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당뇨병을 오래 앓으셨는데 먹고살기 힘들어서 혹은 아픈 걸 인정하고 싶지 않으셔서 만성 질환을 돌보지 않으셨다. 그 시대가 그렇게 야만적이었다. 가난하면 병이 짐이 되고 삶을 고스란히 왜곡시킨다.
만성 질환은 약도 먹어야 하지만 식단 관리도 해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고 스트레스 관리도 해야 암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결국 아버지는 당뇨병 관리가 안되어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고집을 꺽지 못해 관리 없이 고통스럽게 돌아가시게 만든 것이 여전히 후회가 되고 그 후회가 겹겹이 쌓여 고통스럽다.
심리적인 문제도 완치가 아닌 관리의 문제라면 만성 질환이다. 만성질환이 관리가 안되면 죽을지도 모르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심리적인 문제도 약도 잘 먹고 운동도 해야 한다. 거기다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 정서적 지원을 도울 친구가 있어야 하고 가족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상담도 받아야 한다. 거기에다가 사회는 심리적 문제를 편하게 공유하는 분위기와 해결을 도울 정신 의료 복지가 필요하다.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변에 암을 정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암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하고 그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 거기에다 이제 암 환자는 보건복지부에서 지원하고 주기적 검사로 국가적 차원으로 관리하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 전 연령대의 사람들이 심리적인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다. 암보다 더 큰 사회적 문제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생각을 하게 된다. 자주 정신병은 무시되거나 범죄의 이유가 되고 다양한 형태로 차별되기에 치유가 매우 어렵다. 신체에 대한 만성질환처럼 정신병은 완치가 아닌 관리가 최선의 방법이다.
마음의 병도 치유의 과정은 신체의 병과 동일하다. 마음을 제대로 쉬고 약해졌음을 인정하고 약 먹고 나아지면 운동하고 책도 보고 지치지 않고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믿을 만한 주변 사람들 좋은 상담가가 있다면 관리가 더 수월해진다. 빠른 시간에 완치되길 바라면 조급해지고 엉터리 인터넷 민간요법을 따라 마음을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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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에서 인용
"일하지 않으면 당장 다음 주 생계가 막막한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의학 교과서에 적힌 대로 "다친 허리를 치료하려면 며칠은 조심하며 누워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일은 허망했습니다. 먹고사는 일의 무게 때문에 검진 시기를 놓쳐, 몸 여기저기 전이된 유방암을 진단받은 여성에게 의학이 해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며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에게 반복해서 물었던 것 같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병원을 벗어나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임상의사로 일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경제력을 포기할 수 있는가?' 그렇게 하면 내 고민은 결실을 얻을 수 있는가?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습니다. 부조리한 사회가 질병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게 명확해질수록, 그 대답은 더 무겁고 또 멀게 느껴졌습니다.
제게 공부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언어였습니다. 타인의 고통은 타인의 것입니다. 우리는 손톱 밀에 찔린 가시로 아파하는 옆 사람의 고통을 알지 못하지요. 특히 부조리한 사회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은 종종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숨죽이며 아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이지 않는 상처가 당사자의 몸에 감히 지 않고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그 고통에 응답해야 합니다. 그 공부는 책상 앞에서만 할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