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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우야요 Jul 24. 2021

알바 주세요.

한참 일을 엄청 많이 했다.

그 일 많이 하던 시절에는 알바도 참 많이 들어왔다.

주로 그림 그리는 알바보다는 디자인 알바가 엄청 들어왔다. 밤새서 집에서 아르바이트하고 회사 출근하고 야근하고 또 밤에 집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세월이 지나면서 디자인 알바와 그림 그리는 알바가 동시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는 디자인 알바는 하지 않는다.

점점 인생 이모작을 위해 그림 그리는 영역을 확장하고 있었다.

결혼 후 나에게 알바는 내 비상금의 원천이었다. 가끔 짝지에게 선물도 사주고 친구들에게 소주도 한잔 사고, 그런데 그런데 요즘 주머니가 궁하다.

그림 그리는 알바가 멈추었다.

어디 나에게 콜라보 하자는 작가도 없고 그림 그려달라는 사람이 사라졌다.

가끔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고 그림 그려달라는 친구들밖에 없다. 난 안 그려줬다. 돈을 받아야 그림이 잘 나왔기 때문이다.

 

요즘 가끔 박물관 그림을 그렸다.

그냥 심심해서 그렸다.

어느 날 내 책상 뒤에 학예사 3명이 와서 내가 그린 그림을 2주년 기념 도록에 넣자고 졸랐다.

그래서 난 인상을 썼다.

'공짜! 싫은데....!'

그들은 온갖 감언이설로 내 그림이 좋다는 둥 최고라는 둥 여러 가지 말을 하면서 넣자고 했다.

내가 "돈 주면 넣을게요!"라고 대답해 버렸다.

노력해 보겠다는 말만 돌아왔다.

'주겠다는 건가? 안 주겠다는 건가?'

 

오늘도 내 뒤에 와서 귀찮게 군다. 내 인스타 그림을 어느새 캡처해 와서 이곳에 넣으면 이쁠 거 같다는 둥 저쪽에 저 그림이 어울린다는 둥....

귀찮다.

 

누구 나 그림 그리는 알바 안주나?

 

박물관 도서관에서 민원이 들어왔다.

인포에 있는 직원이 아파서 대타를 뛰던 행정실 직원에게 뭐라고 한듯하다.

이유는 도서관에 귀중도서도 없으면서 에어컨을 아주 춥게 틀었다고 마구 뭐라 했나 보다. 인포에 있던 직원은 냉방을 해야 습도를 유지하고 도서들이 안 망가진다고 대답했다고 했다.

그랬더니 더 화를 내고 책임자 나오라는 둥 뭐라 했다. 무서웠던 직원은 도서관 담당인 나에게 연락을 했다.

박물관은 8년여의 긴 세월 동안 공사가 진행돼서 만들어졌다. 이 박물관 사업은 여러 가지 진통을 겪으며 다양한 업체들이 공사를 했다. 그래서 하자가 생기면 여기저기 서로 남 탓을 했다.

공조기와 냉난방 시스템이 단일화되어 도서관에 연결이 되어있다. 냉난방을 켜면 가장 먼저 도서관에서 시작이 된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도서관에서 냉난방을 끄면 입구 쪽 샵이나 인포 쪽은 찜통더위가 된다. 그래서 평균 온도를 만들기 위해 도서관에 냉난방을 세게 튼다. 도서관은 아주아주 시원하다 못해 사실 춥다. 제일 죄송한 건 도서관 봉사자들이 한여름에도 외투를 입고 계신다. 더러는 피서 온 거 같아서 좋다고 하시지만 죄송한 건 어쩔 수 없다.

 

난 민원을 넣은 분께 가서 죄송하다고 인사를 드렸다.

그분은 다짜고짜 자기는 오후에 자주 오는데 자신이 앉는 자리 위에 에어컨 구멍이 있어서 직접적으로 바람을 맞아 춥다는 것이다. 다른 자리에 앉으시라 했더니 항상 오면 다른 자리는 다른 사람이 차지해 있다고 했다. 좌석이 많이 없어서 죄송하다 했다. 그리고 당장 에어컨 끄라는 말에 건물 구조가 잘못되어 있어서 잘못 지어서 죄송하다고 했다.

책도 헌책방 가면 1000원이면 살 수 있는 책인데 책이 습기에 망가지면 좀 어떠냐고 나에게 따졌다. (사실 우리 도서관 책은 전시와 관련된 인문학 책을 위주로 과학서 예술서 역사서 등이 대부분이다. 일반 대학생들이나 대학원생들도 다양한 자료를 보기 위해 많이들 찾아온다.)

속으로는 그러면 헌책방 가서 보시지요?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난 또 죄송합니다. 시설이 미약하고 원하시는 책이 없어서 죄송하다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서울시와 중구에 직접 얘기해서 책임자를 소환하겠다고 나에게 반말과 존대를 섞어가며 얘기를 했다.

또 난 죄송하다 했다. 사실 그분이 서울시에 민원을 넣는다 해서 내가 무서울 건 없다. 하지만 '그러시면 앞으로 박물관에 도서관에 오지 마세요'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냥 죄송하다는 말을 무한 반복 후 오히려 그 사람이 지친 듯 가버렸다.

사무실에 복귀하니 놀라 있던 행정실 직원이 나에게 어찌 되었냐고 물어봤다. 난 웃으며 죄송하다 말 한마디 하니 집에 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냥 신경 쓰지 말라고.... 한마디 하고 난 또 내일을 열심히 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짝지에게 화난다고 소주 한잔 사달라 했다가  혼났다.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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