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실패를 다루는 법

성공 못하면 죽는 병

by off

민이는 학생회장이다. 사회를 보는 걸 좋아한다.


- 선생님 저 아시죠. 정말 소심했는데 여러 가지 사회 보면서 진짜 정말 좋아졌고요. 교사가 되고 싶어 졌어요. 제가 좋아하는 영어 가르치며 살고 싶어요.

이 말을 하는 아이 눈빛이 자잘 자잘 파도에 다듬어져 반짝이는 해변 몽돌같다.


- 근데 민아. 알지? 성적이 좀... 샘이 면접 준비는 일단 시켜주는 데. 00대 영어교육과 니 성적으로 좀 힘들어 보이는데..

- 알죠. 샘.. 저 괜찮아요. 괜히 미안해하시네. 하하. 다른 대학 가서 임용만 되면 되죠. 교사가 되고 싶은 거니까요. 대학 가서 진짜 열심히 할 겁니다.


요 녀석 봐라. 말하기 조심스러워하는 내 마음도 배려하는 고3이라니. 정작 어른이 되어가지고 편협하게 대학 수준을 계속 나누고 있다. 몹시 부끄러웠다.

민이가 수줍음과 자신감 사이를 오고 가는 미소를 보여줘서 정성껏 모의 면접을 봐주고 더 봐주고 더 봐주었다. 꼭 수시 6개 대학 죄다 합격하기를 바라며.


최근에 '돈 안 쓰면 죽는 병'[이두온.위즈덤하우스]이라는 신선한 소설을 봤다. 이 소설에서는 미래에 소비를 안 하면 머리가 터져서 죽는 이상한 병에 사람들이 걸리며 죽을 수 없어 가난해도 무조건 돈을 쓴다. 주인공 치트키는 경험을 통해 가치 없고 쓸데없는 물건을 살수록 머리 혹이 줄어든다는 것을 알고 오래 살기 위해 명품 소비를 이어간다. 우리가 아는 소비의 기쁨은 이 소설에 없다. 주인공에게 소비란 그저 죽지 않기 위해 하는 항암치료 같은 행동이다. 당연히 돈을 버는 이유는 죽지 않기 위해서이고 직업 가치, 직장 동료와의 연대, 월급의 기쁨은 없다. 주인공은 그저 일어나 죽기 싫어 직장을 가고 소비를 이어간다. 섬뜩했다. 내가 비슷한 병에 걸려 버린 듯했다.


대학 진학만 생각하다 보니 몹쓸 병이 걸린 것 같다. 면접을 봐주고 진학 상담을 하면서 계속 좋은 대학. 더 좋은 대학을 말하게 된다. 좋은 대학 못 가면 안 된다는 병,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병, 일등을 강요하는 병.

실패를 넘고 성장하는 모습을 지지하지 못하고 겁을 주고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 정신을 못 차리고 말이다.

앞서 말한 민이처럼 뭔가가 좋아서, 일등이 아니고 좋은 대학이 아니어도 만족하는 아이들이 많았으면 하면서도 성공하는 법만 강조하는 말을 쏟아낸다. 요즘 말로 정말 기만이다.

오히려 민이 같은 성숙한 아이들이 어른들이 만든 기만하는 병을 이겨내고 있다. 그저 기특하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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