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는 최고, 우리에겐 최악

[아버지 02] 가족보다는 늘 타인이 우선이고 먼저였던 당신, 아버지

by Fensoner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듣고 하는 말 중 이런 말이 있다. 나에게는 최악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최고인 사람. 특히나 친구 관계가 아닌 가정 안에서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상처와 고통은 더욱 크게 작용한다. 피를 나눈 가족이기에 더 사랑하고, 배려하며, 아껴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 대상인 가족에게는 소홀하다 못해 최악의 대우를 하고 외부의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기 위하여 혹은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한 없이 좋은 사람이고 싶어 하는 그 모습으로 인해 나와 내 어머니, 동생이 받은 상처를 아프지만 잠시 마음과 생각에서 꺼내보려 한다.


내게는 어머니 아래로 두 남동생인 큰 외삼촌과 막내 외삼촌이 있다. 두 삼촌 모두 외할아버지의 성격을 닮아 무척이나 다혈질이고 막내 외삼촌은 나와 띠동갑이기에 삼촌보다는 나이가 조금 더 많은 형 같은 존재였다. 큰 외삼촌은 나와 4살 차이의 아들이 있었고 늦둥이 딸이 있었다. 막내 외삼촌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결혼 전까지 우리 가족과 같이 살았었고, 큰 외삼촌은 지방에서 근무했기에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지방에서 살았다. 그래서 명절에만 만날 수 있었는데 큰 외삼촌은 그렇게 다혈질이지만 가족에게 함부로 하는 경우도 없었고, 정말이지 가족에게는 끔찍할 만큼 잘하는 사람이었다. 어머니께 어머니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즐겨 듣곤 했는데 어머니의 어린 시절 큰 외삼촌은 동네에서 흔히 노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나쁜 짓을 하진 않았지만 늘 밖에서 놀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더 많았던 그런 성격이었는데 하루는 외할머니께서 통닭을 사 오라며 큰 외삼촌에게 심부름을 시켰다고 한다. 오후 5시에 나간 삼촌이 저녁 8시가 넘어도 들어오지 않자 찾아 나서려고 하는 사이 삼촌이 흙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 통닭을 사고 친구들을 우연히 만나 놀다가 친구들이 통닭을 나눠먹자며 계속 빼앗으려 하자 집에 있는 누나와 동생 먹여야 한다고 품에 안고 끝까지 지켜서 비록 품 안에서 눌리고 식어버렸지만 가족을 위해 통닭을 끝까지 지키고 가져왔었다고 한다. 명절에 삼촌이 우리 집에 올 때면 자동차 트렁크에 각종 비싼 소고기와 좋은 과일들, 그리고 집에 와서는 끊임없는 야식과 넉넉한 용돈 등 온 식구들이 큰삼촌으로 인해 행복하고 즐거운 명절을 보낼 수 있었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던 초등학교 5~6년 동안 나는 친가 할머니, 아버지 댁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매년 설과 추석은 너무나 즐거운 순간들이었다.


그런데 그 어린 시절 한편으로는 내 성이 외가의 성과는 다른 나와 내 동생만이 명절날 모인 집에서 외할머니와 우리만 성이 달랐기에 그 단순한 성 하나 만으로 나는 마음 한편에 가족보다는 외지인 같다는 마음이 들었었다. 집을 나가버린 아버지의 성을 받은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외가 가족들 그 누구도 내게 외로움을 느끼지 못할 만큼 따뜻하게 대해 주었고 내게 상처 하나 준 적 없었지만 아버지가 없다는 허전함과 빈자리는 채워질 수 없었다. 특히나 자기 아들에게 끔찍이 잘하고 알아서 먼저 옆에 다가가 주고 이야기하며 챙겨주는 큰 외삼촌을 볼 때마다 그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을 저 초등학교 시절에 나도 모르게 깊이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중학교에 올라가기 전 어머니께서 나와 동생에게 앉아보라 하시고는 진지하게 말씀을 꺼내셨다.

"아빠를 다시 받아줄까 하는데 너희들은 괜찮겠니?

정말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내 인생에서 가장 돌리고 싶은 순간이었다. 나와 동생은 주저하지 않고 아버지를 받아주라고 말했다. 내 인생 중 수많은 결정들 속에서 가장 최악의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셨고 다시 우리 가족이 지내게 되었다.


