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모든 뒤끝은 결국 창작

모든 창작자 청소년을 위한 위로

by off

[Q.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요?]

선생님.

저 다은입니다.

계속 미술 학원을 다녀야 할까요? 불쑥 불쑥 열심히 하고 싶었다가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림 그리는 걸 너무 좋아해서 미대를 가려고 하는데요. 복잡한 생각들 때문에 실기에 집중이 안 됩니다. 답답합니다. 앞으로 인공지능 시대인데 디자인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건 소용이 없을 것 같아요. 지금이라도 다른 전공을 해야 할까요? 도와주세요.


[A. 크게 버릴 것이 없어 보입니다.]

답답하시죠. 충분히 겁이 나실 것 같아요.

만질 수도 잡을 수도 지울 수도 없는 미래라는 허공.

그 빈 공간에 헛발질을 하는 무기력감, 물놀이를 하다가 발이 바닥에 닿지 않을 때 느낀 공포감,

그런 캄캄한 마음과 두려움이 아닐까 감히 짐작해 봅니다.

가뜩이나 공포스러운 미래에 어른들은 AI로 어린 당신을 더 질리게 만드나 봅니다.


우선 당분간은 억지로 그림을 그리진 마세요. 물론 당분간입니다. 영원히가 아닙니다.

감당 안 되는 생각이 덮칠 때는 소나기를 피하고 보듯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지나가는 소나기를 잡을 필요는 없겠지요. 소나기는 물입니다. 물은 넘치고 흘러야 하겠지요.

흘러가는 물은 구덩이를 파고 모으면 썩기 마련입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이 굽이굽이 흐르다 보면 분명 어떤 시간이든 걸림돌을 만납니다. 지금 다은님은 망망대해로 가기 전 걸림돌을 만난듯하네요. 굽이 치다 보면 큰 물을 만납니다. 그 망망대해라는 끝에 도달하면 잔잔하게 머물 수 있죠. 바다는 모든 물을 품어 버립니다. 복잡한 걱정과 두려움도 곧 끝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니 잠시 그렇게 멈추어도 됩니다.


다은님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생각납니다.

이수지 작가의 [만질 수 있는 생각(비룡소)]이라는 에세이입니다.

이수지 작가는 20년간 그림책을 만든 분입니다. 안데르센상을 비롯한 무수한 상을 받으신 분이죠. 그런 엄청난 작가님이 이 책에서 기쁨과 절망, 어렵게 그림책을 만들고 다듬고 출판한 여정을 그려냅니다. 특히 시간을 들여 좋아하는 채색도구를 고심하고 종이 질감을 묘사하며 원하는 색을 표현하기 위한 노력을 실감 나게 묘사하신 부분들에서는 예술가의 경지를 보았습니다. 창작에 티끌도 모르는 저도 엄청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특히 저는 이 구절을 너무 좋아합니다.

" 하지만 그 모든 망설임과 이불킥, 설렘과 기쁨의 총합이 지금의 나이므로, 크게 버릴 것은 없어 보인다. 덕업 일치의 드문 삶,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재미있다."

이 구절에 딱 맞는 사람이 다은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그림을 좋아하니 덕업 일치의 시작인 셈입니다. 다은님이 답답한 이유는 마음속 들끓는 열정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열정과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의 글을 읽으시면 분명 큰 바위를 돌아 흐르는 물처럼 무거운 마음도 흘러가리라 생각합니다.

이수지 작가님 말처럼 끝까지 하는 사람은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다은 님의 시작과 끝을 응원합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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