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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우야요 Jan 23. 2020

일상 속 박물관 그리기

요즘 내가 하는 일


난 아침에 눈을 뜨면 화장실에 앉아 칫솔을 입에 물고 게임도 하고 전날 누가 유럽에서 골을 넣었는지 확인도 하고 한참을 기다린 후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한 후 몸 구석구석을 말리고 어제 입었던 옷은 세탁실에 넣고(왜 밤에 안 넣고 아침에 치우는지....) 옷장에서 빤 옷을 꺼내 입고 신호등 바뀌는 순서를 계산하며  광역버스를 타러 터벅터벅 간다.
버스를 타면 어제 못다 한 상상의 이야기를 다시 이어서 생각하며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다.
그리고 아무 소리도 없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사실 나에게 이어폰은 주변소리 차단용이지 음악을 듣는 용도는 아닌 듯하다. 내 폰에 저장되어 있는 음악이 몇 개 안 되는 걸 보면 뭐 뻔한 거다.) 창밖을 응시하며 멍 때린다. 사당역에서 앉기 위해 출발 열차를 여러 대 기다리다 타고 서울역에 내려 서울로를 따라 계절에 보이는 식물과 대화를 한 후 사무실로 향한다. 서울로 에 대한 사족을 달면 우리 박물관의 옥상공원과 달리 계절마다 그 계절에 맞는 식물들이 내가 다니는 길목에 배치가 되어 나에게 계절의 변화를 온도뿐이 아닌 실제 살아있는 친구로 만나게 해 준다.
아침 9시까지 출근이다. 하지만 사무실 도착은 8시 40분 정도가 된다. 그 20분 동안 짝지가 똥 잘 싸라고 챙겨준 장에 좋은 유산균과 집에서 챙겨간 원두로 혼자만의 드립을 하며 하루 일과를 체크한다.
9시 30분 개관을 위해 먼저 도서관을 향한다.
진입광장을 지나 인포데스크 앞을 지나며 봉사자 분들과 환경미화원 어머님께
아주 환한 미소로 인사를 한다.
난 인사성이 바른 사람 중 한 명이다. 내가 인사를 밝게 해서 상대가 기분이 좋으면 나도 좋다. 설령 그분이 내 인사를 안 받아줘도 또 인사를 한다.
그리고 난 도서관 문을 열고 불을 켜고 컴퓨터를 세팅하고 공기청정기 전원 버튼을 누른 후 경당에 잠시가 앉았다가 지하 3층에 내려간다.
지하 3층 위로의 홀에는 영화를 틀어도 좋을 만큼의 4면 영상 시설이 있다.
그 영상을 틀고 잠시 영상의 질이 좋은지 오류가 없는지 확인하고 하늘로 향해 열려있는 광장에 나가 하늘을 향해 팔을 한번 벌리고 한참을 바라본다. 그 후 행정실로 복귀한다.
나의 매일 아침 반복적으로 하는 일이다.




요즘 주된 업무는 상설전시 개편에 의해 유물을 정리하고 
박물관 사용설명서를 만들기 위해 사진을 찍고 페이지 구성을 한다.
사무실에 앉아서 일을 보다가 갑자기 일어나 카메라를 챙기고 박물관 안으로 내려가 마구 찍고 다시 책상에 앉아 포토샾으로 보정하고 각도가 맘에 안 들면 다시 박물관으로 가서 또 사진 찍고 나의 주된 업무를 박물관의 콘텐츠를 사람들에게 시각적으로 예쁘게 보이게 하는 디자인 업무이다.
고도의 집중력과 창의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수많은 훈련을 통해 지금의 내가 탄생되었다? 고 생각하지만 여기선 남들의 시선에서 보기에 맨날 노는 사람으로 보인다.
다들 책상에 오래 앉아서 일을 하지만 난 맨날 박물관을 돌아다니고 이웃 박물관 구경 가고 서점도 구경 가고 컴퓨터 화면에는 각종 패션 이미지나 그림 이미지를 보고 맨날 관람객이나 봉사자님들과 수다를 떨고 제일 한가해 보인다. 사실 난 박물관이 신기하고 새로운 작품이나 유물이 나오면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고 싶다. 그래서 보이는 관람객들에게 말을 많이 걸기도 한다. 작품이 어떠한지, 저 골목 안의 작품은 보셨는지 등을 물어보고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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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박물관에는 가족들이 소풍 오듯이 온다. 광장에서 뛰놀고 전시장 구경을 하고 특히 아이들, 초등생 하고 난 가끔 논다. 난 그 아이들과 재미나게 얘기하다가 웃을 때가 참 많다.
어제 내 옆자리에 있는 나이 지긋한 주임님께서 나에게 ‘자네는 정말 안내봉사를 하면 겁나게 잘할 거 같아! 정말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에게 다가가!’라고 말을 해준다. 나 사실 낯 많이 가리는데.... ㅎㅎㅎㅎ
점심시간이 12시부터 이다.
우리는 구내식당이 없다. 회사에서 점심값 일부를 지원을 해준다. 그리고 우리는 손님이 많다. 손님들 대부분은 한 예술을 아시는 분들이라서 인지 오실 때 처음 보는 빵이나 간식거리를 선물로 사 오신다.
항상 탕비실에 가서 어떤 견과류가 있는지 어떤 간식이 있는지 등등을 파악하는 것도 나의 일과가 되었다. 점심을 먹으러 박물관 앞의 재래시장을 자주 간다.
이 곳 식당들 특징은 가격이 싸지는 않다. 사실 물가가 많이 올라서 상인들도 올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상인분들은 비싼 밥값이 미안한지 아니면 장사의 수단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치찌개를 시키면 비빔밥이 같이 나오는 식으로 한 가지 음식에 또 다른 음식을 더해서 돈을 더 받고 점심 장사를 하신다.
그런데 박물관 직원으로 단골집이 좀 생겨 다니면 주변 식당 사장님들이 서비스로 계란 프라이 하나를 더해주시거나 하신다.


