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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우야요 Dec 10. 2021

성요셉 아파트

박물관의 전시의 핵심은 상설전시이다. 상설전시 1관, 2관으로 나뉘어 있다.

상설전시 1관은 사상사를 중심으로 하는 조선시대 전 후기 역사에 대해 전시를 하고 2관은 서소문의 지역성과 역사성을 다룬다.

지역성과 역사성이 숨 쉬는 이 지역은 정약용의 목민심서 '곡물이 폭주하고 수레가 부딪치고 사람이 어깨를 부딪치는 곳이다'라고 기록했듯이 성저십리(城底十里) 번화했던 공간이다. 한강을 통한 물자가 이곳으로 넘어와 수산시장인 칠패시장과 함께 여러 난전들이 모여 있었다 한다. 박물관의 자랑인 '대동여지도' 안의 '경조오부도' 와 '도성도'를 보면 한강으로의 접근성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 볼 수 있다.

사람의 왕래가 많았기 때문에 이곳은 조선시대 국가의 공식적인 처형의 장소가 되었다. 경성도(1922년)에 나오는 '뚜께우물'이 이를 확인해 준다.

세월이 지나 일제강점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곳의 역사는 현재 진행 중이다.

 

성요셉 아파트가 있다.

지난번에 언급한 서소문아파트 보다 한 살 덜 먹었다.(그래도 나보다 훨씬 오래 산 형님이다. ㅎ)

우리나라 최초의 고딕 양식 벽돌로 1892년 지어진 중림동 약현성당의 주보성인이 성요셉이다.

그 옆에 지어진 아파트가 성요셉 아파트다. 지어질 당시에는 주변에 높은 건물이 전혀 없어서 유일하게 시야를 방해한 건물이 남산타워라 했다.

성요셉 아파트와 서소문아파트는 주상복합 아파트이고 지어질 당시에는 서울의 최고급 아파트였다.

현재는 주변 고층빌딩 사이에 파묻혀 현장에 가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작은 서민아파트가 되었다.

서소문아파트는 박물관에서 서소문고가를 끼고 건너야 하고 성요셉 아파트는 박물관 정문에서 길을 건너 중림시장을 통해 올라간다.

성요셉 아파트는 언덕을 평탄화 하지 않고 115미터 정도 되는 거리를 언덕 위에 하나씩 얹어 공간 효율을 위해 편 복도식 주거공간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층마다 입구가 달라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가려면 위층 가는 입구를 찾아가야 한다.

예전에는 만리동을 중심으로 현재 손기정 기념관이 위치한 곳에 '양정 중고등학교'와 같은 명문학교들이 있었지만 현재는 도시 공동화 현상에 의해 원주민이 줄고 교육기간은 신시가지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이곳 약현성당을 중심으로 발달된 재래시장은 아직도 아침에 활기차다.

더불어 성요셉 아파트 앞 골목길에는 청년들이 입주하기 시작했다. 서점도 들어섰고 LP 레코드 샾, 작가 공방, 수선집, 그리고 에스프레소 전문바도 생기고 이 거리는 젊은이들로 채워지고 있다. 옆동네 만리단길의 와인 봐와 같이 함께 잘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림을 설명하자면 왼쪽은 성요셉 아파트, 오른쪽은 원래 판자로 이어진 집이었는데 정리가 되고 멋진 현대식 샾이 들어섰다. 벽에 대한 마감은 우리 박물관을 따라서 했는지 비슷한 콘크리트가 줄줄 흐르는 듯한 공법을 사용했다. 이 안에 들어가면 공간들이 재미나게 나온다. 얼마 전 회사 동료와 이 안에 들어가 거울처럼 반사되는 유리벽 앞에서 옷매무새를 정리하다가 유리벽이 열리고 사람이 나와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왼쪽 성요셉 아파트



새벽시장의 활성화로 아침 일찍부터 청년가게들이 문을 연다. 그리고 직장인들 대상으로 점심장사를 한다. 그리고 일찍 퇴근들을 하는 듯하다. 저녁에는 직장인들이 다 각자의 쉼터로 가서 이곳 서울 한복판에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에게는 좋다. 난 밤에 이 동네에서 술을 한잔 한다. 이유는 사람이 적어 거리두기가 아주 편하다.

처음 박물관이 개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식당 사장님께서 찾아오셨다. 박물관이 생기고 나서 손님이 많이 늘었다고 인사를 오신 것이다. 먹어보고 맛이 있었기 때문에 관람 오시는 내방객들에게 음식 종류에 따라 알려드리고 단쳬관람객들도 소개했다. 그러면서 SNS에 하나 둘 노출이 되었고 사람들이 가기 시작했다. 물론 음식이 맛있었기 때문에 꾸준하게 장사가 잘되시겠지만 인사를 오시니 오히려 우리가 감사했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한 영향으로 외지 사람은 덜하지만 활기는 여전하다.

빨리 코로나가 물러나서 예전과 같은 북적북적함이 시장에 더 생기기 기원해본다.


서소문 아파트이다. 이 그림과 위 성요셉 아파트 그리는데 1주일 정도 걸린듯하다. 시간 날 때마다 방문해서 스케치하고 사진 찍고 다시 그리고… 재미난 작업이었다.

잠깐의 설명을 하면 혹시나 박물관 찾아와서 식사 가시는 분을 위한 더하기 글을 써본다.

이 서소문아파트에는 요 앞 꼬치집을 따라 옆집이 얼마 전 '사시미동'을 그려 올렸던 초밥집이고 그 옆이 백 아저씨의 4대 천왕인가? 하는 프로에서 우승한 '다슬기 라면'을 만들어 파는 집이고 그 옆집은 점심시간에 산더미 비빔밥을 팔고 그 옆집은 비 오는 날 생각이 간절히 나는 수제비 맛집이고 그 옆집은 알탕과 동태탕이 개운한 집이고 라면에 돈가스를 말아서 파는 집, 얼마 전 중국산 김치를 아무도 안 먹자 한국산 김치로 바꾸신 순댓국집, 회를 시키면 밥을 양푼에 담아주고 회는 큼지막하게 썰어서 알아서 밥 위에 회 얹어먹으라는 집 등등등이 있다. ㅎㅎㅎ




고민이 있다. 방역 패스가 다음 주에는 강화된다.

박물관에서 내가 맡은 구역은 도서관이다.

도서관 봉사자 중에 백신을 맞지 않은 분이 계신다.

내일 토요일 출근을 해 백신을 맞지 않은 봉사자를 만난다.  다음 주부터는 한 달만 쉬어 달라고 말해야 한다. 물론 한 달 후에 확진자가 줄어 방역정책이 바뀌길 바래야 한다.

봉사자에게 문자를 남겨도 된다. 하지만 난 문자보다 얼굴 뵙고 눈을 맞추며 속 얘기를 하기를 원한다.

마음에 상처가 생기지 않게 조심스레 말하려 한다.

결국 이 방법밖에 없나? 어렵다.

한 달 후 에는 다시 뵐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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