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너를 믿었던 만큼...
종이 접은 것을 주머니에 넣다가 방심한 사이에 슥 베이고 말았다.
아프다. 아니 안 아픈가?
아프다기보다는 신경이 쓰인다.
손을 씻을 때도 따끔, 손 소독할 때는 뜨끔, 이래저래 생활 중에 스치면 '읏' 하고 상처의 부위를 되새기게 된다.
차라리 칼에 찔리거나 베었으면 약도 바르고 밴드도 붙이고 할 텐데
종이에 베인 건 (사진에서 보다시피) '들여다봐야'보이는 수준이라 약 바르고 밴드 붙이는 게 과하게 느껴진다.
작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사내 고충처리를 하고 그 가해자에게 징계처분이 내려지는 일을 겪었다. (징계를 받지 않고 빤스런했지만…)
문득문득 당시에 당했던 괴롭힘의 일들이 떠오르지만, 이제는 희미하다.
'아니! 그런 시련과 어려움을 겪어왔다니, 나 정말 어른이 된 듯?' 하며 풋 웃기도 한다.
그런데 아직도 잘 잊지 못하고 종종 생각나는 건
내 편에 서주었던 동료들이 '무심하게'한 말들이다.
'이번에 또 계약 연장하면 정규직으로 채용해야만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어.'
'뭘 잘하는지 먼저 이야기해줬으면 우리가 더 많은 걸 같이 했을 텐데.'
'그 회사가 학력을 봐.'
'힘들면 티를 내지 그랬어.'
블라블라 블라...
칼은 조심해서 다룬다. 저 도구가 나를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니까.
종이는 믿고 있었다. 네가 나를 다치게 할리가 없다고.
종이에 몇 번이나 베어봤으면서도, 또 잊어버리고 이번에도 종이를 믿었던 것이다.
가해자에게는 나름대로 적정한 거리를 두었고, 이야기를 나눌 때는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 그 사람의 대화법은 늘 나를 다치게 했으니까.
그 외는 내 편이라 믿고 싶었고, 믿었다. 타인들의 말에 그렇게 많이 다쳐놓고…
나는 또 잊어버렸고 그들이 남긴 말들은 종이에 벤 것처럼 따끔따끔 신경 쓰이는 기억이 되었다.
생각보다 종이에 깊이 벤 것 같다.
밴드를 붙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