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할만해
행사가 있어 석식을 먹고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상담실로 들어가려는데 요즘 좀처럼 보기 드문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아이 둘이 보인다. 아. 요즘에도 친구를 저렇게 교문까지 나와 배웅하는 다정한 아이가 있구나. 친구를 옆에 두고도 메신저로 잘 가라는 인사를 하는 시대 아닌가.
속절없이 귀여워 얼른 아이 뒤로 다가섰다. 눈이 동그랗게 된 아이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내일 또 보는 데 어찌 그리 애잔하냐고
" 아.. 하하. 며칠 전에 싸워가지고 이야기를 못해서요. 오늘 화해했는데 할 말이 너무 많아서요. 그리고 기분도 좋고요."
나도 모르게 아이 손을 잡고 마구마구 흔들어주었다. 친구랑 싸우고 요 며칠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갔을 마음이 기특했다. 화해를 정성스럽게 마무리하기 위해 총총 운동장을 가로질러 꽉 채워 사람을 대하는 아이가 사랑스럽다. 오랜만에 사람을 대하는 진심에 반하게 된다. 그래, 이 정도 정성이면 너는 삶도 가득 행복으로 채우겠구나.
미래는 많이 지랄 맞다. 예측이 불가하여 불안하다. 한껏 대비하고 준비해도 작은 조각 빠진 퍼즐처럼 찜찜하기만 하다. 잘하자고 다짐해도 변수는 여 보란 듯 나를 비웃는다. 진로상담이 늘 미완성 그림으로 보이는 이유도 미래는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겠다. 미래에 무엇을 해야 행복할지 혹은 덜 불행할지. 생계를 위해 돈을 벌 수 있을지. 이 성적으로 대학은 가질는지. 직업 생활은 슬기로울지.
아이들은 저마다의 불안으로 오늘도 상담실을 찾는다. 불안하니 수행평가도 미루고 과제도 미루고 공부도 미룬다. 차곡차곡 불안이 쌓이면 무기력해져 아무것도 하기 싫고 성적도 밀리기 시작한다.
" 불안을 막는 좋은 방법은 다짐이 아니야. 실행이야."
알 수 없어 답답한 미래 앞에선 우리 아이들에게 조심스럽게 하는 말이다. 아이들은 픽 웃는다. 누가 모르겠냐.
[이 지랄 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쓴 86년생 조승리작가는 15살부터 시력이 약해져 결국 지금은 실명이 되었다. 실명하고 생계를 위해 마사지숍에서 일한다. 장애를 가졌지만 친구와 타이완 여행을 신나게 다녀온다. 조승리작가는 극복보다는 그냥 살아보는 태도로 자신의 장애를 대한다. 그녀는 하루를 사는 순간순간, 안마를 받는 손님들, 친구들, 복지관에서 만난 노인, 택시기사들에게 다정하게 다가가 그냥 살아간다. 작가의 말처럼 장애를 극복하지 않고 그냥 잊는다. 지랄 맞은 미래를 소소함과 다정함 그리고 벅찬 느낌으로 마주한다. 그렇게 살아낸 덕분에 조승리작가는 장애로 비극적 삶을 살 것이라 예측했지만 사랑과 만남으로 채운다. 결국 삶을 축제로 즐기는 어른이 된다.
마찬가지로 친구를 다정히 배웅하던 아이는 용기를 내서 화해라는 축제를 열었다. 축제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축제 티켓팅부터 해야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미래를 불안, 불행, 극복으로 마주하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해볼까? 해보면 생각보다 할만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