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Wildestanimal via Getty Images)
'거실 텔레비전'이 딱히 없었던 때였다. 심야에 시작하는 외화에 빠지게 된 딸에게 고단한 부모님은 당신들의 머리 맡을 내어주셨다. 피곤함이 내려앉은 방안에 조용히 퍼져 나가던 엑스파일의 시그널 음악이란... 묘하게 빛이 바랜 기억의 한 장면이다. 어느 날인가, 정확히 어떤 에피소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스컬리와 그의 언니 멜리사가 나오는 장면에서, 예상치 못하게 고래 소리에 대한 대화가 등장했다. 그 시절 우리 집은 창문 하나 사이에 두고 바다와 마주 했었지만, 그때 까지만 해도 고래에 대해서는 떠올려 본 기억이 별로 없었다. 더군다나 고래가 내는 소리는 생각해 본 적 조차 없었는데, 그 장면은 무언가 나에게 신기한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마치 툭 던져진 인연의 실타래처럼, 무언가에 이끌리 듯 집어 들게 된 그 실 끝을 조금씩 더듬어 가며 알아가듯 말이다.
이제는 손쉽게 유튜브 검색 만으로 고래 소리만 몇 시간씩 녹음된 영상을 찾을 수 있다. 이유 모를 편안함과 조금의 긴장감을 동시에 전달하는 그 기이한 울림에 이끌리는 이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고래는 실제로 그 '노래' 소리를 통해 소통하고 새로운 노래를 배우고 만들어 간다. 지능이 높아 먹이 사냥에 있어 역할 분담을 할 뿐 아니라, 속임수를 쓰기도 한다. 바다에서 새끼를 낳으면 지친 엄마를 대신에 주변 친척 암컷이 새끼를 수면으로 밀어 올려 호흡을 도와준다고도 알려져 있지만 짝짓기나 새끼 낳는 장면은 카메라에 담긴 적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알면 알수록 깊이가 더해 가는 존재다.
하지만 내가 고래를 떠올릴 때 가장 특별하다고 느끼는 면모는 평생을 그 넓은 대양에 살지만 그들이 어류가 아닌, 폐호흡을 하는 포유류라는 점이다. '그거 초등학교 때 배우는 거 아니야?'로 박제되어버린 듯한 그 사실이..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당연한 게 아닌 게 되었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모순도, 짊어지고 가야 할 숙명도 아닐 테지만 마치 우리에게 던져진 삶의 고단함이, 때로는 긴장감에 이어지는 심호흡이 그들에게 투영되는 듯해 자꾸 마음이 쓰인다고 해야 할까.... 내 주변 세상이 확장되어 가던 시기쯤 들었던 생각이다 보니 나에게는 나이 먹음의 징표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얼마 전에는 고래의 죽음에 대해서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접하게 되었다. 기후 변화에 대한 글들을 자주 들여다보는 편인데 고래가 기후 변화 예방에 기여한다는 기사였다. 고래는 물속에 사는 덕분에 몸집이 육지 동물보다 커도 활동에 무리가 없는 장점이 있다. 생명체라면 대부분 탄소를 저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고래는 워낙 몸집도 큰 데다 죽으면 저 깊은 바다로 가라앉기 때문에 탄소가 공기 중으로 배출되지 않고 해저면에 저장되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이유였다. 물론 고래가 마치 기후 변화의 해결책처럼 소개된 기사는 과장의 의미가 있지만 핵심은, 이러한 역할도 하는 존재니 더욱이 보호해야 할 생명체로 부각하려는 의도로 이해됐다.
언젠가 야생에 사는 고래의 모습을 근거리에서 보고 싶은 소망이 있다. 그 순간에는 또 어떠한 감동으로 나의 인생이 물들지 벌써 기대가 된다. 그리고, 아직 놓지 않은 그 인연의 실타래를 더 단단히 해 가기 위해서라도 어떻게 그들을 보호할 수 있을지 더 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