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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약사언니 Sep 27. 2020

남 탓, 상황 탓, 배경 탓으로 얻을 수 있는 것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나고 자라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경쟁을 경험을 하는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는 순간부터 경시대회, 학교 등수, 회장/부회장 선출, 각 종 상장 등을 통해 순위가 정해지고, 특출 난 자와 평범한 자가 나누어지는 경험을 해 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땅덩어리가 작은 나라의 특성상 사람의 지식이 가장 큰 자원의 동력이 되어 성장해 온 나라가 대한민국이기에 더 그러하다. 타인과 내가 구별화되어 줄 세워지는 것이 익숙해서인지 대한민국 사람들에게서 나와 남을 비교해보는 성향이 도드라지게 느껴지곤 한다.


 학창 시절의 나 또한 친구네 집 불이 꺼질 때까지 공부하며 잠에 들지 못했을 정도였으니, 대한민국의 비교문화는 사람들 사이에서 습관처럼 자리매김되지 않았나 싶다.




 내가 비교문화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던 것은 유학생활을 하면서 등수가 매겨진 성적표를 받지 않던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미국의 문화에 동화되면서 인생에서 미래 방향을 설정할 때, 성적 말고도 고려해야 할 다른 삶의 가치들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성적이나 대학의 네임벨류에 연연하기보다는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직업이나 테크닉을 배울 수 있는 학과를 선택하는 문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아이비리그에 갈 성적이 되어도 굳이 본가와 멀리 떨어져 있는 좋은 학교를 고집하지도 않는 문화. 한국 문화에 익숙했던 나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미래 방향을 결정하는 미국인들의 문화가 처음에는 신기했었다.

 

 이렇듯 미국 문화에 스며들며 비교의식으로부터 어느 정도 해방되었던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대학에 입학하여 성적표를 받은 순간, 내 열등감은 다시금 폭발되었더랬다. 마음속에 아시아인들이 그래도 미국인들보다는 학업적으로 우월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던 탓에 더 우울해지기도 했다. 문화적으로 아시아인들이 미국인들보다는 더 어린 나이부터 치열하게 공부를 하니 나온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내 성적이 평균에 머문다는 사실에 슬펐고, 다음에는 그 평균이라는 점수조차 받기 쉽지 않다는 것에 좌절했다. 학업을 따라가기에 영어로 되어있는 의학용어들이 어려움을 탓하며 내 성장과정과 네이티브가 아닌 상황을 탓했다. 학교 과정 중에 배우던 일반약들도 미국인들에게는 어렸을 적부터 접해오던 익숙한 약인데 나에게는 외계어 같이 느껴졌기에 자라온 환경을 탓해 보기도 했다.


 타지에서 홀로 힘든 시간들을 헤쳐 나가야 하니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시간들이 늘어났고, 남 탓, 상황 탓, 배경 탓을 하면서 현실을 부정하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머잖아 여러 탓과 비교를 하며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더 깊은 수렁과 자괴감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현실을 직시하고, 나에게 힘든 시간을 부여하고 있는 시발점이 어디인지 찾아내야 했다. 일단 미국인들의 실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이해해야 했다. 미국인들은 성적에 맞춰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직업을 얻고자 해당 공부를 배울 수 있는 대학을 결정하기 때문에 그 열정을 따라잡기엔 내 열정이 부족한 듯 보였다. 특히 학업에 대한 미국인들의 의지는 뜨거웠다. 미국인들은 보통 부모의 도움 없이 자신의 이름으로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대학교육을 받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이수하는 것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했다. 자신의 인생을 본인이 책임지려는 목적으로 대학과정을 이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수업에 임하는 것이었다.


 미국인들의 공부에 대한 열정이 넘기 어려운 산처럼 느껴졌다. 나는 시험에 통과하려고 공부를 했지만, 미국인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공부를 했다. 공부를 대하는 사고방식부터가 달랐던 것이다. 미국인들은 대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 진짜 공부가 시작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인지하고 필요한 부분의 지식을 찾아가면서 공부하는 방식에 능통했다. 대학 입학 전까지에만 공부에 올인하는 아시아인들의 공부 방법과 사뭇 다른 방식이었던 것이다.    


