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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ff Dec 17. 2024

5. 중년심리예보 5

감정 건조증 -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뭐야. 애야? 수습할 생각은 안 하고 눈물 바람이야. 어른답지 못해 가지고 "

윗사람이 요즘 것들 운운하며 감정적인 아랫사람을 저격한다. 여기가 K 직장이다. 속상해도 울어선 안되고 말을 더듬어서도 안되며 크게 웃어도 안된다.

왜? 어른이니까. 직장이니까. 돈 벌러 왔으니까. 요즘 것들도 아니면서 나는 왜 찔끔 눈물이 나는 걸까. 드디어 갱년기 감정 조절 실패자가 되나.


직장 20년이면 실수 없이 딱딱 완벽하게 뭐든 처리하고 서툴어선 안된다. 문서를 만들고 계획을 세운다. 무능하다는 소리 듣기 싫다. 잘하고 싶다. 를 속으로 외치며 긴장하고 최대한 에너지를 집중한다. 뇌세포 하나하나 곤두세운다.

'처음엔 다 그럴 수 있지'

신입시절  '처음'이기에 미숙하고 서툴러도 봐주던 시선과 이해는 이제

'처음 하는 일도 아닌데 왜 그래?'

라는 칼날이 되어 박힌다.


생각이 복잡하면 어느 날은 익숙하게 했던 작업이 모두 처음 같다. 어떤 날을 늘 쓰던 단어도 낯설어 인터넷 사전을 뒤진다. 보고서를 쓰면서 맞춤법도 강박적으로 다시 점검한다. 정신없이 일을 처리하다가 집에 돌아오면 씻고 자기 바쁘다. 죄도 없는 데 감정은 차단되고 고독 감옥에 갇힌다.

무능하다는 소리가 싫고 일을 잘하고 싶어 감정 싹을 자른다.  한때는 낯선 감정들을 즐겼고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부풀어진 마음으로 인간관계를 넓혔다. 그리고 벅찬 설렘과 다부진 열정은 뭐든 도전하게도 만들었다. 감정은 삶을 지탱하고 살게 하는 충전기 같았다.

이제는 슬퍼하거나 감정을 오롯이 드러내면 바로 무너질 것 같고 산산이 조각날듯한 공포 감정만 남은 느낌이다. 그렇다. 어른스러워지려고, 잘나 보이려고 감정 조절을 하다 보니 푸릇한 새싹 감정이 올라오면 뭐든 싹을 잘라버렸다. 약해 보이는 건 싫다. 약해졌다는 건 실패를 의미할 테니까. 감정을 감추느라 마음이 빳빳하게 경직된다.  


'뭐 해? 너?일단 해결책을 찾아'

직장에서 끝없이 머리에서 울리는 말이다. 감정에 휩싸여 시간이 걸려 버린다면 조직에서 밀려날 것이 뻔하다. 그들이 나를 얕잡아 볼 것이 뻔하다. 피해의식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 아무래도 더 나아 보인다. 감정적이라는 말보다.


조직 생활을 오래 하면서 나로 살아본 것이 언제던가. 회의를 하면서 남을 까고 내 성과를 자랑하고 남을 욕하는 건 많이 했는데 나라는 사람은 무엇을 느끼며 살고 있는 것일까. 해결책을 찾아 해결해도 이렇게 불안한 이유는 뭘까. 감정을 그대로 고스란히 느껴본지가 언제인가.

이제 안구건조증이라 인공눈물을 넣어야 겨우 눈물이 흐른다. 눈물 흘릴 시간에 자료나 더 찾아야 한다. 꽉 막혀 답답한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앞뒤를 모르겠다.

여전히 회의는 해결책과 대책 혹은 대안이 웅웅 거리며 떠다닌다.

답 없고 답답하고 고독한 이 감정은 해결이 될까.


" 모든 육체적, 정신적 감각은 이 모든 감각의 자기 소외에 의해, 즉 소유의 감각에 의해 잠식 되었다. ... 그 결과 평범한 사람들은 풍요로운 가운데 즐거움의 결핍을 느끼고 불안, 외로움, 우울을 겪는다."

 에리히 프롬 ' 불복종에 대하여' 중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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