명절은 아니었던 어느 날, 이 날은 큰 외삼촌 가족들이 집에 놀러 와서 함께 있던 날이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예전과 변함없이 큰 외삼촌은 우리뿐만이 아니라 사촌 동생인 삼촌의 아이들까지 예뻐했고 특히나 티브이를 보면서도 아이들 옆에서 티브이를 다정하게 보는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질투 아니면 혹은 내 아버지는 내게 저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에 내 아버지도 저렇게 나를 사랑하고 다정하게 대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는지 나도 아버지한테 가서 아빠가 좋다는 말을 하고 옆에 다가갔는데 아버지는 귀찮고 덥다며 저리 떨어지라고 하셨다. 당시에는 내 아버지는 늘 다정하고 많은 애정 표현을 하는 그런 분이 아니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가볍게 넘겼는데 아직까지도 내 머릿속에 저 날의 기억이 살아있는 것을 보면 내 면에 큰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 해 여름 머릿속에 남아있는 또 다른 사건 하나가 터진다. 여름에 특별한 이유 없이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를 뵙기 위해 시골에 내려갔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함께 모시고 1시간 거리에 있는 고모댁으로 가서 고모와 고모부를 만났다. 아버지는 어린아이들을 무척이나 좋아하신다. 나와 내 동생만 빼고. 아주 그렇게 예뻐하실 수 없다. 고모와 고모부 사이에는 큰 딸과 아래로 두 아들이 있었는데 이 날도 고모댁에 가서 고모 아이들을 아주 흔히 어른들 하시는 말로 물고 빨고 그렇게 예뻐할 수 없었다. 나도 이제는 그렇게 어린 나이도 아니고 아버지의 그런 모습에 익숙해서 그런지 신경이 쓰이지도, 싫지도 않았다. 그렇게 점심에 함께 식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고모가 사는 아파트 앞에 모두 나와 함께 인사하고 우리는 차에 타서 출발을 하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나와 동생에게 쌍욕을 하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야이 개00들아. 너넨 씨 0 할아버지한테 인사를 그 따위로 밖에 못하냐?"로 시작해서 차 안에서 난리가 났다. 나와 동생은 차에 타기 전에도 인사를 드렸고 타서도 문을 열고 인사를 드렸는데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그냥 가만히 있었다. 욕설과 난동은 멈추질 않았고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는 도로 위에서 갑자기 어머니가 차를 도로 한쪽으로 급하게 세우시며 어머니도 폭발을 하셨다.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운전면허가 없으시고 운전을 해 본 적이 없으셨다. 그래서 늘 운전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차를 세운 어머니는 이내 울며 아버지께 고함을 치고 따지기 시작하셨다.

"왜 내 새끼들한테 난리냐. 왜 니 새끼들인데도 그렇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거냐. 남의 새끼들은 아주 이뻐 죽으면서 니 새끼들 한 번이라고 그렇게 해줘 봤냐. 네가 사람이냐" 어머니 역시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가 느낀 그 모든 걸 보시고 쌓인 게 많으신 모습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곧바로 아버지를 차에서 내리게 하셨다. 이후로는 기억에 없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께서 그렇게 아버지를 차에서 내리게 한 뒤 운전을 하시며 많이 우시고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하셨던 게 마지막 기억이다.


나중에 언급되겠지만 어머니와 이혼을 하시고 다시 만난 분이 계신데 그분한테 외동딸이 있었다. 첫 출감 후 다시 사업을 하려 하셨고 조금 돈이 벌리게 되는 상황이 되었을 때 만난 분인데 당시에 그 딸의 유학 비용을 1년 넘게 대주었다고 한다. 그때 나는 대학을 합격하고 돈이 없어 학자금 대출을 신청하던 시절이었다.


우리 가족과 아버지께 좋지 않은 일을 당하신 분들을 제외한 아버지 주변의 다른 분들을 만나면 그렇게 아버지를 칭찬하고 좋아할 수 없다. 훌륭한 아버지를 두셨다며 아버지께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그리고 아버지 성품도 너무 훌륭하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분들을 많이 보았다. 그렇게 훌륭한 성품을 가지신 분이 늘 집에는 들어오지 않고, 아내와 자식들에게 생활비 줄 돈은 없어도 꼭 택시를 타고 다녀야 했으며 가족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못하지만 남에게는 한 없이 따뜻한 말을 넘치게 해주는 내 아버지는 10년 2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으셨다.


2017년 내게 처음으로 내 아이가 태어나고, 3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내 딸에게 나는 충분한 사랑을 주고 있는 아버지인가. 어리고 소중한 하나뿐인 내 딸에게 나는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은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아버지의 쓴 뿌리가 내 딸에게 보이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까지 3년은 스스로 많은 노력을 했다. 정말로 딸이 너무 사랑스럽고 좋아서 사랑한다 많이 말해주고, 안아주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애정 표현과 많은 시간을 보내주려 하지만 늘 한 편에서 홀로 생각할 때 두려운 것은 지금 이 마음과 행동이 딸아이가 조금 더 자라 청소년기가 되고 성인이 되더라도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나 역시도 차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가 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 말을 내가 너무나 잘 알고 또 믿기에 나 자신이 나도 모르는 사이 아버지 같은 모습이 닮아 갈까 너무도 두렵다. 그래서 더욱 정신을 차리고 살아가려 하지만 정말 정신을 차리고 살아가면 이겨낼 수 있는 것이라고 자신 있게 나 자신에게 이야기할 수 없다. 나 자신을 이겨내고 단점을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그래도 나와 같이 자녀들을 위해 보다 나은 아버지, 나은 어머니로서 인생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두 오늘 하루도 힘내시길, 그리고 우리는 패배자가 되지 않길 간절히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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