존의 이대웅 코치님의 조언. 외에도 수많은 조언을 해주신 대선배님들께 감사합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감사한 일이 많은 3개월이다. 벌써 내 수업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생겼다. 코치님은 오전에만 수업을 하는지, 다른 곳에서는 수업을 하지 않는지 물어보는 분들도 종종 뵙는다. (설마 날 피하려는 건 아니겠지!)


운동을 대하는 마음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당장 특정 동작이 안되어도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안 되는 것을 조금씩 되게 하는 과정이 너무나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동작 하나하나를 수행할 때마다 '만약 이걸 남에게 설명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메타인지가 자연스레 계속되고, 그런 과정이 나름 재미있다. 오랜 기간 악기를 연습하며 깨달은 의식적 연습(Deliberate Practice)을 운동에 접목해 본다.


무엇보다도 수업을 하다가 종종 행복감을 느낀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일을 하는데 '종종'이라도 행복하고 만족감을 느낀다면 그만큼 좋은 것이 없다.


30대 중반, 나를 새로운 곳에 내몰다

코치 역할을 맡기 전까지는 내가 머슬업을 못한다는 사실(을 포함한 여러 자기 검열 요소)이 큰 걸림돌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코치 활동의 일부이고,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수많은 요소들이 존재함을 몸소 깨닫고 대응하고 있다.


종종 "계속 IT 교육 업계에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경력자 대우를 받으며, 나름 괜찮은 연봉을 제안받던 과거의 나를 떠올린다.

좋은 기회가 있다면 다시 회사에 갈 수도 있다는 막연한 생각도 한다.

조직에서 벗어나있다는 사실 자체가 개인에게 얼마나 불안감을 줄 수 있는지 몸소 체감한다.

가끔 기분이 쳐질 때는, 남들 눈에 내 이런 여정이 우스워 보이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컴포트 존을 완전히 벗어나 매일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는 내게 시간을 더 주고 싶다는 생각 역시 든다. 이전보다 규모는 적을지라도, 새로운 일을 행하며 받는 금전적 대가의 소중한 가치를 배우는 이 시간이 싫지만은 않다.


어느새 한국식 세는 나이로 36세가 되었다. 나이가 뭐 중요하겠냐만 막내로 뭘 시작하기엔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상만 하던 일을 실제로 수행해 보고, 적성에 맞는지 스스로를 현장에 내던지고, 뒤에선 울기도 하고 징징대기도 하면서 막상 수업이 시작되면 열성을 다하는 내게 칭찬을 해주고 싶다.

40대 이상의 회원분들을 모시고 별도로 작은 수업과 운동을 진행했던 어느 날의 추억


무엇보다도 부족한 나에게 기회를 주신 김유성 코치님, 박희원 코치님, 아낌없는 조언과 응원을 주신 분들, 부족한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빠지지 않고 출석해 주시는 회원분들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크로스핏슈팅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