 미국인들의 학문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열심을 보고 느끼며 더 이상 상황을 탓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클래스의 탑이 아니라는 우울감에서 젖어있던 순간들을 지나, 어느 순간부터는 저 친구들의 생각 회로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이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약대를 다니면서 MBA를 복수 전공하기로 선택하게 된다. 타인을 탓하고 내가 처한 상황을 부정하고 원망하는 데 사용했던 시간들을 생산적으로 활용해 보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실제로 MBA를 전공하게 되면서 자존감이 많이 회복되는 것을 경험했다. 동기들, 교수님들, 잡 인터뷰 등에서 타인이 선택하지 않는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던 것은 덤이었고, 나 자신도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똑같은 시간을 좀 더 알차게 살아낸 나 자신에게 대견함을 느꼈던 탓이었다.


 상대방을 탓해보고 여의치 않았던 상황도 탓해보면서 부정적인 생각들과 우울감에 휩싸이는 시간들을 보냈었다. 하지만, 문제는 결국 내 마음속에 있었고, 내가 세상살이를 풀이하는 방식에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대한민국 많은 사람들이 비교문화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광경들이 자주 목격되곤 한다. 사람들이 잘난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왠지 억울한 감정이 들 때, 가장 먼저 선택하는 방식이 그 잘난 사람을 흉보는 것이다. 괜한 억측들을 만들며 상대방의 노력과 열정에 희한한 프레임을 씌워버려 상대의 가치를 상쇄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자.


상대방의 추락이 나에게 이득을 가져다준 적이 있는가? 


특히 나와는 아무 접점이 없는 사람을 비난했을 때,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단 말인가? 내가 초라해 보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까지도 초라해 보이게 만들겠다는 마음가짐은 그 누구에게도 아무런 긍정작용을 일으키지 않는다.   

   



 우만란쟝의 ‘그럼에도 사는 게 쉽지 않을 때’에서는 현명한 사람의 일곱 번째 행동 규범으로 ‘사물에는 호기심을, 사람에게는 선의를 잃지 않는 것’을 명시하며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이 세상에 가장 쉬운 일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다른 사람의 돈을 쓰는 것,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이다. 반면 진정으로 선의에 부합하는 일을 하는 것은 상당히 고난도의 일이다.
 선의를 베풀면 삶은 더욱 가치 있게 변할 것이다. 반면에 남을 헐뜯는 일은 하면 할수록 스스로 형편없는 사람이 될 뿐이다. 그러니 호기심은 반드시 타인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가운데 옳은 방향으로 쓰여야 한다. 사물에는 열렬한 호기심을, 사람에게는 충만한 선의를 보여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 인품을 높이고 자신의 인생에 책임감 있는 태도를 갖게 된다.”      

 

 우리는 여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사회를 구성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말인즉슨, 앞으로도 타인과 나를 비교할 수밖에 없는 기회가 많이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상대방을 탓하며 내가 좀 더 우월함을 느끼는 포지셔닝을 취한다면 나는 과연 만족할 수 있을까?  나보다 우월한 사람은 항상 존재할 것이다. 이런 상황들 속에서 자기 자신을 위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마음속에 열등감의 불씨가 있다면, 그 에너지를 열정 에너지로 바꾸어보길 권한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부러워할 필요 없다. 타인의 성공이나 불행은 나의 행복과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 집중할 에너지를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시켜 내 가치를 더 높이는 데 사용해 보자.


 남의 성공을 부러워하는 하루가 아니라 나의 성장에 몰입하는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타인의 성공을 격려해주고 응원해 줄 수 있는 마음 밭을 일구어 나갈 때, 내면의 감정 회복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때, 타인의 인생에 관여받지 않은 채로 오롯이 나만이 내 행복과 성공에 대한 정의를 확립할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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