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 - 이슬아
AI 시대 진로를 묻는다면? 나는 꼭 이슬아 작가의 책을 전부 읽어보라고 권한다.
솔직히 내 진로도 아직 뚜렷하지 않다. 그런 내가 청소년들에게 진로 상담을 해주는 상황이 아이러니할 때도 많다. 특히 요즘 아이들은 미래 전망을 많이 묻는다. 인공지능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으니 당연한 질문이겠지만, 사실 나도 그 답을 확신할 수 없어 속으로는 난감할 때가 많다. 마치 내가 AI 시대의 미래를 속속들이 살펴보고, 미리 경험해 본 사람인 양 조언을 해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내 앞가림도 벅차다. 그런 점에서 상담가라는 직업도 AI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안정된 미래 직업'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렇게 둘러대는 것도 결국 인간의 궁색한 변명일 뿐이다.
“선생님, 제가 원래 성격도 그렇고…”
(아이들이 제일 자주 하는 말이다. 내향적, 외향적… 그런데 구체적으로는 말 안 한다. 내가 점쟁이인 줄 아는 듯하다. ‘보자 보자, 너 성격이 집순이지?’ ㅎㅎㅎ)
“프로그래머가 되려고 했거든요. 근데 유튜브 보니까 앞으로 프로그래머 안 뽑는다던데요.”
“그래?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뭘 도와줄까?”
“제가 생각해봤는데요, 사회복지 쪽으로 가면 좋을 것 같아요. 봉사하는 것도 좋아하고…”
“그런데 왜 처음엔 프로그래머가 되려고 했어?”
“컴퓨터가 좀 재밌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해서요. 사람 만나는 건 좀 안 좋아하고…”
“사회복지 쪽이면 어디서 일하고 싶어?”
“안정된 곳이요.”
“하하, 근데 사회복지 일은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데 괜찮겠어?”
“음… 아니요. 저는 혼자 있는 게 더 편한데…”
“OO야, 사회복지 단체나 기관에서 일하려면 사람 많이 만나야 하는데 괜찮을까?”
“음… 그러면 프로그래머가 더 나은데… 근데 프로그래머는 앞으로 필요 없다던데요…”
“그래, 그럼 우리 좀 더 같이 고민해보자. 사회복지 단체나 기관에도 프로그래머는 필요하지 않을까? 사회복지와 프로그래밍을 함께 생각해보는 건 어때?”
“오, 괜찮은 것 같은데요.”
실제 나눈 이야기다. 꾸며낸 대화가 아니다. 이렇게 청소년들은 혼자 생각만 대책없이 미래를 간다. 하지만 애써 변수를 살피고 기다리다 예상과 달라 낙담하기 보다 하루를 알차게 채워 다가온 내일을 기쁘게 맞이하는 쪽이 낫다고 생각한다. 절대 예상하는 미래는 기다리지 않는다. 예상대로 된다면 미래가 아니지 않을까.
특히 이 친구가 말하는 인공지능시대는 누구도 예측이 불가다. 이렇때는 지금, 하루, 최선, 매일, 자주 가 더 어울리는 진로의 자세가 된다. 요런 자세의 롤모델이 '이슬아' 작가다.
이슬아 작가는 특히 자유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고 본다. 스스로 당찬 프로라고 이야기하는 이슬아 작가는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에서 특히 프리랜서 혹은 N 잡러의 롤모델적 태도를 잘 보여준다. 거기다 깔깔 거리며 읽게 되는 장점이 있어 쫙쫙 어려움 없이 고단한 프리랜서적 태도가 흡수된다. 프리랜서의 세계에서 프로라고 자청하는 그녀가 매우 고단할 껄 뻔히 아는데도 이 책을 읽으면 나도 정말 N잡러가 되어봐 이렇게 결심하게 된다. 그만큼 문장이 기깔나다.
인공지능시대는 예측과 달리 흘러갈 것이 뻔하다면 오히려 그냥 온몸으로 좋아하고 말자. 그리고 그 끝에 열린 길이 나오면 가고 아니면 말자. 그리고 새 길을 또 열자. 상담 온 친구의 질문처럼 안정된 직업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 100세를 살고 엄청난 정보가 쏟아지고 기술은 인간 마음과 상관없이 내달리고 있다. 오늘 하루를 모조리 태워 미래 싹을 잘라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작은 싹을 틔우려면 오래 보고 물을 주고 눈길을 바쳐야 한다. 작은 싹도 그러한데 잠재성을 틔우는 일은 더 더딜 것이다. 더딜수록 불안은 깊다. 시간이 필요할수록 가치롭다. 그래서 일을 한다는 것은 그렇게도 어렵다.
P. 78
사랑의 백미는 편애다.
P. 109
역량은 이런 식으로 쑥쑥 자라기도 한다. 기세 있게 돈을 협상하면서, 내 호언장담을 책임지면서, 돈 주는 이들의 기대를 어떻게든 충족시키려 용쓰면서, 어느새 꽤나 능숙해지고 탁월해져버린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마는 것이다. 그게 바로... 프로의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