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에서 만난 할머니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삼척항으로 향했다. 일단 물회 한 그릇을 먹고 난 뒤, 바다를 볼 셈이었다. 바다를 보고 나면, 장미축제가 한창이라는 오십천변의 공원으로 이동할 예정. 드문드문 다니는 시내버스를 기다리다간 현기증이 날 것 같아서 택시를 잡아 탔다. 어차피 요금은 기본요금에 천 원 정도 더해질 터.
초로의 기사님은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분이었다. 저 서쪽지방의 말씨를 쓰는 기사님이 멀리 동쪽지방까지 와서 택시를 몰기까지 그의 인생행로가 조금 궁금해지기도 했으나, 궁금함은 그냥 궁금함으로 남겨 두었다.
일요일인데도 삼척항 근처는 무척 한갓진 편이었다. 바다 옆 새천년도로로 달리는 차도 없고, 인적도 별로 없었다. 아마 장미축제가 열리는 곳에 많이들 모여 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레저 스포츠나 캠핑을 즐길 수 있어서 요즘 각광받고 있다는 장호항으로 많이들 간 것이리라.
인적이 없는 탓에 다니는 택시도 없고, 다음 목적지까지 콜택시를 불러야 하나 잠시 고민을 하다가, 시내버스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슬슬 걸어서 20분쯤 가니 버스 정류장이 나타났다. 할머니 한 분이 앉아서 버스를 기다리고 계셨다.
"할머니, 실례합니다. 버스가 몇 분에 있나요?"
할머니는 손목에 찬 번쩍번쩍 금시계를 가만히 들여다보셨다. 현재 시각 1시 20분.
"곧 와요."
나는 그 '곧'이 몇 분인지 알고 싶었다. 버스가 도착하기까지 남은 시간을 초단위로 알려주는 어플에 어느덧 익숙해진, 별 수 없는 서울사람이었기에. 버스 시각표가 없을까 하여 정류장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아, 곧 오나요? 몇 분에 한 대씩 다니는데요?"
"그런 거는 모르고, 버스가 시내에서 1시에 출발하면, 쭉 지나와서, 여기를 지나서, 저 안쪽에 호텔 있는 데까지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서 나와요. 그러니까 곧 와요."
"아…….
이제, 그 '곧'은 몸으로 느끼는 수밖에 없다. 할머니 옆에 가만히 앉아 삼척항에 옹기종기 모인 작은 배들을 바라보거나 산 위에 지어진 집들을 보며 감탄하면서 '곧'의 몇 분의 몇이 지났을까 자꾸만 셈을 해보았다. 한 번 감탄할 것을 두 번 세 번 감탄해도 '곧'은 아득했다. 할머니 옆에서 스마트폰을 꺼내어 만지는 것은 상당한 실례처럼 느껴져서 그러지 않기로 했다. 아까부터 할머니가 뭔가 말을 건네고 싶은 표정으로 나를 한 번씩 쳐다보셨기에.
이윽고 내 쪽에서 먼저 말을 붙여 보았다.
"시장 보러 가세요?"
"좀 볼일이 있어서."
"아, 그러시구나."
"아가씨는 어디에서 왔어요?"
"서울에서 왔어요."
"나도 본디는 서울사람인데 어쩌다 보니 삼척까지 와서. 이제는 옛날에 살던 곳도 못 찾아가요."
"아, 서울분이신데, 삼척으로 시집오신 거예요?"
아까부터 강원도 사투리를 쓰고 계셨기에 서울이 고향인 분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응, 그렇지. 삼척으로 시집왔지. 이제는 서울에 가도 아무도 없어요. 우리 친정 쪽 형제자매 전부 미국에서 살아. 내가 삼척으로 오겠다고 했을 때 가지 말라고 다들 그렇게 말렸는데. 그런데 우리 신랑이 그만 서른아홉에 돌아가셨어. 그때 내 나이는 서른셋."
할머니의 연세는 여든둘. 자녀분은 세 분. 50년 가까이 자녀 셋을 홀로 키우며 친정식구도 만나기 어려운 곳에서 버텨온 삶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진 뜻밖의 이야기.
"내가 사실 지난 5년간 기억이 없어요."
"네?"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서 5년 동안을 식물인간처럼 누워만 있었대."
"어디가 편찮으셨어요? 아니면 사고를 당하신 거예요?"
"아니야. 아프지도 않고 사고를 당한 것도 아닌데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된 거래요. 갑자기 딱 고만 쓰러져서 못 일어났다지. 그런데 6년째 되던 해에 눈을 떠서 이제 이렇게 조금씩 바깥으로도 다니게 된 거야. 처음에는 돈을 봐도 뭐가 뭔지를 몰랐는데 이제는 이렇게 동전도 셀 수 있게 됐어요."
할머니는 차비를 내기 위해 손에 가득 쥔 동전들을 펴 보이면서 아이처럼 웃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버스가 우리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곧'은 정말 곧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