여기서 우리 박물관 자랑을 좀 하면 박물관 자리는 서울시에서 일명 버려진 땅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박물관 인근이 4개의 난전이 모여있는 서민들의 왕래가 많은 장소였고 중국 사신들이 왕래했던 커다란 길이기도 해서 교통의 요지이기도 했다. 한양 4대 문 밖의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살던 곳이라 나라에서 백성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할 때 이곳 장소를 이용해 처형과 효수 등 많은 무서운 역사가 함께한 곳이다. 지난 글에, 지난 그림에 우물을 그린적이 있다. 그 우물은 뚜께 우물이라 해서 망나니들이 나라에서 죄인이라고 명한 사람을 치고 난 핏자국을 씻었던 우물, 평소에는 뚜껑을 닫아 두었다는 그 우물이 있다. 그래서 동네 이름이 개정, 지금의 개정동이 되었다고 한다.
암튼 일제강점기 이후 철도 시설 용지로 쓰이고 일제에 의해 성벽 및 성문이 헐리면서 점점 서울 한복판의 소외된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장소가 되었다.
오직 행려자들, 노숙인들에게 친숙한 장소가 되었다. 하지만 이 곳에 박물관이 생기면서 많은 분들이 정말 많은 분들이 찾아오신다. 어느 주말에는 줄 서서 관람하는 것도 볼 정도로 많은 분들이 오신다.
그분들이 박물관 앞 재래시장도 자연스럽게 방문하신다.
박물관 앞 시장 사장님들이 우리를 좋아하신다. ㅎㅎㅎ
점심을 먹고 박물관 옥상공원의 꽃들을 구경하고 사무실 복귀한다. 1시 반에 봉사자 교대식에, 난 그냥 혼자 교대식이라 한다. 미리 가서 오전 봉사자분들께 있었던 일들에 대해 얘기 듣고 오후 봉사자 분들께 고생해달라고 인사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오후 업무는 거의 2시가 되어야 시작이 된다.
열일을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갑자기 “박물관 관람시간은 5시 30분까지입니다!”라는 방송을 듣고 지하 3층으로 내려간다. 가시는 분들께 찾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며 나가는 동선을 설명해준다. SNS에 꼭 선전 좀 많이 해달라는 멘트를 한다. 처음에 들어올 때 관람객들 얼굴과 퇴장할 때 관람객 얼굴은 차이가 있다. 그냥 무표정의 얼굴로 들어오는 분,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들어오시는 분 등 다양한 얼굴에서 관람 마감 방송 후 퇴장하시는 관람객 얼굴은 뭔가 만족해하고 더 못 보는 게 아쉬워하는 얼굴로 바뀌어 있다. 내가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다음에 더 좋은 전시 보러 와주세요!”라고 인사를 하면 오히려 밝게 더 웃으면서 나에게 이런 전시 봐서 좋았다는 피드백을 즉석에서 주시는 분들이 많다. 그리고 입장할 때와 다르게 나갈 때는 오히려 고개를 숙여 인사해 주시는 관람객이 많으시다.
박물관 퇴장 준비를 마치고 오후 6시가 되면 집으로 간다.
누구는 탕비실에 앉아 음식을 먹으며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기도 하고 누구는 서둘러 업무를 마무리하려 하고....
곧 새 전시가 시작이 된다.
잘 보고 새 전시 과정도 잘 배워야겠다.

요즘 요즘 가끔 벨을 누르고 도망가는 분들이 계신다?
행정실은 박물관 입구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거리가 떨어져 있다.
정말 많은 내방객들이 행정실을 찾는다.
그들이 두드리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벨을 달았다.
인터폰은 직접적으로 얼굴을 볼 수가 없어서 좀 예의가 없어 보이고
그래도 벨을 달으니 직접 얼굴 보며 민원을 처리하거나 인사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듯하다.
처음에는 택배 사장님들이 가장 많이 이용을 했는데 요즘은 어르신들이 많이 찾아주신다.
박물관 위치부터 화장실 위치, 공원에 이상한 사람이 있다는 신고부터 어떤 사람이 반려견을 데리고 와서 똥을 안 치웠다는 이야기, 길냥이 밥을 주는데 요즘 안 보여서 혹시나 길냥이 안부를 묻기도 한다.
박물관 초기부터 내 자리가 문쪽이라 내가 가장 많이 문을 열어주었다.
지금은 배려? 에 의해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어찌 되었던 벨소리는 전체 행정 실안에 퍼진다.
한번 누르시는 분, 두 번 누르시는 분, 답답한지 여러 차례 앞에 문 열어드리는 순간에도 누르시는 분들,
저마다 성격에 따라 다르게 누르신다.
그런데 요즘 방학을 맞이하여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많이 온다.
띵동~
“박물관 안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띵동~
“박물관 안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띵동~~~~~
“박물관 안~”
(
그리고 어느 날부터 띵동 해서 나가보면 아무도 없고
띵동 해서 나가보면 아무도 없고

갑자기 나 초등학교 시절 남의 집 대문 초인종 누르고 도망가던 시절이 자꾸 생각이 난다.
그 당시 학교에서 싸움 제일 잘하는 형님의 집 초인중 누르다 잡혀서
정말 거짓말 안 하고 비 오는 날 먼지 나듯이 두들겨 맞고,
집에 왔더니 아버지께서 얼굴의 상처를 추궁하시길래 솔직하게 말했다가 종아리에 회초리 맞았던 기억이 마구 떠올랐다.

자꾸 누가 누르고 그냥 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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