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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묘 May 30. 2017

부안에서

버스기사님

채석강에서. 한 스님이 바다를 향해 앉아 계셨다.


벚꽃이 만발하던 봄날, 나의 여행친구인 엄마와 함께 부안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내소사와 채석강. 고속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내소사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그 유명한 전나무길을 지나 내소사로 들어갔다. 흐드러진 벚꽃을 비롯해 여러 봄꽃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사찰의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국내 여행을 다니면서 사찰 역시 많이 다녀봤지만, 손에 꼽을 만큼 좋은 곳이었다.


채석강으로 가기 위해, 온 길을 되돌아 나와 내소사 입구에서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는 뽕짝 메들리가 신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승객은 우리 모녀 둘뿐. 어디에서 왔느냐고 기사님이 물었다.

"서울에서 왔어요."


서울에서 일부러 내소사까지 왔느냐고 기사님이 또 물었다.

"네. 내소사도 들르고, 또 채석강도 가고 그러려구요."


"아이고, 멀리서 내소사까지 오신 분들인데, 가만있어봐."


기사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뽕짝 메들리가 멈추었다. 그리고 '딸깍'하는 소리에 뒤이어 들려온 것은

"마 하 반 야 바라밀……"


반야심경.


우리 엄마 집사인데.


순간,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던 우리는 기사님의 상냥함과 서비스 정신에 자국을 내지 않기로 했다. 슬그머니 웃음도 나왔다.


마하반야바라밀, 그다음은 당최 뭐라고 하는지를 모르겠어서 귀도 쫑긋 세워 보았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오! 키워드를 알아듣다니, 스스로 대견해하다가 옆을 보았다. 방금 전까지 난처해하던 집사님은 고개 앞뒤로 바운스를 타며 주무시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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