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저 될 리 없지
미국 유학을 가기 전에 나의 모습은 전형적인 범생이였다. 초등학생 때는 학급 뒤편 포도나무에 책을 한번씩 읽을 때마다 포도열매를 붙일 수 있었는데, 나의 낙이 포도나무에 포도나무 열매 스티커를 붙이는 것일 정도로 조용하게 살았다.
중고등학생 시절 나의 모습은 머리는 항상 똑 단발이었고, 교복은 허수아비같이 딱 맞지 않은 헐렁헐렁한 교복을 추구했다. 멋이란 걸 몰랐고, 중학교/고등학교 입학식 때 성장기를 거쳐 몸이 불어날 것을 대비하여 나의 신체 사이즈보다 큰 교복을 맞춘 탓이었다. 선생님도 학우들도 나를 조용한 친구로 기억하던 시절이었다.
이랬던 내가 영어와 친해지고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같은 반 친구들끼리 같은 학원을 다닌다는 이유로, 등수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같은 동네에 산다는 이유로, 짝이라는 이유로 친구들과 친해질 기회들이 많이 있었고, 공부를 꽤 한다는 이유로 학급의 임원을 시켜주기도 했었기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미국의 문화는 달랐다. 하루 종일 한 학급에서 수업을 듣는 한국 학교와는 달리, 일단 매 교시마다 수업을 듣는 교실을 바꾸어야 했다. 학생들마다 듣고 있는 수업의 종류가 달랐고, 매 교시마다 교실을 바꾸었기 때문에 앉는 자리 또한 매일 바뀌었다. 또한, 미국이 넓은 만큼 각자 살고 있는 동네도 너무 다양했고, 차가 없으면 방과 후에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도 불가능했기 때문에, 같은 수업을 듣는다고, 같은 동네에 산다고 친구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구조도 아니었다. 때문에 친구를 만나서 영어로 유창한 대화를 나누겠다던 나의 희망도 희미해지는 것만 같았다.
뿐만 아니라, 영어에 대한 나의 자신감도 부족했다. 처음에 미국인들은 내가 말하는 영어 발음을 알아듣지 못했다. 너무나 부끄러웠던 기억 중에 하나가 내가 ‘r' 발음을 잘 못해서 일어났던 일이었다. Girl scout의 학외 활동을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girl scout이 모이는 장소가 어디에 있냐고 물어보던 중 미국인들이 나의 ’r' 발음을 알아듣지 못해 계속 내게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나는 결국 ‘쥐 아이 알 엘 (girl)’의 스펠링을 부르면서 내가 하려는 말의 의도를 전달했다. 이렇게 스펠링을 일일이 읆어주면서 나의 의사를 전달해야 했던 날들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고, 때로는 미국인들이 내가 말하는 스펠링조차도 못 알아들어서, 내가 원하는 단어를 종이에 써서 보여주어야지만 미국인들에게 나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던 나날들이 빈번하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될 때마다 나는 너무 부끄러워서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수업시간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하루 종일 듣기 평가를 하는 기분이었다. 하루 종일 신경을 곤두세우며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에 집중한 탓에 매일 머리가 아팠고, 피곤했다.
특히, 영어시간에 배웠던 주홍글씨(Scarlet letter) 나 셰익스 페어의 고전은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결국 영어 선생님께서는 스파크 노트 https://www.sparknotes.com/라는 웹사이트를 추천해 주셨고, 사이트를 통하여 각종 영문 서적들의 요약본을 찾아본 후에나 영문 고전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욕심은 나와 같은 학년인 미국 친구들과 같은 수준의 영어로 토론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지만, 내가 생각하고 있는 문장을 영어로 구사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영어 선생님께서는 종종 영문 고전들을 앉아있는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소리 내어 읽는 일을 시키셨는데 내 차례가 올 때까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모른다. 영어를 술술 세련되게 구사하는 미국인 친구들이 부러웠다. 띄엄띄엄 한 글자 한 글자 소심하게 발음하며 어렵게 한 문단을 읽어내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심지어 내가 소리 내어 영문 고전을 읽는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나의 영어 발음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 영어 문단이 무슨 뜻을 함축하고 있는지는 안중에도 없었고, 기억도 할 수 없었다. 같은 반 친구들이 나를 멍청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하면서 어린 마음에 걱정으로 밤잠을 이룰 수 없었던 날들도 있었다. 자유롭게 구사하지 못하는 언어 하나로 인해 당당할 수 없었던 날들이 반복되었다.
