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했던 퇴사의 이유
회사 A에 재직할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회사 A에 1년 반 정도 재직 중이었고, 그동안 매니저가 여러 번 바뀌어 1년 반 만에 4번째 매니저로서 매니저 B를 만나게 되었다.
또 다른 매니저를 만난다는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매니저 B의 입사 첫 주에, 그와 1:1 미팅을 하게 되었다.
매니저와의 첫 미팅, 매니저 B가 나에게 전달한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역량 챌린지.
자신이 이직한 회사에서 나와 같은 직무를 하던 사람들과 나의 업무를 비교하였다.
예전 회사에서 나와 같은 직무를 담당하던 사람들은 거의 매니저급으로 일을 하는데,
내가 있는 회사 A의 사람들은 쉽게 일을 한다고 들었다면서 말이다.
둘째, 프로젝트 변경.
내가 담당하고 있는 프로젝트에서 나를 배제하고, 다른 업무를 배당해 줄 것이라 통보하였다.
셋째, 평판 관리.
이 업계에 오래 있으려면 평판 관리를 잘하라면서 위협하였다.
이 메시지들이 새로운 매니저 B가 입사 첫 주에 있었던 1:1 미팅에서 내게 했던 말 들이다.
새로운 매니저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이해도나 그간 어떻게 어떤 업무를 수행해 왔는지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 무조건 나의 존재와 업무를 부정부터 하는 매니저와 만나게 된 것이다.
처음 보는 나를 깎아내리고, 자신을 권력?을 과시함으로써 매니저 B가 얻으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저 말들을 좋게 해석해 보려고 부단히 도 노력했다.
매니저와 잘 지내보기 위해 지속적으로 업무 전 보고, 업무 후 보고, 업무 process 보고, 프로젝트 전 프로세스 및 다수의 슬라이드 리뷰, 중요 미팅을 위한 사장님 발표 슬라이드 대신 만들기 및 다양한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보좌하며 해야 하는 업무 그 이상의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몇 달 후, 매니저 B가 내가 계속 참석하던 중요한 회의들에 나를 부르지 않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으며, 매니저 B와 잘 보내보려고 노력했던 나 자신이 가여워졌다.
부서장에게 매니저 B와 있었던 역량 챌린지 및 프로젝트 변경을 말하면서 퇴사하겠다고 말하였다. 나와 나의 업무를 알기도 전에 가스 라이팅부터 일삼는 상사와 일 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부서장은 자신이 매니저 B가 나의 프로젝트를 변경하지 못하도록 말해보겠다고 하면서 500만 원의 retention bonus를 제안하며 회사에 남아달라고 요청했다.
나를 믿어주는 상사가 한 명이라도 있는 것에 너무나 감사함을 느꼈다. 부서장은 그동안 상사가 여러 번 바뀌면서 내가 감당해야 했던 노고를 이해하던 유일한 분이었다.
그 이후, 부서장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500만 원은 안 주셔도 괜찮으니 열심히 일 해 보겠다고 했다.
일이 있고 얼마 후, 동료직원들이 상사를 신뢰하는 정도를 익명으로 투표하는 서베이의 결과가 나온 날이었다. 투표의 결과 공개 이후에 매니저는 나와 동료에게 아래와 같이 이메일을 보냈다.
“투표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서베이는 본인이 매니저를 얼마나 신뢰하느냐에 대한 서베이입니다.
한국의 점수가 APAC/China/HK 통틀어 가장 낮게 나왔습니다.
그리고 타국가의 평균점이 4.6, 한국의 평균점이 3.4, 저희 팀의 평균점이 2.3입니다….
좋게 얘기하면 더 내려갈 곳이 없다는 뜻도 되지만 (지금이 바닥이니), 나쁘게 얘기하면 함께 일하기 힘들다는 얘기도 될 것 같습니다. “
그리고 그다음 날, 동료와 나를 소집하여 팀 간의 신뢰가 없으니 더 이상 같이 일하기 힘든 것이 아니냐며, 인사팀과 부서장에게 말씀드려서 다른 팀으로 옮기는 방안을 생각해 보라고 하였다.
