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지만 결과를 받기까지는 격리 생활을 계속하기로 했다. 검사를 받은 이번 주에는 사실 중요한 날이 있었다. 바로 딸의 생일과 주립공원으로 나들이를 가기로 했었으며 심지어 나들이를 가서는 낚시를 할 원대한 계획까지 있었다. 낚시를 좋아하지 않는 아내가 낚시를 허락하는 날이 1년에 며칠 안되는데 그런 귀한 날 중 하나였다. 낚시와 나들이는 다음에 가도 상관없지만 딸아이의 생일파티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만약 코로나 확진이라면 당장 와이프와 아이부터 검사를 받아야 하고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할지 대책을 세워야 했다. 안내문에는 48시간 이내라고 나와있었지만 현장에서 안내원은 72시간이라고 했으며 금요일까지 연락이 안 온다면 주말에는 연락이 안 올지도 몰라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화요일부터 격리 생활을 시작했고 확진일지도 모른다는 가정하에 나는 집에 있는 것조차 부담스러워서 최대한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늦게 귀가했다. 수요일에 검사를 받았으니 목요일도 업무를 마치고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8시 30분 조금 넘어 귀가했다. 보통 집에 도착하면 차고에 주차하고 뒷문으로 들어오는데 가족들과 완벽하게 격리하려 주차를 집 앞 정문 쪽 도로에 하고, 문을 열 때도 장갑을 꼈으며, 마스크도 집에 와서 계속하고 있었다. 돈을 아끼고자 저녁도 안 사 먹고 집에 가면 일찍 자려했지만 너무 배가 고파서 아내에게 염치 불고하고 컵라면을 부탁했다. 아내는 정성스럽게 라면과 딸기, 물 등 필요한 것을 모두 채워주었고 아주 멀리 떨어져서 딸과 함께 짧은 시간 인사만 나누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내와 딸도 나로 인해 계속 마스크를 하고 지냈으며 아내는 내가 지나다닌 곳을 소독하고 청소하느라 이미 많이 지쳐있었다. 아내와 문자를 주고받으며 연락하는데 아내는 "많은 것 바라지 않으니 확진만 아니면 행복하겠어..."라는 말을 했다. 행복하다는 말을 잘 안 하는데 얼마나 걱정이 되었으면 확진만 아니면 행복하겠다니 아내가 얼마나 걱정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그저 내일 즉 금요일에만 연락 와서 주말에 계획한 나들이와 딸아이 생일까지 모두 무사히 보낼 수 있기를 아니 그저 하루빨리 지난주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함께 지낼 수 있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아내는 지금의 격리 생활을 즐기라고 했지만 나 역시 확진 일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집에 와도 가족들에게 옮길까 봐 불안해서 집에 있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우리는 제발 더 늦어지지 않고 내일 결과가 나오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드디어 우리가 기다렸던 금요일이 밝았다. 어디까지나 우리의 바람이었을 뿐 금요일에 결과가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정처리 느리기로 유명한 미국에서 이런 기대는 사람을 늘 실망시키고 지치게만 할 뿐이었다. 마음은 비웠지만 그래도 너무 힘들었기에 하루 종일 결과만을 기다리며 전화기만 쳐다보며 하루를 보냈다.
오후가 되어도 연락이 없어 오늘도 연락이 안 올 듯싶어 그동안 미루어 왔던 자동차 엔진오일을 갈고 집에 늦게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공공장소에 가는 것이 조심스러워 그동안 미루어왔었는데 지금의 내 상태가 확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타인들을 생각해 장갑과 마스크 등을 완벽히 준비하고 예약한 자동차 딜러십 (매장 겸 서비스 센터)을 방문했다. 차를 맡기기 전 내 차에 소독을 하고 접수를 끝낸 뒤 대기실에서는 사람들과 최대한 거리를 두고 앉았다.
습관적으로 대기실에 있는 음료 코너에 가서 커피를 가져왔다. 마스크를 하고 있어서 커피를 못 마시는데 멍청하게 커피를 가져왔다. 역시나 습관적으로 마스크 하고 있는 것을 잊고는 그 뜨거운 커피를 입에 대고 부었다.
많이 뜨거웠다. 데였는지 입술이 따가웠다. 마스크가 조금 젖었다.
추했다. 주변에 사람은 없어서 날 보지 못했다. 아내한테는 혼날까 봐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아내가 브런치에서 날 발견했고 내 글을 읽는다. 아마 이 글을 보고 나면 혼날 것이다.
예상보다 빠르게 끝났다. 친절한 담당자 아저씨는 간략한 자동차 상태 설명을 해주고는 결재를 도와주고 준비된 차를 주었다.
코로나 때문에 핸들과 기어봉에 이렇게 비닐을 씌워주었다. 그래도 불안해서 다시 소독하고 손이 닿을만한 곳들을 깨끗이 닦았다. 그렇게 해가 질 무렵 집으로 도착해 주차를 마쳤는데 아내에게 문자가 왔다. 오늘 화내고 소리 질러도 아무 말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나는 내가 잘못한 게 있거나 딸아이가 잘못한 게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은 아니었고 단지 몸과 마음 모두 너무 지쳐서 그런 것이었다.
