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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미 Nov 23. 2021

걷고 싶은 거리, 살고 싶은 삶

교차로나 골목처럼 선택지가 많은 길일수록, 그 길이 시간에 따라 달리 보이도록 햇빛이 들수록 걷고싶은 거리라고 한다. 구획이 넓고 골목이 적어 선택지가 별로 없는 곳은 그 반대로 지루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감각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왜인지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인데, 유현준 건축가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읽으면서 삶도 살고 싶은 삶이려면 같은 원리가 적용되지 않을까 싶었다. 선택지가 많으면 삶이 풍성하게 느껴질까? 물론 그럴 것 같기는 하지만, 우연성과 이벤트는 커녕, 나는 왜 삶에서 선택지가 많은 것이 싫을까 의문이 들었다. 가야할 곳이 있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도심의 미로 같은 느낌이다. 불안하고 어지러운 느낌. 삶에는 카카오지도도 없으니까.


하지만 며칠 더 떠올려보다보니, 어쩌면 작은 선택지들은 나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번에 인생 노잼시기가 찾아왔던 적이 있는데, 검색해서 해결법을 찾아보니 "편의점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봐라"는 조언이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냥 새로운 커피에 도전했을 뿐인데 묘하게 두근거리고 설레고 재미있기 시작했다. 그 뒤로 편의점에서는 소소하지만 크게 도전을 많이 해보고 있다.


인생이 지루할 때가 선택지가 너무 없거나 익숙한 선택지만 해버릇해서 그렇다고 본다면, 구획이 정사각형이고 큰 도시같은 삶인 것이다. 그런 곳에서 사람들은 머무르지 않고 빠르게 지나쳐간다. 나의 시간들도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나를 빠르게 지나쳐간다.


반대로 풍성한 선택지를 가지고 이것저것 고민해보고 시도해보는 삶은 골목골목이 많고 햇빛이 드는 도시같은 삶이다. 시간들은 구경도 하고 산보도 하고 천천히 흘러간다.


도시는 걷고싶은 거리에 내가 가면 그만이지만, 인생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라서 새로운 골목들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다보면 걷고 싶은 거리처럼 삶도 살고 싶은 삶이 될지도 모른다. 출근할 때는 선택지가 많으면 길게 느껴지니까 그냥 가던 길로 가고, 주말에 나왔을 때는 새로운 길로 산책하고 싶다. 신발끈을 다른 모양으로 묶어보아야 겠다. 오늘 저녁에는 새로운 요리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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