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우리...
일반적으로 우리는 확률이라는 것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번개를 맞을 확률, 로또 일등에 당첨될 확률처럼 흔히 일어날 수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가능했다는, 비현실성을 숫자로 표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도로 생각한다. 그렇기에 지금, 여기, 그리고 우리가 그 기막힌 확률로 존재하고 있음을 생각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45억 년 전에 시작된 지구의 모험이 태양에서 바로 그만큼의 거리를 두고 시작되지 않았다면, 그때 지구에 물이 모이고, 바다가 생겨나는 과정들이 없었더라면, 활발한 화산 활동으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기온과 대기 조건은 불가능했을 것이고, 인간을 비롯해 많은 생명체들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않았다면’이라는 가정은 ‘그랬다’는 희박한 확률들이 쌓이고 쌓여 이곳까지 왔기에 던져질 수 있는 질문들인 셈이다.
이 일련의 가정들이 아슬아슬한 우연과 필연들로 수놓아진 지금의 아름다움을 부각하기보다는 현실감 없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가 꽤나 전문적이고 지속적으로 자연으로부터 분리되고자 하는 훈련들을 감행한 덕분일 것이다. 학창 시절 지구과학 수업 이후에 자취를 감추었던 이 이야기는 멋진 대자연을 담은 컴퓨터 배경화면 뒤로 영영 사라져 버린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의 마음에 지구는 대자연이다. 누군가가 집체 만한 카메라를 둘러메고 눈보라 또는 열대 우림을 탐험하지 않고서는 담아낼 수 없는 아마존과 사바나 만이 지구이기에, 우리가 매일 발을 맞대는 곳이 아닌, 티브이 화면에 갇혀버린 행성이 지구 인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눈을 떠 커피 한잔 마시고 지하철에 몸을 맡기는 일상은 저 대자연의 공식에 들어갈 자리가 없어 보인다. 해수욕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해변들은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거친 대양들과는 담을 쌓은 곳이라 여겨지고, 도심 속 가로수들은 열대 우림 속 지구의 허파를 담당하는 나무들과는 다르게 정적여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로 이 모든 것들이 지구라는 하나의 시스템 안에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면, 내가 저 이름 모를 바닷속 미생물과 복잡하지만 우아한 시스템 안에서 기가 막힌 균형을 잡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느끼게 된다면, 우리는 새로운 시공간의 확장성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대자연의 공식에서 빠져 있는 듯이 보이는 인간이야 말로 지금 이 지구의 운명을 결정하는 최대의 변수가 되어버린 현실 앞에서, 날이 갈수록 심각성을 더해가는 환경 문제가 귀가 아닌 마음으로 전달될지도 모른다.
그 여정에 조금은 편안한 안내자이자 동행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내 목소리 하나 더해지는 일이 그 누군가에게 그리고 지금, 여기,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면, 아무리 희박한 확률일 지라도, 이미 충분한 것이다. 그대와 내가 있기에 가능하고 또 아름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