우리 모두 오늘까지 결과가 나오길 그토록 원했지만 이미 금요일은 저녁 7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집에 들어와서 아내는 묵묵히 저녁을 차려주었다. 그리고는 간단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얼마나 힘들고 지쳐있었으면 그 별 내용 아닌 이야기들을 하면서도 울먹거리고 있었다. 멀리 떨어져 그저 듣고 일찍 들어가서 혼자 있는 것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어 계속 미안하다고만 했다. 그렇게 아내가 넣어준 고기덮밥을 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코로나 증상 중 하나가 미각과 후각이 마비되어 냄새도 구분하지 못하고 맛 역시도 느끼지 못한다는데 내 방귀 냄새에 기절할 것 같아 차에서 창문을 열었었고, 아내의 저녁도 너무 맛있는 게 느껴지는 걸 보면 코로나가 아닐 수 있겠다 하는 기대도 내심 있었다. 하지만 가슴의 답답함은 계속 남아있었다. 그렇게 식사를 하며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보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코로나 결과가 나왔다며...
결과를 문자로 알려주기로 했었는데 거짓말이었다. 거짓말이라기보다 문자로 결과가 나왔으니 이하 인터넷 주소로 가서 결과를 확인하라는 내용이었다. 확진인지 아닌지를 문자로 바로 알려주는 것을 기대했는데 어찌 되었든지 결과가 나왔다고 하니 식사를 멈추고 바로 확인을 해보려 진행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심장이 얼마나 빨리 뛰고 손이 떨리는지 예전 군대 입대해서 신체검사받고 혈액 이상자로 판명받아 이유도 모르고 재검받을 때의 기분과 비슷했다. 얼마나 떨리던지... 생년월일을 입력하라고 화면에 나왔다. 이어지는 결과는 바로...
확진이 아니었다. 코로나에 걸린 것이 아니었다. 정말 보자마자 바로 밥 먹던 것 내려놓고 아내가 있는 안방으로 달려 아니 돌진을 했다. 아내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뭐 하는 거냐고 소리쳤다. 아내는 이유를 알지 못하니 마스크도 안 하고 장갑도 하지 않은 상태로 갑자기 달려오니 당황하고 기겁하는 것이 당연했다. 핸드폰을 보여주었지만 평소 시력이 좋지 않은 아내라서 보이지 않는다며 왜 이러고 왔냐고 계속 다그쳤고 이내 설명을 듣고서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너무 좋아서라기 보다는 그동안 너무 힘들었기에 흘리는 눈물 같았다. 그리고는 정말 너무 힘들었다며 그리고 안 걸려서 너무 다행이라며 이내 안심하고 울음을 멈출 수 있었다.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동안 몸이 힘든 것도 있었지만 내가 부주의해서 걸린 것 같아 원망도 되었고, 아이 생일이라 헤어숍 예약해서 오랜만에 머리도 예쁘게 할 계획이었는데 그것도 못하게 되었고, 딸아이 생일 파티도 못하게 되었고 모든 것이 쌓이고 터져서 더욱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렇게 격리 생활하며 지냈던 악기 방에 있는 모든 짐들과 생필품들을 정리하고 드디어 침대로 와서 누웠다. 며칠 동안 안아보지 못했던 딸아이를 마구 안아 흔들었고 그동안 못했던 장난을 마구 쳤다. 정말 기뻤지만 아내와 나는 한편으로는 코로나에 걸려서 힘들어하고 있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떠올랐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지 간접적으로 며칠간 경험하며 느낀 것이 많았다. 아내는 주변에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꼭 돕고 싶다는 말을 했다.
오늘 토요일 비록 우리는 계획했던 나들이를 가지 못했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동네 꽃과 식물을 파는 가게에서 아이들에게 무료로 호박을 나눠준다고 하여 함께 가서 호박을 받아왔다.
다시 함께 하게 된 일상의 모든 것이 감사하고 즐거웠다. 그리고 아직 자유롭지 못한 코로나의 상황에서 더욱 조심하고 경계하여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나뿐만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도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못하게 될 줄 알았던 딸아이의 생일파티를 분주하게 준비기 시작했다. 아내는 코로나 때문에 비록 다른 친구들을 초대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최선을 다해 생일파티를 해주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풍선으로 멋진 장식을 해주려 풍선을 100개 넘게 준비했는데 그걸 모두 입으로 불겠다며 10개 정도 불고는 힘들어하길래 코로나 전에 풍선 때문에 폐가 망가지겠다고 했다. 자동차 타이어 바람 넣는 걸 이용해여 내가 풍선에 바람을 넣어보았다. 아내의 반대로 비록 5개밖에 못했지만 함께 힘을 모아 열심히 풍선 장식을 만들며 내일 딸아이 생일 파티를 준비했다.
코로나 이후로 타인과의 접촉이 없었던 이유인지 딸아이는 3월부터 오늘까지 단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었다. 콧물감기를 자주 옮아오곤 했는데 그래도 3번째 생일까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주어 정말 감사하다. 아프지 않고 건강히 자라주는 게 최고의 효도인데 오늘도 말 안 듣고 칭얼거린다며 아이한테 짜증을 냈던 나 자신을 반해본다.
확진이 아니라는 결과는 받고서 기쁘다기보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확진이 아니라고 자랑을 하려고 글을 쓴 것은 아니니 의도가 왜곡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코로나로 인하여 힘들어하고 계신 가족분들은 무사히 쾌차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의료계에서 봉사하며 힘쓰시는 의료진들도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코로나를 극복하는 그 날까지 모두 이겨내도록 힘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믿는 하나님이 우리 딸아이가 매일 하는 기도를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밖에 나쁜 바이러스가 많아요. 그래서 유치원도 못 가고 친구도 못 만나요. 유치원 가고 싶어요. 친구들과 선생님 보고 싶어요. 아픈 사람들 고쳐주세요. 엄마 아빠도 지켜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