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를 소개합니다
[아버지 01] 아들이 바라본 아버지의 배경
나는 내 아버지가 정신병자라고 생각을 한다. 단순하게 미워하고 욕을 하고 싶어서 정신병자라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닌 정말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고 내면의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불쌍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불쌍하다고만 이야기 하기에 내 아버지는 너무나 큰 잘못들을 저질러 왔고 그 것들이 왜 나쁘고 잘 못 된 것인지 인지하는 것이 부족하고, 반성보다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지금까지도 그렇게 살아가고 계시다.
내 아버지는 언제부터인가 내 어머니와 내 동생, 그리고 내 옆에 계시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집을 나가셨고 확실한 건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 졸업까지 가출해서 우리와 따로 사셨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유아기와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착실한 가장 생활을 한 것은 아니셨으며 중학교 1학년 때 다시 집으로 돌아오셨고 고등학교 2학년 때 다시 집을 나가셨다. 이 전과 같이 어머니와 내 동생 그리고 나를 두고 가출 후 아무런 말도 연락도 없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셨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당시에 감옥에 가셨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교 진학 후 다시 연락이 닿아 만났고 잠시 1년 정도 연락 후 다시 잠적, 그리고 2년 정도 후에 다시 연락하게 되어 만났다. 그렇게 잠시 연락을 하고, 만나고 살다가 다시 감옥에 가셨다. 그리고는 출소 후 다시 만나게 되었고...
나는 2009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왔으며 현재는 미국에서 정착해 살고 있다. 2011년에 아버지가 미국으로 출장을 오신다는 연락을 이메일로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출장은 아니었지만 미국에 일이 있어 가야 하는데 일부러 나를 보러 내가 있는 곳에 들러 나를 보고 가신다고 하셨다. 타국 살이를 하는 사람이라면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해라는 것은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나와 아내는 미국에 친척, 가족 그 누구도 살지 않는다. 그렇기에 가족이 늘 그립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보고 싶다. 아버지께 방문 소식을 전해 듣고는 과거 아버지의 잘못과 원망보다는 외로움과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 반가움이 더 컸다. 나중에 이 일에 대하여 자세히 다시 적겠지만 내 집으로는 아버지를 모실 수 없어 근처 괜찮은 호텔로 아버지 숙소를 잡아 드리고 아버지가 도착하시는 날짜와 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향했다. 그간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증오, 미움은 오랜 타향살이에서 지친 마음에 잠시 묻혔는지 아버지를 만날 기대감이 있었다. 시간에 맞춰 아버지가 나오셨고 반갑게 안아드렸다. 아버지를 모시고 근처 한인타운에 있는 한국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아버지는 고도비만이라고 할 정도로 복부 비만이 심한 분이셨고 비만 문제로 심장에 문제가 있어 2번이나 심장 혈관 수술을 받으셨다. 키가 크거나 호감형의 좋은 외모상은 아니셨지만 늘 당당하셨고 여자한테는 늘 한 없어 자상하고 매너 있게 보이려 하셨다. 아버지가 여자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만 먹으면 이 여자는 내 여자로 만들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있으신 것 처럼 보였다. 아내가 있어도, 만나는 여자가 있어도 늘 다른 여자에게 추파를 던지는 모습은 아버지와 함께 자라며 익숙하게 보아온 장면들이었다. 이 날도 저녁을 먹으러 한인식당에 들어가서 앉았는데 서빙을 하시는 아주머니께 아주 매너 있게 대하시며 초면에 단순히 주문 받아주시는 아주머니께 성함을 물어보고, 여러 질문들과 대화를 건네시는 모습에 속으로 정말 변하시지 않는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필요한 간단한 물품과 아버지가 드실 술을 사서 호텔로 향했고 2박 3일 동안 머무시는 일정이라 첫날은 혼자 편히 주무실 수 있도록 호텔에 모셔다 드린 후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근처 유명 관광지를 보여드리고 저녁에 호텔로 돌아와 마지막 날이라서 호텔에서 함께 자고 다음 날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호텔로 돌아와 씻고 술을 드시며 지금까지 나에게 해주시지 않았던 돌아가신 친할아버지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내 기억 속에 친할아버지는 명절에 시골에 가면 놀아주시거나 특별히 예뻐해 주신 기억은 없고 그렇다고 엄한 분도 아니셨으며, 가수 클론이 데뷔했을 당시에 "쿵따리 샤바라"노래가 크게 유행을 했었는데 클론 앨범을 사려고 친할아버지 댁에서 시내에 있는 음반가게에 가기 위해 할아버지가 나를 오토바이에 태워 클론 테이프를 사주시고 돌아온 기억은 내게 마지막 할아버지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1년인가 뒤에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다. 호텔에서 아버지가 아들로서 경험한 할아버지에 대하여, 그리고 할아버지가 살아오신 삶에 대하여 듣는데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의 삶을 듣고 나서야 왜 아버지가 내가 그토록 증오하는 모습이 되신 건지 어느 정도 이해도 되었고, 받은 충격과 내 앞으로의 삶과 내 모습의 걱정에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었다. 아버지도 어렸을 시절 나와 같은 일들을 할아버지를 통해 경험하셨다. 늘 여자 문제가 끊이지 않았고 할머니와 아버지를 두고도 경제적인 활동을 일절 하지 않으셨으며, 결국 증조할아버지로부터 내려오던 논과 땅을 모두 도박으로 탕진하셨다. 도박으로 전 재산을 탕진하셨어도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술로 여자로 살아가셨으며 할머니는 증조할머니와 할머니 외아들인 아버지를 위해 혼자 나물을 캐서 장에 나가 파시고, 친한 한의사분께 도움을 받아 약초를 먼 곳까지 지고 나가 팔아오시고 모진 고생을 참고 할아버지와 다툼 없이 살아오셨다. 아버지 기억에 있는 한 사건을 말씀해 주시는데 할머니께서 약초 장사가 잘 되어 거래량이 많아지자 자동차로 옮겨주시곤 했던 좋은 분이 계셨다고 한다. 