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경기를 펼쳐 준 선수들이 고맙고 대견합니다.
딸아이가 소속되어 있는 수원 이글스.
2.21 금요일 동계체전 결승전이었다.
여담이지만 필자는 목욜 오후 4시 퇴근하고 KTX 강릉행으로 저녁에 도착한 덕분에, 다음 날인 금요일 오전 9시 시작한 결승전을 라이브로 직관 아니 응원할 수 있었다.
경기도 대표로 참가한 수원 이글스의 결승전 대결 상대는 서울 대표 래빗츠.
(참고로 딸아이는 4학년이라서 6학년 위주의 경기, 특히 결승전처럼 너무나 중요한 경기에는 출전하기 어렵다. 그래도 우승 염원은 달라질 게 없다)
경기가 시작됐다.
팽팽한 긴장감이 얼마나 흘렀을까.
선제골은 서울 대표 래빗츠에서 터졌다.
0:1 (편의상 우리 편을 왼쪽에 두겠다)
선제골과 함께 기선을 빼앗긴 건 아쉽지만 언제든지 동점을 만들면 되니까라고 생각하고 역시나 팽팽한 경기는 그렇게 1피리어드를 마쳤다.
그리고 시작된 2피리어드 (이하부턴 피리어드를 P로 기재하겠다)
양 팀 다 정말 정말 치열한 승부를 펼쳐줬다.
하지만 이내 득점이 또 나왔는데,
아쉽게도 서울 대표 래빗츠의 골.
경기는 0:2
아.. 두골차..
워낙 강팀인 서울 대표, 게다가 결승에서 두골차는 뼈아프다.
두골 차이를 언제 따라 잡지 하는 걱정과 우려가 무색하게 또 서울 대표에 골을 내줬다.
0:3
2P가 거의 끝나가는데 세골 차는 너무나 쓰리다.
이런 팽팽한 경기에서 세 골 차를 뒤집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질 때 지더라도 한 골이라도 하는 아쉬움이 들 무렵, 어느새 2P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2P가 끝나기 몇십 초 전,
드디어 경기 대표 수원 이글스의 첫 골이 터졌다.
골대 뒤에서 센스 있는 백 패스에 이어 골리 빈틈으로 넣은 기가 막힌 콤비 플레이의 멋진 골이었다.
1:3으로 2P 종료.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한 골이라도 넣었다는 작은 위안과 함께 실낱같는 희망이 생겼다.
드디어 마지막 3P 시작.
경기도 대표 수원 이글스의 기세가 올랐다. 그리고 그 분위기를 잘 이어가며 또다시 한 골을 만들어냈다.
점수는 2:3
자칫 허무하게 끝날 뻔했던 경기를 결승전 다운 멋진 승부로 만들고 있든, 투지 넘치는 우리 수원 이글스 아이들 아니 선수들이 멋지고 자랑스럽다.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제발 동점까지만 만들어주면 좋겠다 하는 끝없는 욕심이 생겨난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하다. 0:3으로 뒤질 때만 해도 포기해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들었고, 한 골만이라도 넣어주면 좋겠다 싶었는데 어느새인가 동점까지 바라고 있다.
사실 여담으로 그냥 개인적인 느낌이었는데, 1P에 0:3으로 뒤질 때에도 이렇게 허무하게 패배하지
않을 거란 묘한 확신이 있었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확신이었다. 아니 어쩌면 바람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내 작은 믿음이 조금이나마 이 경기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었다. 여느 스포츠든
팬들이 응원하는 마음은 다 같겠지.
2:3 상황, 아직 3P가 9분이나 남았을 때 드디어 기적 같은 스토리 완성에 한 걸음 다가갔다.
이글스 선수가 장거리 슛을 날렸고, 골리를 맞고 나온 퍽을 동료가 리바운드하며 바로 네트를 가른 것.
순간 장내 우리 쪽 응원석은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드디어 3:3 동점!!!
길고 길게 아니 높디높게 느껴졌던 3점 차이.
0:3 상황을 3:3까지 만들어내다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벅차오른다.
게다가 아직 경기 마무리까진 9분이나 남았다.