매니저의 부서이동에 대한 요청을 받고 몇 달간 너무나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여태까지 쌓아온 커리어와 다른 팀으로 옮기는 것에 대한 옵션 등을 고민하며 말이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음에도 이 분야에서 꿈꾸어왔던 커리어에 대한 꿈 마저 사라진 상태까지 이르렀다.
매니저가 4명이나 바뀌었던 시간 동안 매니저들의 지도를 받기보다는 새로운 매니저들에게 업무를 알려드리면서 나 홀로 알아서 업무를 진행해야 했던 외로운 나날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을 물어볼 사람이 없어 밤낮으로 전 세계의 teleconference를 찾아다니며 공부하며 전전긍긍 채워가던 시간들. 내가 사랑하던 업무, 회사 밖에서 나를 격려해주던 외부 사람들과의 관계 등등.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채웠다.
마지막으로 내가 책임지고 시작했던 프로젝트는 끝마치고 싶어 그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면서 생각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는 결국 내가 사랑하던 업무, 나를 격려하고 응원해주던 외부 사람들과의 관계를 내려놓고 부서를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나의 열심을 알아주지 않는 상사와 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렵게 부서 이동을 결정하고 매니저 B와 부서장에게 부서를 이동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랬더니 매니저 B가 발뺌하며 자신은 나에게 부서를 이동하라고 얘기한 적이 없다면서 나를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이상한 사람으로 몰기 시작했다. 내 사적인 영역을 지적질하며 나와 친하게 지내는 회사 동료들이 이상한 사람인양 인격모독을 하며, 회사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들을 퍼뜨렸다.
심지어 앞으로 미팅을 할 때에는 인사팀 사람을 불러 같이 미팅을 해야겠다며 자신의 지배력을 행사하려 했다. 나의 심리와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하며, 자신이 나에게 갑질을 한 모든 코멘트들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며 정신이상자로 몰고 갔다.
부서장은 자신의 상사에게 나의 부서이동을 설명하기 힘들다면서 나의 부서이동요청을 거절하였다. 내가 현재 직급보다 낮은 직급으로의 부서이동을 요청했기 때문인 걸까.
잘 드는 칼이 빨리 닳는다고 하던가? 중요한 프로젝트 전에는 그렇게 나를 붙잡던 회사가 거사를 치르고 나니 나 몰라라 하는 격이었다.
아무리 좋아하고 애정 했던 업무를 담당하는 상황이었지만, 지속적으로 나를 업무에서 배제하며 허언증 환자 취급하는 매니저와 일하는 것은 내가 나에게 못할 짓이라는 결론을 냈다.
아래와 같이 2020년,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조사한 퇴사의 이유에 따르면 퇴사 사유는 사람과 조직에 대한 이유가 가장 컸다.
이 설문의 결과를 볼 때, 대부분의 퇴사를 경험한 직장인 반 이상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매니저는 갑의 위치이고, 퇴사하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매니저가 요청하면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위치에 있던 사람 들일 것이다. 왜 매니저 B는 갑질이라는 우월함을 어필하려는 도구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고 하는 것 일까?
직장 생활을 통해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이기에 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일들을 겪는 것일까? 나는 회사에 너무나 진심이었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부조리를 경험하였다. 이 같은 경험을 통하여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일 잘하는 사람보다 정치 잘하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 조직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앞으로 대한민국에서의 사회생활 중 ‘차마 밝힐 수 없었던 퇴사 사유’로 인해 퇴사를 고민하는 시기를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시기가 온다면, 나는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퇴사 후, 나의 연봉은 60~70% 상승하였고, 더 좋은 회사에, 더 좋은 직급으로 이직하였다.
꼭 객관적인 조건이 나아졌다는 것에서 위로를 얻는 것이 아니다.
다시 한번 위기를 통해 또 다른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값진 시간들이었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듯이, 사회생활을 통해 내가 더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면 이 또한 좋은 경험이다.
‘차마 밝힐 수 없었던 퇴사 사유’로 인해 퇴사해도 괜찮다.
나 자신을 알아주는 것은 나 자신으로 충분하다.
자신을 다독이며 퇴사를 성장의 기회로 삼는다면,
또 다른 좋은 기회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