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삶 - 김영하
" 휴. 우리애는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을까. 늘 짜증을 내고, 어떡하냐. 내가 잘못 키웠을까.."
친구가 아이를 고등학교에 보내고 한 달이 지나고 지켜보기가 너무 힘들다며 속상해한다.
" 친구로 말해줘. 아니면 상담가로 말해줘?" 하며 위로도 아니 조언도 아닌 어디에 위치하고 말을 해야 할지 머뭇거렸다. 친구가 크게 웃으며 상담가로 말해 달라고 한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특히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일은 군대를 가거나 첫 출근과 비슷한 긴장감을 갖게 한다. 특히 지금 고1은 학점제의 첫 시작 학년이며 내신 등급 체제가 모두 변화했다. 수능도 변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2028 대입 관련 소식은 계속 업데이트 중이고 교사와 학생들은 버퍼링 중이다.
" 우리 00 은 해내려는 아이네. 포기한 아이가 아니라."
그게 무슨 말이냐고 친구가 묻는다.
공부든 일이든 너무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주어지면 자신감이 쌓일까? 오히려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더 당황할 수 있다. 삶은 고난투성이다. 반면 손댈 수조차 없는 어려운 과업은 자신감을 만들까? 불가항력을 느껴 무기력해질 수 있다. 그래서 과업은 적당하게 어려워야 해낼 수 있고 아이는 성장한다.
우리 아이에게 과업이 적당히 어렵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아니 우리 아이가 공부나 과제를 해내려는 태도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짜증을 낸다.
화를 낸다.
아 진짜 못할 것 같아.
아 나 왜 이렇지.
이런 반응이라면 해낼 수 있는 아이다.
소설가 김영하의 산문집 [단 한 번의 삶]에도 해내려는 사람 김영하 작가가 등장한다.
김영하 작가가 요가를 배우며 머리 서기(산스크리트어로 시르사아가나)를 해보겠다고 결심하고 이루는 과정이 잘 묘사되어 있다. 요가 선생님이 머리 서기를 해보자고 호언하시는 선언에 김영하 작가가 부담스러워하며 도전을 미루는 마음을 절묘하게 표현해서 한참 웃었다. 김영하 작가는 계속 머리 서기를 연습하며 멍이 들고 어깨가 욱신거리고 가끔은 성공하고 대부분 바로 나가 떨어졌다(단 한 번의 삶. 67쪽)며 힘들었던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한다. 새롭고 버거운 과제 앞에선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다. 나가 떨어지며 좌절하고 나 자신을 의심하게 되는 모습 말이다.
그렇다. 해내려는 사람들은 자신감 따위는 없다.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놀다가도 해야 하는데라는 자책이 생긴다. 잘하고 싶으니 짜증이 난다. 조별 활동을 관찰해 보면 할 마음이 없는 아이는 단번에 알 수 있다. 고민하지 않고 기력이 없고 심드렁하면 마음이 없는 아이다.
상담때 만난 아이들도 대체로 해내려고 애를 쓰는 아이들은 자신감이 없었다. 주저하고 울먹었으며 속상해했다.다. 서울대에 합격 가능한 성적을 받아든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 선생님 저는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을까요? "
곰곰 생각해 보면 태생적으로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 허상은 아닐까? 오히려 자신감만 가득하다면 오만해져 신중함이 줄지는 않을까?
결국 해내려는 아이들은 잘하고 싶으니 두렵고 두려우면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이리저리 방법을 궁리하는 사람들은 표정이 밝을 수도 없고 그 순간 크게 행복할 수가 없다.
" 음.. 너 말 알겠어... 그래도 해내는 아이보다 솔직히.... 잘난 아이면 좋겠다."
친구의 솔직함에 크게 웃었다. 마지막에 그래도 친구는 애를 쓰겠노라 다짐했다. 니 말 명심하고 해내려는 아이의 방황을 존중하고 천천히 지켜보겠다고.
괴테가 말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단 한 번의 삶(김영하)' 77쪽
몸속엔 분노도 많았다. 말과 몸으로 여기저기서 싸웠다
지금은 조용히 물러설 때가 많다. 좋게 말하면 성숙했고
삐딱하게 보자면 노회하고 비겁해졌다. 벌이지 않았어도 될
부끄러운 싸움들을 지금도 가끔 떠올린다. 다 웃어넘겼어도
될 일인데 그때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 모든 싸움은
얄팍한 정의감이 부추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