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역량 [공부의 미래 - 구본권]
"선생님 학교 그만둘까요? 힘들어요. 이해가 안 돼요. 다 같이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건지. 다 같이 안 하면 되잖아요. 저는 정말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만 들어요."
"그렇지. 알지. 알지. 너무 힘들 것 같아. 그만두는 것도 방법일 수 있지."
아이가 한숨을 푹 쉰다. 바라보는 눈이 원망과 속상함, 열정이 뒤엉켜 뿌옇게 흐리다.
" 쉽게 말씀하시네요. 지금 그만두는 게 쉬워요?"
" 그지? 네가 생각해도 쉽지 않지? 누가 봐도 학교 다니고 공부하는 건 힘들어. 쉽지 않아. 네가 이상하거나 약해서가 아니라 지금 그 마음이 너무 당연해. 그 말 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겠어? 힘들면 누구나 그만두고 싶지. 수 있지. 너 절대 약하지 않아. 이상하지 않아."
한참 시간이 흐른다. 아이는 고개를 떨구고 입을 달싹이지만 말을 닫는다. 공기가 무겁게 흐른다. 기다려주는 것도 한숨 소리를 가만히 들어주는 것도 나쁜 세상을 만든 어른 중 한 명으로 감당해야 하는 시간이다.
용기를 내서 다시 묻는다.
"정말 그만두고 싶어? "
" 아니요. 학교 다니고 싶어요. "
눈물이 후드득 떨어져 뭉쳐진 손안 휴지에 떨어진다. 아이는 건넨 휴지 한 장을 제 마음인 양 눈물을 닦아 뭉치고 다진다. 아이 손에 들린 휴지만 봐도 그렇게 애잔하다. 그리고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는 건 그만두고 싶지 않을 때 하는 말이다. 정말 자퇴하는 아이들은 대체로 말없이 그만둔다.
경쟁 구도에서 아이들은 고민이 많다.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은 자기를 지키고 싶은 당연한 마음이다. 여기에 대고 어른의 선입견으로 아이를 야단치거나 앞으로 뭐가 될래를 운운하면 아이는 깊은 상처를 입는다. (물론, 그만둘 결심이 타당한 아이는 그만두어도 된다.) 마음은 오락가락 휘청 휘청하면서 제 길을 만들고 그러다가 진짜 있을 곳에 깊은 구덩이를 판다. 금도 캐려면 일단 파기는 파야 할 것 아니겠는가.
더불어 미래를 두려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어른으로 고민할 부분이 있다.
"인간은 경쟁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강해져야 하고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이 명제가 미래에도 정말 합리적이며 당연한 걸까?
[공부의 미래]에서 구본권 작가는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로봇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인공지능도 빠른 속도로 발전시키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일자리를 두고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로봇과 인공지능의 직업 세계 침공에 대비해 인간은 같이 협업하여 어려운 난제를 해결하고 최첨단의 기술을 인류를 위해 쓰고 인공지능의 한계를 정해두고 발전시키는 도덕적 판단 능력이 더 필요하다고 예측한다.
강하게 살아남는 것은 산업시대 역량 아닐까. 혼자 일하며 누구보다 강해져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욕망일 수도 있겠다. 미래는 협업이 핵심일 것이다. 협업해야 어려운 문제들을 같이 해결할 수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침공하는 시대에 남은 난제를 같이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않겠는가. 오히려 인간 혼자서는 절대 해결하지 못할 일만 남는다. 대부분 쉬운 문제는 인공지능이 해결한다면 말이다.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고 강함도 필요하다. 하지만 겉껍질이 강하면 말랑한 과육을 얻을 수 없듯 단단하고 경직된 자세는 타인을 차단한다. 집을 지키고자 담벼락만 높인다면 결국 섬처럼 나만 남는다.
취약하고 약하고 그만두고 포기하고 싶은 약함은 역설적으로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한다. 말랑한 마음이 한층 사람을 성장시키고 정체성을 알아가게 돕는다. 살아내는 것을 힘들어하고 약하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외부 자극을 적극 수용하는 말랑한 스펀지 같은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만두고 싶고 안 하고 싶고 나를 자책하는 약한 마음들은 다른 사람을 수용하는 따뜻한 사람으로 만든다. 높게 쌓아 올린 강한 방어기제로 고약하고 고립된 사람보다 약한 사람이 더 많은 동료를 만든다. 예측불가로 두려운 미래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할 일은 새로운 두려움 앞에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가정하면 강한 사람보다 약하디 약한 사람이 잘 적응할 수 있다.
약한 자아가 혼자가 아닌 같이 혹은 더불어 살아남는다. 미래는 같이 가야만 한다는 가정을 어른들이 얼른 수용했으면 좋겠다. 미래는 약한 영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