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계 덕후다.
몇 안 되는 취미 중 시계는 꽤 오래됐다. 처음 시계의 매력에 꽂힌 게 대학교 3학년쯤이었으니 20년 가까이 된 것 같다.
왕성하게 활동한 건 아니지만 타임포럼, 와치홀릭(일명 와홀)에서 글도 제법 썼다.
물론 두 아이의 가장이 되기도 했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서 정신 차린(?) 덕분에 예전만큼 기추, 기변이 잦진 않다.
그래도 시계 유튜버들 채널은 꾸준히 봤는데, 그마저도 최근 1년간은 실리언즈님, 생활인의 시계(일명 생활님), 워치탐닉(최근 채널명을 바꾸신 것 같다) 정도만 간간이 봤던 것 같다.
사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대변해 주듯이 시계 콘텐츠 추천도 거의 사라졌다.
그러던 중 몇 주 전 실리언즈의 아래 영상을 봐 버렸다.
시계 생활에 빠지게 된 계기 중 하나인 IWC의 마크 시리즈. 내가 좋아하는 RAF 디자인, 게다가 전설적인 마크11 오마주 등등 (너무 깊게 들어가진 않으련다. 글 보다가 지루해서 다 나가실 듯)
무언가 홀린 듯이 구매 링크로 기어 들어갔고,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에 합리성을 부여하며 바로 구매 결정. 물론 아내님께 빠른 보고와 컨펌까지 일사천리 추진.
역시 저렴해서 쉽게 의사결정해 주셨다.
그런데 항상 하는 말이.. 왜 사는 시계가 다 똑같이 생겼냐는 질문.. 시덕들의 세계는 심오하다.
아무튼 가격을 떠나, 스트랩 중간중간 구매한 것 빼고는 거의 3년 만에 기추인 것 같다.
오랜만에 즐겨보는 설레는 배송 현황.
알리는 정말 시스템이 잘 되어있구나를 새삼 느낀다.
배송이 2주 이상 걸릴 것처럼 써있었는데, 웬걸 거의 일주일 만에 도착한 것 같다.
그렇게 도착한 밀리타도의 마크11 오마주 모델.
생각보다 퀄리티가 너무 좋아서 놀랐다.
중국이 정말 무섭구나 절감하게 된다.
뭐든지 기추 후에 자기 합리화하는 것 같지만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더 이상 시계 기추는 안 하기로 했는데 구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평소 즐겨보던 채널인 실리언즈님의 사상이 좋았다.
실리언즈 채널은 약 3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첫 콘텐츠가 Laco의 B-uhr (아니면 카키필드 빈티지)였고 이 분 예사롭지 않음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시계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이 좋고, 취향 코드가 잘 맞아서 최근 반년 정도를 제외하고 모든 영상을 다 봤을 정도이다.
그랬던 실리언즈님이 기획, 제작에 참여한 에디션이니 구매욕이 뿜뿜일 수밖에 없었다. 정작 직접 판매하시는 스트랩은 구매해 보진 못했다. 이젠 레더스트랩을 그리 선호하지 않아서 기회가 없었다.
둘째 이유로는,
전설의 마크 11을 재현한 것도 좋지만 사이즈 때문이다.
나는 평소 36mm 케이스 사이즈를 꼭 한번 들여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어서 라인업 중 비어있는 카테고리였다.
그런데 좋아하는 RAF, 마크 디자인에 36mm라니.
게다가 러그 폭 20mm라는 영상 속 설명에 바로 구매를 결정했다.
36mm 케이스에 20mm 러그가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해왔고 꼭 하나쯤 들이고 싶었던 나만의 기준을 제대로 파고들었다.
여담이지만 필자의 로망 시계 중 하나가 익스플로러 36mm이기도 하다.
너무 깊게 들어가는 것 같다. 어쨌든 필자에게 황금 사이즈에서 혹 했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구매 이유.
사실 이게 가장 큰 이유인데, 내 애장품이자 태어난 지 약 20년 된 IWC 플리거크로노와 나란히 놓고 보고 싶었다.
플리거 크로노가 39mm인데 36mm 얇은 녀석과 함께 있으니 상대적으로 거대해 보인다.
어쨌든 같은 RAF 디자인이 나란히 있으니 눈이 즐겁다.
비록 오리지널 마크 11이나 12, 혹은 15와의 투 샷은 아니지만, 충분히 즐겁다.
이번에 알리 시계를 처음 구매해 보니 시계 가격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필자는 브랜드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고 무엇보다 브랜드 가치를 우선시하지만, 어찌 보면 이미지로 점철된 브랜드 하나만 빼면 더 이상 중국과의 격차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저렴하다고 나만의 기준 없이 충동적으로 다수 구매하진 않겠지만, 분명 저가 수요 시장을 독식할 수밖에 없을 거란 게 체감된다.
안다. 10만 원도 안하는 시계 하나 구매하고 뭔 말이 이렇게 많은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뭐 이래서 시계 덕후, 소위 시덕 아닐까.
한동안 새 식구를 예뻐해 주련다.
기추 기록 및 소감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