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와 나

산소(Oxygen)의 원산지 표기

by 아마추어 진화기

(다이아톰, 이미지 출처:steemKR)

다이아톰의 외벽은 유리를 만드는 물질, 실리카를 재료로 하기 때문에 빛을 받았을 때 여러 스펙트럼으로 분산하는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 모양도 워낙 다양해서 바다의 보석이라 불리기도 한다.



기차가 터널 안으로 들어선다. 이내 어두워진 내부를 낡은 형광등이 밝히고, 익숙한 실루엣이 검은 창문에 투영된다. 겨우 십몇 초쯤 지났을 뿐인데 숨을 참고 있던 탓인지 미간에 살짝 주름이 진다. 이 기원을 알 수 없는 어릴 적 버릇 덕분에 '숨을 쉬듯 자연스럽다'라는 의미가 새삼스러워진다. 자연스러움의 이면에 존재하는 강렬한 부자연스러움이 엄습할 때쯤 저 멀리 빛이 들어선다.


이제는 빽빽한 숲 한가운데서 숨을 깊게 들이마실 때이다. 밤사이 얼어붙은 공기가 아침 햇살과 함께 녹아들어 온몸으로 스미는 기분이다. 그 몇 초 사이로 이렇게 뻐근하고 큰 숨을 들이쉬어야만 하는 불완전한 존재였음을 체감한다. 차가운 공기가 가슴 깊이 파고들 때, 자연스레 높아진 시선은 하늘거리는 푸른 나뭇잎에 머물고, 내가 들이마신 산소가 바로 저기에서 온 것은 아닌지 상상해 본다.


두 번째로 크게 숨을 들이마셨을 때는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느껴진다. 시선이 닿는 어느 곳이든 반으로 가른 수평선 위로 고요한 하늘과 넘실거리는 바다가 나뉜다. 바다에서 살 수 있는 생명체와 그럴 수 없는 생명체의 오묘한 접점들이 그곳에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처럼 대기에서 사는 생명체들은 바로 이 바다에서 만들어지는 산소에 많은 부분 의지하고 있다.


너무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또 동시에 너무 방대에서 우주에서도 볼 수 있는 존재들이 만들어 내는 산소. 단세포의 형태로 광합성을 하는 식물성 플랑크톤, 그중에서도 다이아톰(Diatom, 규조류)이 그들이다. 한 번에 거대한 양으로 증식하는 경우, 바다 표면에 녹색 물감을 풀어놓은 형태로 우주에서도 관측된다. 실제로 다이아톰은 지구에 존재하는 산소의 20-25% 정도를 생산한다. 아마존 열대 우림이 흔히 지구의 허파로 불리지만, 아마존에서 생산되는 산소의 대부분은 그곳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들에 의해 소비된다고 한다.


산소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햇빛과 이산화탄소를 원료로 하는 광합성 작용을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다이아톰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균형에 크게 기여함을 아는 건 어렵지 않다. 지금 인류가 한계점으로 몰고 있는 온실가스의 과부하 그 반대 편에서, 사투(?)를 버리는 생명체 중 하나인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균형점이 틀어져 버린 상황에서, 저온을 더 좋아하는 다이아톰의 서식지가 점점 더 북쪽으로 밀려 올라갈 확률이 증가하고 있다. 산소야 대기 중에 순환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겠지만, 먹이사슬 제일 아래에서 바다 생명체들의 먹거리 또한 책임지고 있는 다이아톰의 서식지 이동은, 상위 포식자인 인간에 까지 이르는 먹이 순환 구조 전체에 영향을 주는 일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불완전하지만 자연 안에서 완성되는 듯하다. 내가 숨 쉬는 산소가 산과 바다에서 오고, 내가 내쉬는 이산화탄소가 다시 그들에게 전달되는 그 흐름 안에서, 정말로 자연스러움이 무엇인지 머리로 가슴으로 이해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온전한 흐름은 책임을 통해서 지켜질 수 있다. 자연스러움의 이면에 존재하는 강렬한 부자연스러움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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