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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우야요 Feb 21. 2021

그냥 앉아 있다.

그냥 앉아 있다.
봄이 오려해서 그런가?
그냥 앉아 있다.
아무 일도 안 하고 그냥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마우스를 움직이고 키보드를 치고 자료를 보고 회의도 해야 하는데 그냥 앉아 있다.
일요일 사무실 나와 점심만 먹고 모니터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왜 이리 하품이 나올까?
 
사무실 내 책상은 잘 정리되어 있다.
커피 반만 차 있는 머그 컵, 쓰다 벗은 마스크, A 프로젝트 프린트 물, B 프로젝트 프린트 물, C 프로젝트 프린트 물, 그리고 각종 관련 서류(업무용 파일, 보고서 프린트용 파일, 각종 견적서 파일 등)와 각종 참고서적, 각종 핸드폰 줄과 아이패드, 이어폰 충전선, USB 선, LED조명, 말린 장미꽃, 말린 천일 홍, 각종 메모지, 물티슈, 머리띠, 널브러져 있는 각종 필기구 그래도 음식물은 없다.
책상 밑은 슬리퍼에 박물관용 신발...
 
어릴 적 엄마가 살아계실 때 내 방은 여러 개의 팔레트와 각종 물감과 물통, 붓, 큰 책상 그리고 각종 지류 등이 널브러져 있었고 잠은 책상 밑에 들어가서 잔적이 많다. 밖에서 놀다 집에 오면 엄마가 방을 다 치워놓아 엄마에게 철없이 대들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난 며칠 동안 다시 나만의 질서 있는 동선을 만들었다. 그 후 엄마는 내방을 방문하지 않으셨다. 아마도 속 터지셨을지도 모르겠다.
 
현재 내 책상은 그때의 그 모습과 비슷하다. 그런데 내 책상을 좋아하시는 분이 있다.
내 의자 뒤 캐비닛이 좀 낮게 되어 있다. 가장 높으신 분은 내 의자 뒤 캐비닛에 앉으셔서 내가 작업하는 걸 보는 걸 좋아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하셨다.
그런데 이 분은 나의 자리가 지저분하네 더럽네 그런 말은 안 하셨다.
그냥 내 뒤에 앉아 나랑 얘기하고 다른 동료들을 불러 보고도 받고...
그리고 내가 아무 말 없이 일만 하면 집중력이 대단하다고 말을 걸기도 하셨다.
어느 날은 내가 여러 책과 홍보물 등을 잔뜩 내 자리 뒤에 올려놓았다. 잠시 박물관 안에 다녀왔더니 행정실 식구들이 그 홍보물을 치우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가장 높으신 분이 거기에 걸쳐앉으셨다.
그냥 내 자리는 나만의 법칙으로 깨끗하다는 것을 그분은 아신 것이다.
내 자리 뒤만 열심히 치우라 하시는 거 보니 그냥 난 잘 내 자리에 앉아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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