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읽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어릴 때 책을 아주 많이 읽은 것도 아주 안 본 것도 아닌데, 분명한 건 고전은 그리 많이 읽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 나에겐 어릴 적부터 고전은 재미없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20~30대부터 읽은 책들이 주로 자기계발서나 경영책 또는 주로 직무와 관련된 디자인 경영, 디자인 책 등이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고명환 작가님의 '고전이 답했다' 시리즈와 박웅헌 선생님의 인문학 강의를 담은 '책은 도끼다'(필자의 최애 책)를 읽고 나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고전이 주는 다양한 해석과 인물의 감정 상태와 묘사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게 정말 많은 보물창고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진리다.
그래서 요즘은 고전 읽기에 푹 빠져있다. 평소 종류 별로 두 세 권을 동시에 읽곤 하는데, 최소 하나는 고전을 본다.
물론 몇몇은 속도가 잘 나지 않고 나에게 맞지 않는 책도 더러 있었다. 그러면 과감히 중단하고 다른 책을 집어 들고 있다.
몇 달 사이 대여섯 권을 읽은 것 같은데 오늘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이 아닌 한 인물에 대해서 언급해 보려 한다.
주인공은 라스콜리니코프지만 필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인물은,
극중 예심판사인 '포르피리 페트로비치'였다.
포르피리 예심판사는 라스콜리니코프가 범인인 것을 직감적으로 그리고 여러 심증을 통해 알게 됐고 팽팽한 긴장감이 연속되던 때 마침내 그와 마주한 채로 "당신이 죽였지요. 로지온 로마노비치! 바로 당신이 죽인 겁니다"라는 명장면을 만들어 냈다. (그나저나 러시아 이름들은 왜 이렇게 생소하고 어려울까. 러시아 고전에선 이름 외우기가 가장 어렵다)
사건 수사 초기부터 이미 범인이라 직감했지만 결정적인 물증은 부족했다. 그렇지만 포르피리는 라스콜리니코프가 비록 범죄를 저질렀지만 깊은 생각을 갖고 자신만의 사상과 철학을 가진 인물임을 알아봤다. 그리고 형량이 감경될 수 있는 점을 이용해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자수를 권했다. 이 부분은 전략적으로 매우 주효했고, 라스콜리니코프는 결국 자수를 하게 된다.
예심판사로서 (지금의 형사반장 역할이라 함) 예리하고 노련함도 있지만 무엇보다 한 젊은이가 죄를 뉘우치고 다시 사회에 발을 내딛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넓고 따뜻한 마음까지 갖췄달까.
나이 마흔이 넘어서 이런 인물이 되고 싶다는 강한 인상을 받은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역시나 이리저리 알아보니 나 혼자만 인상적이었던 게 아닌가 보다.
중앙일보의 석영중 교수님의 칼럼을 보니 우리에게 익숙한 형사 콜롬보의 모티브가 표르피리였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물론 범인을 밝혀내고 사건을 해결하는 콜롬보와 달리 죄와 벌의 표르피리는 라스콜리니코프에게 갱생의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눈앞에 보이는 성과와 결과에 집착해서 서두르는
것이 아닌, 표르피리처럼 현명하게 처신하고 결국 사회적으로나 한 청년 개인적으로나 가장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낸 현명함과 지략을 존경하게 된다.
언젠가 10년 후쯤? 죄와 벌을 다시 읽어보련다.
그리고 50대가 된 내 모습이 표르피리와 비교했을때 어느정도 도달했을지 돌아보며 즐겁게 읽을 것이다. 그때 읽으면 표르피리 말고도 오랜만에 보는 옛 친구처럼 소냐, 두나도 정말 반가울 것 같다.
혹시 필자처럼 죄와 벌에서 표로 피리 인물이 인상적이었던 분들이라면 석영중 교수님의 글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참고로 본 글에 유일하게 사용한 이미지 한 장도 석영중 교수님 칼럼의 사진을 활용했다는 점을 밝혀둔다.
그리고 하나 더,
개인적으로 <죄와 벌>은 고전을 읽는다 건 어렵다는 선입견을 깨줄 만큼 정말 술술 재미있게 읽혔다. 마치 연극 무대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인물들의 감정 상태와 묘사가 정말 풍성한 음식을 맛있게 먹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폭이 워낙 넓어서 무언가 단일 식당이라기보단 뷔페 같은 느낌이었달까. (비유가 갑자기 먹을거리로 가는 걸 보니 점심시간이 다가오나 보다)
‘25.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