영어 컴플랙스를 극복하기 위해 나는 매일 수업시간이나 일상 대화를 하면서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바로바로 공책에 적고 난 후, 그날 몰랐던 단어는 그날 외우는 것으로 정하였다. 공책을 4 등분하여 왼쪽에는 영어단어 오른쪽에는 한글 뜻을 적으면 하루에 공책 한쪽 정도의 분량이 나왔는데, 그날 저녁에 영어단어들을 외우고, 그쪽을 잘라서 가지고 다니면서 그다음 날에는 복습을 하는 방식으로 영어단어들을 외워갔다.
이후에도 영어 컴플래스를 극복하기 위한 나의 도전은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고급 영어를 배우겠다는 의지로 CNN부터 시작하였다. 방과 후에 CNN 채널을 틀어놓고 뉴스를 시청하면서 들리던 들리지 않던 막가파로 일단 영어단어들을 캐치해 보려고 노력했다. 이내 이 방법이 이상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CNN에서 다루는 단어들은 일상 영어라기보다 전문적인 영어단어들이 많았기 때문에 내 수준의 영어에서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고, 뉴스의 소재도 글로벌의 정세를 무겁게 다룬다거나 토론을 하는 내용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나에게는 일상 영어부터 익숙해지는 수순이 필요했다.
처음에 디즈니 채널부터 시작해서 일상 영어들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유명한 성인 시트콤 ‘프렌즈 (Friends)’를 보며 성인들이 쓰는 미국 유머를 익혔고, 웬만한 영어를 숙지했다고 생각했을 때 다시 CNN을 보니 CNN에서 앵커들이 구사하는 정치적인 농담들을 들었을 때도 무슨 내용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 있게 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위에 시트콤들을 볼 때, 나는 영어자막을 캡션으로 넣어서 화면과 영어자막을 동시에 보면서 영어 공부를 하곤 했다. 프렌즈는 DVD를 구매해서 시청을 했었기 때문에, 중간에 귀에 들리지 않는 문장이나 단어가 있으면 일시정지를 하고 모르는 문장이나 단어를 확인하여 영어단어 공책에 적어놓은 후에 단어를 암기하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영어공부를 하였다. 내가 했던 영어공부 방법 중에 이렇게 화면에 영어자막을 넣어서 공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영어에 익숙해지기까지 많은 인내와 시간이 필요했다. 모르는 영어단어를 적어놓았던 공책은 항상 손에 쥐고 다녔고, 학교로 통학하던 스쿨버스 안에서는 오늘 친구들에게 해 보고 싶은 말들을 머릿속으로 구상하면서 여러 가지 영어문장을 영작해 보았다. 하루 종일 영어 생각만 하니 나중에는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꿈을 꿀 정도가 되었다.
사람들은 종종 내가 10대라는 어린 나이에 유학을 갔으니 영어 공부하기 쉬웠을 거라고 짐작하며 말하곤 한다. 그러나 아니었다. 10년간 미국 생활을 하고도 제대로 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시는 분들도 있다. 미국에 있다고 해서 누구 하나 나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겠다며 먼저 말을 걸어주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영어를 듣고만 있는 다고 영어실력이 향상되는 것도 아니었다. 미국에서 생활한 기간이 영어 실력을 결정짓는 요인이 아니다. 나도 미국인들이 내 영어 발음을 알아듣지 못하여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게 만드는 과정을 거쳤고, 내 말이 어눌하여 친구들에게 바보같이 보이는 경험들도 여러 번 했다. 사춘기 어린 나이였기에 이런 경험들이 더 부끄러웠고, 이 때문에 숨고 싶었던 적도, 말을 하지 않고 지냈던 적도 있었다.
yes, no만 해도 일상생활은 가능하기 때문에, 내게 영어를 배울 의지가 없었다면 나의 영어 실력도 제자리였을 것이다. 나에게 있었던 것은 영어를 습득해서 오늘 하루는 내가 듣고 있는 영어를 다 알아듣겠다고 하는 간절함이었다. 그리고 알아들은 만큼의 영어를 구사하고자 되지도 않는 말을 만들어보고, 쪽팔림을 무릅쓰고 계속 대화를 이어가고자 노력하였다. 노력 없이 가만히 있어서 그냥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 이 간절함들이 모여서, 원어민의 영어를 알아듣고 구사할 수 있는 수준에 다다르게 된 것이었다. 이 세상에는 참, 거저 되는건 없었고, 역시 노력만이 살 길을 열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