한의원에서 일하시는 분이셨는데 할머니 사정이 너무 불쌍해 보여서 도와주시는 분이 셨는데 할아버지께서는 이 사실을 아시고 할머니가 바람이 났다며 오해를 하셔서 할머니를 마구 구타하시고 죽이겠다고 미친 사람처럼 날 뛰셨다고 한다. 아버지가 저 당시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지금까지 할머니가 고생하시는 모습을 어렸을 때부터 봐왔고, 할머니가 너무 구타를 심하게 당하시고 억울하게 당하시는 모습을 보고는 집안 살림들을 부수고 할아버지께 대들었다고 한다. 당시 아버지는 레슬링을 하셨고 체구도 좋은 상태 셨기에 할아버지도 어느 정도 자란 아버지를 어떻게 하지 못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 기억에도 할아버지는 늘 너무나 엄하고, 대화도 잘 없었으며, 늘 여자와 돈 문제로 할머니를 힘들게 한 "사람 같지도 않은 사람"이라고 하셨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 당시 할머니께 안부 전화를 했는데 "펜슨아 아직도 할아버지 연락이 되질 않는다"라고 하셨었다. 그런데 그때는 할아버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었고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내게 할머니, 할아버지께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런 말도 해주신게 없었기에 할머니의 심정과 당시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 뒤 아버지가 집에 오셨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고 내일 시골로 장례 치르러 내려가야 하니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말씀드리고 오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지리산에 등산을 다녀오신다며 집을 떠나셨었고 그렇게 연락이 두절된 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시던 동네 근처 작은 냇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셨다. 익사하셨는데 왜 익사를 하신 건지 타살인지, 사고사인지 혹은 자살 인지도 밝혀진 게 없었고, 아버지께서 사건을 그냥 덮자고 하셔서 자세한 사건 경위나 관련 인물들의 행적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 채 한 사람의 사망 사고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내가 20살이 넘어 어머니께 당시의 일을 자세히 들어보니 그때 시골에 있는 다방의 여자와 바람이 났었고 그 여자와 꽃구경을 가기로 했었는데 그러고 나서는 연락이 안 되었고 그 후 변사체로 발견되셨다는 건데 경찰이 더 조사를 하려 했지만 아버지가 조사 중단을 요구했고 아버지는 경찰에게 본인이 아들이 아닌 아들의 친구라며 다른 이름을 진술했다고 한다. 그래서 장례에 관련된 모든 사항들은 모두 고모와 고모부의 이름으로 진행이 되었고 어머니께서 아버지께 왜 그랬냐고 물어보니 이유는 얘기하지 않았지만 당시에 경찰한테 당당할 수 없는 죄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께 밤늦게까지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하여 처음으로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듣게 되면서 아버지가 지금까지는 보여주시지도, 말씀하지도 않으셨던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알 수 있었다. 비뚤어진 아버지 아래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어머니의 피나는 고통과 고생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자랐으면서도 본인은 보다 나은 사람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 보다 못한 사람이 되어 버린 아버지가 불쌍하게 생각되면서 한 편으로는 왜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했나라는 원망이 몰려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이어진 나 스스로에 대한 성찰.
내가 성인이 되고 결혼 전 막내 삼촌이 내게 진지하게 한 이야기가 있다.
"펜슨아.. 이제 너도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지게 될 텐데 너도 알겠지만 삼촌도 외할아버지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그런데 내가 외할아버지 아들이라 나 역시도 내가 싫어하는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나도 모르게 나올 때가 있어. 너 역시 착하고 좋은 사람이란 걸 내가 알지만 너 역시도 너도 모르게 살면서 네가 싫어하는 네 아버지의 모습이 나올지도 몰라. 그러니 늘 조심하고 경계하며 살도록 해야 해. 너는 네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지만 상상만으로도 마음을 후벼 파는 듯한 고통과 구역질이 올라올 만큼 끔찍한 일이었다. 내게서 아버지의 모습이 나온다는 것. 여자 문제는 없었지만 사업실패로 가족을 고생으로 몰아넣고 하루도 술을 드시지 않은 적이 없는 삶을 살아오신 외할아버지 아래에서 고생하며 자란 막내 삼촌의 진심 어린 충고였다. 하지만 받은 환경과 피는 정말로 어쩔 수가 없는 것인지 나 역시도 스스로를 돌아보면 내가 증오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단지 나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다스리고 인내하며, 노력하는 것뿐...
한 평생 자식들에게 나아지거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돌아가신 친할아버지와, 그런 최악의 모습을 보고 자랐으며 그에 대하여 원망과 증오를 담고 살았으면서도 그 보다 더 한 모습으로 변함없이 살아오신 아버지. 그 피를 이어오는 나와 내 동생.
나 스스로에게 새벽 늦은 밤 물어본다.
"너는 얼마나 나은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너는 너의 아내와 네 하나뿐인 딸에게 네가 20대에 당당히 입버릇처럼 되고 싶은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했던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남편이자 아빠로 살아가고 있냐고"
8년이 되어가는 결혼 생활을 하며 20대에 말버릇처럼 했던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남편이자 아빠"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체험하며 셀 수 없이 많은 반성이 있었다. 비슷한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빠와 엄마들이 있다면 부디 오늘 하루도 더 나은 삶과 가족을 위해,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원망하며 미워하던 그들보다는 나은 삶이 되려 노력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 이 끝없는 악의 고리가 끊어지고 행복의 고리가 새로 이어지길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