시간은 충분하다. 4:3 역전의 진정한 드라마, 아니 영화 한 편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경기도 대표 수원 이글스 선수들, 코칭스태프, 감독님, 경기도 관계자분들, 열렬히 응원 중인 학부모님들 머릿속은 모두 똑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후 남은 시간은 정말 치열했다.
서울 대표 래빗츠도 역시 엄청난 강팀이었다. 동요될 법도 하지만 전혀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었고 오히려 전열을 가다듬고 더욱 파상공세를 퍼부었다.
남은 3P 동안 (우리 편 시각으로) 아찔한 상황이 여러 번 펼쳐졌다. 우리 팀 골리의 선방이었기에 망정이지 한두 골은 족히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상대편의 멋진 플레이가 펼쳐졌다.
동점까지 만들어 낸 후 역전골까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3P는 그렇게 팽팽한 균형을 이룬 채 3:3
상황으로 마무리됐다.
이제는 연장전.
대회마다 룰이 조금씩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동계체전 연장전 룰은 골든골, 서든데스다.
한 골을 넣는 팀이 바로 승리.
양 팀은 각자 머릿속에 상상하는 시나리오가 완전히 대비됐을 것이다.
그렇게 각자의 상상대로의 결말을 기대한 채 연장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연장이 시작된 지 채 20여 초가 흘렀을까.
조금은 경직된 분위기에서 상대편인 서울 대표의 슛이 날라왔고,
그대로 네트가 출렁였다.
순간 우리 쪽은 모두 얼음이 된 채 정적.
상대측은 환호와 함께 승리의 순간을 만끽한다.
스포츠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자
가장 잔인한 순간.
그렇게 승자와 패자가 갈렸다. 여느 때처럼.
부모들도 망연자실했지만
열심히 달려온 주인공들인 선수들은 오죽했을까.
당시 중계 화면,
출처: 대한체육회TV
아래는 관중석에서 필자가 찍은 사진.
몇몇 선수들은 빙판 위에 엎드려 흐느낀 채 일어나질 못했다.
부모 마음도 이런데 당사자들의 특히 초등부 마지막 동계체전을 치른 6학년들의 심정은 감히 헤아릴 수나 있을까.
그렇게 허망하게 우리의 크디컸던 대역전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선수들은 라커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온통 울음바다였다.
이제 고작(?) 10~12살 인생을 살아온 아이들,
하지만 누구보다도 열심히 달려왔던 아이들이 받아 들리기엔 너무나 쓰디쓴 경험이었을 것이다.
휴가를 내고 직관하며 응원하기 위해 현장에 온 내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상실감이라는 단어만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때 뜬금없게도 영화 속 한 장면, 대사가 생각났다.
벌써 10년 가까이 된 명작, 어벤저스 엔드게임에서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고 슬퍼하는 남은 이들을 위해 해 준 대사.
You Gotta Move On.
영화를 봤을 때는 깊게 생각해 보지 않은 대사였는데 왜 이제야 생각났을까.
구글링을 조금 해보니 서구권에선 워낙 공감을 많이 한 명대사인지 GIF 움짤, 쇼츠 등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물론 크리스 에반스의 멋진 목소리와 얼굴도 한몫했겠지만)
눈앞에 거의 다 왔고, 손에 잡힐 듯했던 우승은 신기루처럼 날아갔다.
시간을 돌릴 수도 없다.
그렇지만 슬퍼만 하고 있을 순 없다. 과거에 연연한 들 달라지는 것은 없다.
다시 일어서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며 도전해가는 것만이 길이다.
그렇게 Gotta move on이 더욱 진하게 가슴속이 다가온다.
사실 준우승도 대단하다.
특히 멋진 경기를 펼쳐 준 이글스 선수들 아니 아직 어리디 어린아이들이 대견하고 한없이 멋지고 사랑스럽다.
이 소중한 경험을 발판 삼아 Move on하면 된다.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후회 없는 경기면 충분하다.
그렇게 강원도를 뒤로 한 채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여운이 채 가시기 전 글로나마 남겨 본다.
2025년 2월 21일의 추억이 대회에 참가했던 모든 꿈나무들, 부모님들 저마다의 한뼘씩 성장을 이룬 시간이었길 바라본다.
-2025. 2. 23 저녁 수원 아이스하우스에서 아이들의 훈련을 지켜보며
그 날의 결승전 중계 방송을 아래 링크로 남겨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